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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7월 12일 일요일

초식남, 아무 문제 없다.

2009년 7월 11일 저녁 11시 20분 SBS 그것이 알고싶다에서 초식남에 관련된 것을 방송했다. 그러나 가십성으로만 끝났지, 문제에 대한 더 깊이 분석하는게 부족해서 약간 실망스럽기도 했다.

05,06년부터 일본에서 증가하기 시작한 초식남이 우리사회에도 등장한 것이다. 뙤한민국도 초식남이 어느날 갑자기 등장한 것은 아니다. 09년 2,4월 무렵부터 한겨레, 조선 등의 신문에서 보도하면서 알려졌을 뿐이다. 일본에서의 초식남 등장은 60,70년대 일본의 경제버블이 붕괴되고 청년층 실직자들,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이어가는 세대들, 경제버블 붕괴로 도전성 진취성 보다는 안정성을 추구하는 젊은층이 늘어나면서 생겨난 현상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09년에 한국에서 화제가 된(실제 그 전부터 서서히 급증한) 초식남의 경우 반드시 97년 IMF로 인한 실직자 백만명대의 대량실직, 청년층 실직자들,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이어가는 세대들, 경제파탄으로 도전성 진취성 보다는 안정성을 추구하는 젊은층이 늘어난 것만으로 보기는 어렵다. 한국남자들의 초식남화에는 남자를 물주나 도구 정도로 이해하는 된장녀와 한국남자들에 대한 적개심으로 뭉친 페미니스트들의 원인도 한몫 해 왔다.

초식남은 죄악인가? 기현상인가? 글쎄... 2005년에 한 일본의 여류 소설가들이 초식남이라는 단어를 창조해낸 이후 일본 남자들은 연애나 결혼이라는 굴레에 속박되고 싶지 않다는 것을 공공연히 드러내고 있다. 더 이상 한국남자들도 연애나 결혼이라는 굴레에 속박되고 싶지 않다는 것을 무언으로 표현하고 있다.

09년 7월 11일자 SBS 그것이 알고싶다 방송에서는 이들을 특이한 사람 정도로 방송했다. 그러나 1부작으로 끝날 소재만은 아니었던 듯 하다. 2부작 정도로 진행하거나, 다른 프로그램을 한번 쉬더라도 보다 집중적이고 심층적으로 방송하지 못했다는 점이 아쉽다. 그리고 특이한 현상으로만 본 것도 아쉬운 점이다. 뭐가 이상하고 특이하단 말이지? 자기가 자기 삶에 충실하고 자기만의 갈길을 가겠다는데 이것을 특이한 것처럼 보도하는 것이 더 이상하다.

사실 일본의 경우 10대 중, 후반일 때 여관과 매춘과 원조교제까지도 서슴없이 하다 보니, 여성과의 관계 내지는 섹스에 싫증이 난 경우가 많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도 반드시 일본과 같다고 보기만은 어려울 것이다.


초식남 이라는 존재를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려운게 원인이 저마다 다양하다는 것이다. 여기서 초식남은 여자와 놀아볼 만큼 놀다가 싫증이 난 남자, 처음부터 여자에 관심이 없던 남자들(친구로 만나는 여자들의 존재여부와 상관없이), 여자에게 관심이 있든 없든 여자의 손목 한번 못잡아 본 남자가 있는데... 이 중 여자와 놀아볼 만큼 놀다가 싫증이 난 남자들은 초식남으로 분류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여자와 놀아볼 만큼 놀아 본 남자라면 본인이 크게 뼈저리게 혼나지 않은 이상 버릇은 언제든지 다시 살아날 수 있는 법이다.

대한민국의 초식남은 여자와 놀아볼 만큼 놀다가 싫증이 난 남자들도 있지만 처음부터 여자에 관심이 없던 남자들(친구로 만나는 여자들의 존재여부와 상관없이), 여자에게 관심이 있든 없든 여자의 손목 한번 못잡아 본 남자들 등, 이른바 숫총각이거나 여자와의 관계가 10회 안쪽인 남자들이 많다는 점이 일본의 초식남들과는 다른 점이 아닐까?

사람이 살다 보면 이런 사람도 있고 저런 사람도 있다. 그리고 이제는 내가 남에게 돈을 투자하는게 아까워서 내 자신에게 그만큼 투자하겠다는 것으로 변화해가는 것이 한국남자들의 논리다. 남자를 도구 정도로 밖에 인식하지 못하며 소비만 할줄 알고 생산을 모르는 된장녀들과 피해의식과 모든 남성들에 대한 적개심으로 뭉친 페미니스트들 역시 한국남자들로부터 연애를 질리게 만들었다.

현재 한국여자들은 연애와 결혼을 할때 지극히 현실적이다 못해 속물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남자의 인간성, 사람됨됨이, 성실성 같은 것은 보지도 않는다. 사귀는 남자는 외모를 보고, 결혼할 남자는 재력과 학벌을 본다. 남자를 인간으로 보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한국남자들 역시 연애와 결혼에 대한 환상을 버리고 좀더 자기 자신에게 투자할 때도 됐다. 여자들은 더 이상 남자들을 사랑하지 않고, 단순히 자신의 편의를 위해서 선택하는 마당에 남자들이라고 미련하게 아내와 자식을 위해 일만 하는 돈벌이 기계로 살 필요는 없지 않은가? 고생한다 해서 그만큼 가장의 권위를 살려주는 것도, 남자에게 반대급부의 혜택을 주는 것도 아닌 마당에...

여성에게 돈을 투자해봐야 본전도 뽑지 못할 것이 명확하다면 그 시간에 자기 갈 길 준비하며 자기계발을 하다가 안정된 직장을 얻어서 젊음을 보낸 뒤엔, 늙어서는 혼자 조용히 여유있는 삶을 살려는 것이다. 결혼이야 하면 그만, 안 해도 그만이다. 일시적인 감정과 욕정 때문에 똥값, 폐품수준의 인격체들과의 연애와 결혼같은 무의미한데 투자하여 시간을 허비하느니 차라리 혼자 사는 편이 낫다.

한국의 초식남 급증은 일본의 버블붕괴(와 비슷한 IMF 사태 이후) 보다는 남자를 도구 정도로 밖에 인식하지 못하며 소비만 할줄 알고 생산을 모르는 된장녀들과 피해의식과 모든 남성들에 대한 적개심으로 뭉친 페미니스트들 역시 한국남자들의 초식남화를 부추겼다고 할수 있다.

남자가 못나서? 천만에... 된장녀 문제는 심각한 것이 남자를 봉으로 안다는 것이다. 자신은 어떤 능력도 조건도 못갖추었으면서 남자들의 직업, 능력, 연령, 월급, 연봉, 학력, 집, 차량 등의 조건을 보는 것 역시 여자들에게 정나미 뚝 떨어지게 만들어가고 있지 않던가. 한국여자 자신들은 어떠한 조건도 갖추지 못했으면서... 그나마 유일한 무기인 처녀성 조차도 없는 주제에 말이다.

주제와는 다르나 처녀 논쟁도 곁들인다면 처녀막은 사실상 불필요한 존재다. 처녀막 수술은 흔하다고 한다. 임의의 수술과 재생이 가능한 처녀막에 집착하기 보다는 한번 성병검사를 받아보는 편이 나을 것이다. 성교 전 여자들을 데리고 정자에 대한 항체반응을 실시한다면...

우리 몸에는 외부에서 물질이 들어오면 그에 대한 항체가 형성된다. 감기나 질병에 걸렸다가 나은 사람들의 몸에는 감기와 그 질병들에 대한 항체가 형성되어 있다. 처녀막 수술을 세 번이상 한 사례를 많이 들어보았는데, 항정자 항체반응... 정자, 정액에 대한 항체반응 검사까지 조작할 수는 없을 것 같다.

11일자 그것이 알고싶다는 나름대로 주제설정을 했고, 심리학자들과 신경정신과 전문의 등 대여섯명과 인터뷰를 할 정도로 조사는 많이 했지만, 한국사회 초식남 등장 원인에 대해 더 깊이 파고들지 못했다는 아쉬움도 있다. 차라리 다른 프로그램을 하루 쉬더라도 그 문제를 좀더 깊이 파헤쳤어야 했다. 그리고 단지 초식남들에 대한 것을 좀더 시간을 할애해서 보도하기 보다는 1회성이고, 특이한 사람들을 보도하는 수준이었다는 것은 다소 안타깝다.

여자 잘못 만나서 신세 망치는 남자들이 많다. 유학과 불교에서 공통적으로 여자를 요물로 간주한 것이 헛된 지적만은 아닐 것이다. 80년대 초반 독일과 프랑스에서는 이혼 후 자신의 친자식으로 키워오던 아이들이 유전자 검사결과 친자식이 아닌 것으로 밝혀져 파문이 된 일이 있다. 독일과 프랑스에서 난리난 이후 미국에서도 친자검사결과와 불륜에 관련된 설문조사를 언젠가 했다가 공개를 중단한 사태도 있다.

모 블로그들에서 본 바로는 미국과 캐나다같은 북미국가들은 페미들의 입김 또는 정부의 지나친 간섭 때문에 여자들의 권리를 지켜주겠다고 지나치게 나선 결과 여자가 바람이 나서 도망을 가도 무죄고, 별거를 하며 딴놈과 불륜을 해도 간통죄가 없다. 확인은 못해봤지만 부부간의 별거기간이 1년만 지나면 자동으로 이혼이 성립된다고 하며, 이런 식의 이혼방법의 80%를 차지한다고 한다.

이혼하게되면 사유에 관계없이 거의 무조건 재산은 남자 단독으로 벌어들인 재산이라고 해도 강제적으로 반으로 분할하며, 자녀 양육권에 대한 책임도 여자에게 유리한 판결을 많이 내린다. 이건 남녀 평등이 아니라 남녀 역차별이 아닌가?

한국과 함께 국제사회에서 유일하게 여성부가 존재한다는 뉴질랜드에서는 그보다 더 심해서 백개의 사례 중 99명은 여자쪽의 승리라고 하니 말 다한 셈이다. 뉴질랜드에서는 남자들의 해외출국과 결혼기피 문제가 사회주요문제로 나타나고 있다.

이상하게도 전적으로 남자들에게 불리한 구조로 변해가고 있다. 남자는 자기가 벌어들인 재산의 반 이상을, 어쩌면 대부분을 빼앗긴다는 답이 나온다. 한국 역시도 여성부라는 괴물 부서의 등장으로 사회적으로 이혼=남자의 손해 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이혼으로 돈만 빼앗길까? 돈만 잃는 수준이 아니며 자칫 사회생활까지도 어렵게 만든다. 사회적으로 특히 한국사회에서의 이혼한 사람들에 대한 편견은 심한 수준이다. 손해를 볼 바에는 결혼이나 연애를 하지 않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한국남자들도 더 이상 여자들을 넓은 품으로 안아줄 필요를 못느끼는 것 같다. 한국여자들은 연애와 결혼을 할때 너무 현실적이다 못해 냉혹하고 속물적이다. 이런 여자들을 위해서 내가 어렵게 벌어들인 돈을 투자할 자격이나 가치는 있을까? 더구나 이 여자가 낳은 자녀가 내 자녀가 아니라면... 남자는 그야말로 남 좋은일 시켜주는 것이다. 유전적으로 자신을 인격적으로 속인 더러운 갈보 좋은일 시켜주는 것이고, 아이의 생부 좋은일 시켜주는 셈이다. 이런 손해를 감수할만큼 마음씨 좋은 남자들은 이제 거의 사라져가고 있다는 것이다.

초식남의 증가는 특이한 일이 아니다. 이타적이지 못하다고 탓하기 이전에 인간도, 생물들도 기본적으로 자기 생존을 보장하는 것이 목적이라는 것을 인식해야 된다. 누구든 손해보기 싫은 것은 당연하다.

그런걸 마치 책임감 부족한 남자인 마냥 왜곡하는 것은 악의적인 프로파간다에 지나지 않는다. 한국남자는 소모품이 아니다. 희생하려고 태어난 존재가 아니다.


내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누구도 나를 (조건없이) 사랑해줄 수 없다. 자기가 자기를 사랑하겠다는데 그것을 누가 탓할까? 꼭 연애를 하고, 여자에게 관심을 갖고, 여자들과 가까이 지내고 그래야만 남자다운 것이라고 생각하는 고정관념부터 버려야 하겠다. 연애와 결혼을 이용해 경제적 이익을 보려는 여자들이 많은 마당에 남자로 태어난 죄로 모든 손해를 감수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사회적 편견에 의미둘 필요도 없을 것 같다. 자기 삶은 자기 스스로 혼자 사는 것이지 누가 대신 살아줄 수 없는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