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살해한 살인마, 겨우 징역 10년?
징역 10년, 8년을 구형하고 중형을 때렸다 라... 징역 10년대, 20년대, 무기징역... 미국이나 유럽처럼 징역 100년 정도의 판결은 사실상 내리지 않기 때문에 10년, 20년, 무기징역... 이렇게 나간다. 그런데 징역 8년, 10년을 구형하고 중형이라 한다.
http://news.donga.com/3/all/20131122/59063067/1
http://news.tv.chosun.com/site/data/html_dir/2013/11/22/2013112290073.html
http://www.hani.co.kr/arti/society/area/612262.html
http://www.imaeil.com/sub_news/sub_news_view.php?news_id=58779&yy=2013
http://news.kbs.co.kr/news/NewsView.do?SEARCH_NEWS_CODE=2759447&ref=A
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131122008017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23&aid=0002621801
징역 8년, 징역 10년이 중형이라니... 장난하나.
중형의 기준이 뭐지??? 이젠 판사들 조차도 정신병원 가서 검사 받아봐야 되겠다.
겨우 징역 8년, 10년... 여기에 모범수 감형+이런저런 감형, 무슨 명절날 특사 하다보면 한 2,3년은 족히 감형될텐데, 살인죄를 저질러도 겨우 8년, 10년인가???
남자나 전과자 되면 어디가서 취직 못하지, 여자들은 전과경력 있어도 어디 멀리 가서 시장통 국밥집 설거지나, 식당 주방아줌마로 들어가서 콱 처박혀 있으면, 그 것으로 끝이다.
왜 실종된 남자는 쉽게 찾아도, 실종된 여자는 쉽게 못찾는데??? 성폭행 당하거나 죽으면 시체로라도 몇달만에 찾는다.
자주 다니던 식당에 우연히 늦게까지 술마시다 보니 주방아줌마 구하는지, 이력서 들고 올라오는 조선족 여편네 하나 봤다. 주인 남자는 정리하고, 주인 부인이 뭐 테스트하던데, 그런데 별로 과거이력 콩팥 낫낫이 안 캔다. 그런 식이다.
등초본하고 무슨 신체검사 확인서였나 건강에 이상이 있나 없나 정도, 말을 잘 하나 못하나 여부만 체크하더만...
그리고 그런 아줌마들은 아침 일찍이나 밤늦게 인적 뜸할 때 이력서 들고 오니, 손님들이야 식당 잡일아줌마나 주방아줌마에 대해 누가 의식하지도 않을뿐더러, 갈비집이나 식당 가서 음식 먹는다 해도 주방아줌마 의식하는 놈 거의 없다.
그리고 아침일찍이나 저녁늦게 손님들 없을 때 이력서 들고 오거나, 식당 뒷문으로 오고 그러니까 그런 아줌마들 취직하는 것은 손님들이 볼 일이 없다. 그리고 식당 근처나 식당 안에 조그마하게 방 얻어서 살면서 거기서 숙식 해결하고 그러면 뭐...
저 살인마들도 자기가 살던 울산이나 서울에서 저 멀리 어디 강원도나 전라도 같은데로 가서, 식당 부억아줌마 노릇 하면서 식당에서 먹고자고 하면 끝이다.
서울 살면서 알던, 전과경력 있는 어떤 여성인데, 폭력하고 사기전과가 있던 여자인데 이게 경북 xx에 내려와서 식당 주방아줌마로 있는 것을 봤다. 그 계집은 서울이나 경기도 지역에서는 불가능하다. 그래서 멀리 가서 그러는 것이지...
전과경력 있는 여자... 자기 고향이나 살던데 주변 지역에서는 아무것도 못한다. 금세 세다리, 네다리 건너면 이래저래 말이 통하니까. 하지만 다른 도나 멀리 가면 사정이 달라진다.
서울 살던 여자가 전라도, 경상도로 내려왔다던가, 충청도, 경상도 여자가 강원도나 제주도로 간다던가, 아니면 강원도 사람이 대구나 부산, 광주 내려간다던가... 그렇게 객지 가서 쳐박혀 있으면 아무도 모른다. 모른다니까... 누가 뭐 일하는 아줌마 쓰는데 과거경력 콩팥 낫낫이 캘 것 같지???
잡담이 길어졌다. 사람을 살인하고 겨우 징역 8년, 10년형을 받았다. 그리고 그것을 중형, 엄중이란다.
겨우 징역 8년, 10년을 구형하고 중형??? 엄중???
사람을 죽였는데 징역 8년, 10년형을 받았다. 겨우 징역 8년, 10년... 징역살면서 모범수 감형+이런저런 감형, 무슨 명절날 특사 하다보면 한 2,3년은 족히 깎이고 감형될텐데... 몇 년이나 살 것 같은가? 그리고 중형? 엄중? 최소 징역 20년 이상은 때리고 뭐 중형, 엄중을 말했어야지...
사람을 살인했는데 고작 징역 8년, 10년을 때렸다니, 그리고 그게 엄중 이라니, 장난하나... 겨우 징역 10년 안팎으로 해놓고 뭐 중형? 사람 웃기는 방법도 가지가지다. 그놈의 중형, 엄중의 기준은 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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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2월 2일 월요일
한 가지에 집착하는 놈 치고 정상인 드물다.
한 가지에 집착하는 놈 치고 정상인 드물다.
한 가지에 과도하게 집착하는 사람 치고 정상인은 극히 드물다.
자신이 누군가에게 받지 못한 애정결핍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서 한가지에 집착하는 케이스하고, 극심한 스트레스로부터의 현실도피 목적의 집착 등이 있다.
또, 한가지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사람들 중에는 사회성 결여, 공감능력이 결여된 사람들이 많다.
한 가지에 과도하게 집착하는 사람 치고 정상인은 극히 드물다.
자신이 누군가에게 받지 못한 애정결핍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서 한가지에 집착하는 케이스하고, 극심한 스트레스로부터의 현실도피 목적의 집착 등이 있다.
또, 한가지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사람들 중에는 사회성 결여, 공감능력이 결여된 사람들이 많다.
박정희 시체팔이질... 문제 많다.
박정희 시체팔이질... 문제 많다.
박정희 시체팔이... 이제 그만!
뭔가 새로운 시대에 맞는 새로운 비전, 컨텐츠, 새로운 것을 개척, 개발할 생각은 하지 않고 허구헌 날 박정희 시체만 울궈먹는 짓... 너무 속보이지 않는가? 이건 뭐 의지도 없고, 소신도 없고, 투지 鬪志라는 것도 없다.
더군다나 박근혜 한 사람 빼면 새누리당-한나라당에서 박정희 직계나 박정희 측근의 친인척이 몇명이나 될까???
그 정도로 게으른 자들 or 그 정도로 게으른 추종자들을 거느린 집단이 집권했다는 자체가 신통하고 용하다. 현재의 새누리당-한나라당은 언제 한번 작살나야 할 집단이다. 솔직히...
그것도 사실상 한나라당-새누리당 이 노력해서 집권했다기 보다는 2006~2008년에 아스팔트 우파라고 알려진 활동가분들이 열심히 활동한 덕이었지만...
한나라당-새누리당은 반사이익을 취하고 있다. 야당이 워낙에 허섭 쓰레기들이라서, 종북 반역 이적행위는 둘째치고 워낙에 비전도, 희망도 없고, 무조건 반대를 위한 반대질만 하는 머저리들이라서! 피해의식과 원한에 가득찬 쓰레기들이라서!!! 국민의 피땀어린 혈세를 운동권 쓰레기들에게 민주화 보상금으로 퍼주는 쓰레기들이라서!!!
그래서 믿을 수가 없어서 억지로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한나라당-새누리당 찍는 것 뿐이다.
새누리당을 대체할 혁신적인 보수정당은 없는가. 한나라당-새누리당은 자기들이 노력해서 결과를 취한게 아니다. 따라서 아무런 의지도 능력도 아무것도 보이지 못하고 있다.
당장에 해결해야 할 청년실직 해결문제는 두손 두발을 놓은 상태다. 새로운 시대를 열어나갈 아젠더 제시는 커녕, 아무것도 못하고 그냥 박정희 시체, 박정희 이미지만 팔아먹고 있다.
시대의 목소리, 민심을 대변할 정당... 비록 소수, 마이너로 오랫동안 고전할 각오 하고, 이념과 신념을 굽히지 않는 정당! 보수 쪽의 민주노동당, 우파 민노당은 어디 없는가. 이대로라면 새누리당, 희망이 없다. 새누리당은 왜 유권자 입장에서 딱 봤을때 매력적이지 못한지, 깊이 반성해봐야 할 것이다.
박정희 이미지 팔이도 이젠 지겹다. 언제까지 박정희 뼈국물이나 우려낼 셈인가???
박근혜 퇴임 후, 박근혜 주변에 기생하던 토템숭배 정치훌리건들, 어떤 초인적인 지도자나 찾고 하악하악 대던 놈들은 분명 안철수 진영으로 건너갈게 뻔하다.
뭔가 새로운 시대에 맞는 새로운 대안, 비전을 제시해야지 언제까지 박정희 이미지만 뜯어먹을건가???
p.s : 자유선진당이라던가, 박세일의 그게 그래도 오래 가주리라고 믿었는데...
너무 어이가 없다.
박정희 시체팔이... 이제 그만!
뭔가 새로운 시대에 맞는 새로운 비전, 컨텐츠, 새로운 것을 개척, 개발할 생각은 하지 않고 허구헌 날 박정희 시체만 울궈먹는 짓... 너무 속보이지 않는가? 이건 뭐 의지도 없고, 소신도 없고, 투지 鬪志라는 것도 없다.
더군다나 박근혜 한 사람 빼면 새누리당-한나라당에서 박정희 직계나 박정희 측근의 친인척이 몇명이나 될까???
그 정도로 게으른 자들 or 그 정도로 게으른 추종자들을 거느린 집단이 집권했다는 자체가 신통하고 용하다. 현재의 새누리당-한나라당은 언제 한번 작살나야 할 집단이다. 솔직히...
그것도 사실상 한나라당-새누리당 이 노력해서 집권했다기 보다는 2006~2008년에 아스팔트 우파라고 알려진 활동가분들이 열심히 활동한 덕이었지만...
한나라당-새누리당은 반사이익을 취하고 있다. 야당이 워낙에 허섭 쓰레기들이라서, 종북 반역 이적행위는 둘째치고 워낙에 비전도, 희망도 없고, 무조건 반대를 위한 반대질만 하는 머저리들이라서! 피해의식과 원한에 가득찬 쓰레기들이라서!!! 국민의 피땀어린 혈세를 운동권 쓰레기들에게 민주화 보상금으로 퍼주는 쓰레기들이라서!!!
그래서 믿을 수가 없어서 억지로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한나라당-새누리당 찍는 것 뿐이다.
새누리당을 대체할 혁신적인 보수정당은 없는가. 한나라당-새누리당은 자기들이 노력해서 결과를 취한게 아니다. 따라서 아무런 의지도 능력도 아무것도 보이지 못하고 있다.
당장에 해결해야 할 청년실직 해결문제는 두손 두발을 놓은 상태다. 새로운 시대를 열어나갈 아젠더 제시는 커녕, 아무것도 못하고 그냥 박정희 시체, 박정희 이미지만 팔아먹고 있다.
시대의 목소리, 민심을 대변할 정당... 비록 소수, 마이너로 오랫동안 고전할 각오 하고, 이념과 신념을 굽히지 않는 정당! 보수 쪽의 민주노동당, 우파 민노당은 어디 없는가. 이대로라면 새누리당, 희망이 없다. 새누리당은 왜 유권자 입장에서 딱 봤을때 매력적이지 못한지, 깊이 반성해봐야 할 것이다.
박정희 이미지 팔이도 이젠 지겹다. 언제까지 박정희 뼈국물이나 우려낼 셈인가???
박근혜 퇴임 후, 박근혜 주변에 기생하던 토템숭배 정치훌리건들, 어떤 초인적인 지도자나 찾고 하악하악 대던 놈들은 분명 안철수 진영으로 건너갈게 뻔하다.
뭔가 새로운 시대에 맞는 새로운 대안, 비전을 제시해야지 언제까지 박정희 이미지만 뜯어먹을건가???
p.s : 자유선진당이라던가, 박세일의 그게 그래도 오래 가주리라고 믿었는데...
너무 어이가 없다.
2013년 11월 6일 수요일
2013년 11월 5일 화요일
손수조의 망언을 규탄한다.
손수조의 망언을 규탄한다.
대통령 친필 사인? 대통령 친필 전역증?
남자들이 군대에서 2년 동안 복무하는 것 자체를 평소 우습게 보거나... 아니면, 남자들이 군대에서 2년 동안 복무하는 것에 대한 진지한 이해, 고민이 없는 처사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 현재 남자들이 군대에 가는 것은, 어찌보면 죽으러 가는 것이다. 유사시에는 총알받이가 되려고 가는 것이란 말이다. 그런데 그 보상 방안이 고작... 대통령 친필 사인? 대통령 친필 전역증? 장난하냐??? 어디서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진짜...
목숨 걸고, 자유와 권리를 박탈당하고 2년 동안 복무했으면, 그에 상응하는 대접을 하던가... 아니면 마음이 담긴 감사 표시라도 하는게 우선이고, 당연히 차비하고 식비 지금은 당연하다. 그런데 뭐? 대통령 친필 사인? 대통령 친필 전역증?
어처구니가 없다. 이는 곧 국가 안보나 군사 문제를 너무 쉽게, 너무 하찮게 생각한다는 증거가 아니면 뭐겠는가?
그리고 두나라당-새대가리당 청년 비례대표로 뽑은 사람이 어찌 이준석하고 손수조란 말인가? 이준석은 외국 유학생이고 손수조는 유명한(?) 이x 여대 출신이다. 과연 그 두 인간이 평범한 젊은이들을 대변한다 라고 할 수 있을까???
벌써 그만큼 스펙을 갖추려면 백그라운드(기본배경)라고, 어느정도 집안 배경, 여건이 되어야 했을텐데... 이들이 가난하고 찌질한 젊은이들의 입장을 대변할 수 있을까?
대통령 친필 사인? 대통령 친필 전역증?
남자들이 군대에서 2년 동안 복무하는 것 자체를 평소 우습게 보거나... 아니면, 남자들이 군대에서 2년 동안 복무하는 것에 대한 진지한 이해, 고민이 없는 처사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 현재 남자들이 군대에 가는 것은, 어찌보면 죽으러 가는 것이다. 유사시에는 총알받이가 되려고 가는 것이란 말이다. 그런데 그 보상 방안이 고작... 대통령 친필 사인? 대통령 친필 전역증? 장난하냐??? 어디서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진짜...
목숨 걸고, 자유와 권리를 박탈당하고 2년 동안 복무했으면, 그에 상응하는 대접을 하던가... 아니면 마음이 담긴 감사 표시라도 하는게 우선이고, 당연히 차비하고 식비 지금은 당연하다. 그런데 뭐? 대통령 친필 사인? 대통령 친필 전역증?
어처구니가 없다. 이는 곧 국가 안보나 군사 문제를 너무 쉽게, 너무 하찮게 생각한다는 증거가 아니면 뭐겠는가?
그리고 두나라당-새대가리당 청년 비례대표로 뽑은 사람이 어찌 이준석하고 손수조란 말인가? 이준석은 외국 유학생이고 손수조는 유명한(?) 이x 여대 출신이다. 과연 그 두 인간이 평범한 젊은이들을 대변한다 라고 할 수 있을까???
벌써 그만큼 스펙을 갖추려면 백그라운드(기본배경)라고, 어느정도 집안 배경, 여건이 되어야 했을텐데... 이들이 가난하고 찌질한 젊은이들의 입장을 대변할 수 있을까?
노인 방임, 방치가 학대라면
노인 방임, 방치가 학대라면
노인 문제에 대해 말들이 많다만, 어쩔 수 없이 노인들을 방치, 방관하는 것까지 노인학대의 범위에 집어넣는 것은 억지같다. 지나친 오버다.
노인들을 방관, 방치하는게 노인 학대라면, 그럼 지금의 중고령자들이 과거 자기 먹고살기 바쁘다고, 자식들을 방임, 방치한 것은 아동 학대가 아닐까?
부모가 출근한 사이에 자식들은 담배도 피우고, 술도 마시고, 본드도 흡입하고, 패싸움도 하고, 불량한 청소년들에게 구타도 당해보고, 돈도 빼앗기고 온갖 폭력과 협박에 시달릴 수도 있다. 그럴 때 부모라는 사람들은, 자식들을 위해서 뭘 했나???
자식들이 그런 환경에 놓이도록 부모라는 자들은 뭐했나? 더구나 그런 처지에 놓이는 자기 자식들과 진지하게 대화해 보고 탈선, 방황 앞에서 자식의 바람막이가 되어주는 부모들... 극히 드물었다. 그리고 한때의 실수로 대부분의 자식들은 어려운 처지에 놓이게 됐다. 그렇게 방치당하고 자란 자식들 중, 몇 명이나 성공하고, 좋은 직장들을 구하면서 살까???
단순히 돈이나 벌어서 넉넉하게 먹이고 입히고 재워만 주면 그게 다인가??? 설령 그것을 무슨 대단한 혜택으로 여기는 자라면, 그런 자들은 자식들에게 버림받아도 싸다. 짐승도 자기 새끼들에게 그정도는 해 준다. 먹여주고, 입혀주고, 재워주는 것...
짐승도 하는 일을 갖다가, 무슨 대단한 혜택으로 여기는 그 피해의식! 그런게 자식들로 하여금 자기 부모에 대해 거부감과 염증과 학을 떼게 만드는 것이다.
여건이 안돼서 노인을 모시지 못하는 것, 어린시절에 겪었던 부모의 부당한 대우에 대한 반감으로 부모를 멀리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노인 방임이나 학대로 봐서는 안된다. 노인이라고, 어른이라고 해서 자식, 아랫사람이 무조건 존경하고, 무조건 복종하는 시대는 지났다.
Give and Take라는 영미식 속담도 있고, 일찍이 맹자의 역성혁명론(=임금답고 어른답지 못한 자는 임금, 어른으로 대접할 이유 없다) 처럼 주는 것만큼 대우를 받게 마련이다.
여기서 유교에서도 무조건 어른, 윗사람에게 복종만 하지 말라고 가르쳤다는 점을 우리는 주목해 보자. 일찍이 고대 원시 유교에서는 임금답지 못한 임금, 지도자 답지 못한 지도자, 어른 답지 못한 어른에게 저항하는 방벌 이라는 개념을 세워 뒀었다.
다만 송나라 때 주자 중심의 성리학, 예학으로 이어지면서 무조건 어른, 윗사람, 노인에 대한 맹목적인 복종, 존경을 강요하도록 경직되었지...
여건이 되지 않아서, 돈 문제나 재정적 조건이 되지 않아서 못 모시는 것, 어린 시절에 당한 부모의 부당한 대우와 폭력에 대한 반감 등으로 노인을 모시지 않는 것이라면, 그것은 노인 학대는... 아니다. 해 주는 만큼 대우를 받게 마련이다. 무조건 나이로 깔아뭉개고, 무조건 아랫사람에게만 복종을 요구하는 것은 잘못이다. 그렇게 해서는 억지로 복종시킬 수는 있어도 속으로는 불평 불만과 반감, 적개심만을 생산할 뿐이다.
자식들에게 얹혀살지 않기, 적당히 사람들과 거리를 두기, 그리고 자식들에 대한 헛된 믿음, 기대감 버리기... 이 것부터 연습해야 될 것 같다.
이것을 연습하지 않는다면 아마 오래도록 괴로울 것이다. 제 승질 제가 못이겨서 말이다.
노인 문제에 대해 말들이 많다만, 어쩔 수 없이 노인들을 방치, 방관하는 것까지 노인학대의 범위에 집어넣는 것은 억지같다. 지나친 오버다.
노인들을 방관, 방치하는게 노인 학대라면, 그럼 지금의 중고령자들이 과거 자기 먹고살기 바쁘다고, 자식들을 방임, 방치한 것은 아동 학대가 아닐까?
부모가 출근한 사이에 자식들은 담배도 피우고, 술도 마시고, 본드도 흡입하고, 패싸움도 하고, 불량한 청소년들에게 구타도 당해보고, 돈도 빼앗기고 온갖 폭력과 협박에 시달릴 수도 있다. 그럴 때 부모라는 사람들은, 자식들을 위해서 뭘 했나???
자식들이 그런 환경에 놓이도록 부모라는 자들은 뭐했나? 더구나 그런 처지에 놓이는 자기 자식들과 진지하게 대화해 보고 탈선, 방황 앞에서 자식의 바람막이가 되어주는 부모들... 극히 드물었다. 그리고 한때의 실수로 대부분의 자식들은 어려운 처지에 놓이게 됐다. 그렇게 방치당하고 자란 자식들 중, 몇 명이나 성공하고, 좋은 직장들을 구하면서 살까???
단순히 돈이나 벌어서 넉넉하게 먹이고 입히고 재워만 주면 그게 다인가??? 설령 그것을 무슨 대단한 혜택으로 여기는 자라면, 그런 자들은 자식들에게 버림받아도 싸다. 짐승도 자기 새끼들에게 그정도는 해 준다. 먹여주고, 입혀주고, 재워주는 것...
짐승도 하는 일을 갖다가, 무슨 대단한 혜택으로 여기는 그 피해의식! 그런게 자식들로 하여금 자기 부모에 대해 거부감과 염증과 학을 떼게 만드는 것이다.
여건이 안돼서 노인을 모시지 못하는 것, 어린시절에 겪었던 부모의 부당한 대우에 대한 반감으로 부모를 멀리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노인 방임이나 학대로 봐서는 안된다. 노인이라고, 어른이라고 해서 자식, 아랫사람이 무조건 존경하고, 무조건 복종하는 시대는 지났다.
Give and Take라는 영미식 속담도 있고, 일찍이 맹자의 역성혁명론(=임금답고 어른답지 못한 자는 임금, 어른으로 대접할 이유 없다) 처럼 주는 것만큼 대우를 받게 마련이다.
여기서 유교에서도 무조건 어른, 윗사람에게 복종만 하지 말라고 가르쳤다는 점을 우리는 주목해 보자. 일찍이 고대 원시 유교에서는 임금답지 못한 임금, 지도자 답지 못한 지도자, 어른 답지 못한 어른에게 저항하는 방벌 이라는 개념을 세워 뒀었다.
다만 송나라 때 주자 중심의 성리학, 예학으로 이어지면서 무조건 어른, 윗사람, 노인에 대한 맹목적인 복종, 존경을 강요하도록 경직되었지...
여건이 되지 않아서, 돈 문제나 재정적 조건이 되지 않아서 못 모시는 것, 어린 시절에 당한 부모의 부당한 대우와 폭력에 대한 반감 등으로 노인을 모시지 않는 것이라면, 그것은 노인 학대는... 아니다. 해 주는 만큼 대우를 받게 마련이다. 무조건 나이로 깔아뭉개고, 무조건 아랫사람에게만 복종을 요구하는 것은 잘못이다. 그렇게 해서는 억지로 복종시킬 수는 있어도 속으로는 불평 불만과 반감, 적개심만을 생산할 뿐이다.
자식들에게 얹혀살지 않기, 적당히 사람들과 거리를 두기, 그리고 자식들에 대한 헛된 믿음, 기대감 버리기... 이 것부터 연습해야 될 것 같다.
이것을 연습하지 않는다면 아마 오래도록 괴로울 것이다. 제 승질 제가 못이겨서 말이다.
시골은 애 교육시키기 안 좋다.
시골은 애 교육시키기 안 좋다.
범죄없는 마을??? 그런가?
시골, 농촌 인심은 순박하다??? 그런가?
도시는 야박하고 정이 없는데 시골은 살만하다??? 어디 그런가?
확실히 시골은 살기가 나쁘다. 우선 지역 유지하고 토호들의 입김이 너무 거세다.
정말 공부 할 마음이 있는 자식을 두었다면, 특히 유순하고 나약하고 세상물정 모르는 자식을 두었다면, 아니 부모 본인이 미련하고 무지해서 자식을 닭잡듯이 잡아서 키웠다면 시골로는 이사오지 마라. 자칫 하면 애 버리는 수가 있다.
특히 본인 혹은 자식들이 튀는 행동, 모난 행동으로 지역 토호나 지역 유지 집 자식에게 찍히면 그 자식은 공부 다 했다고 보면 된다.
또, 성인이 되어서도 지역 유지하고 토호들의 입김이 너무 거세서 시골에서는 시청이나 면사무소, 교육청 기간제 계약직 자리 조차 얻기 힘들다. 그런 것도 모르고 돈 몇푼 때문에 농촌으로 이사간 사람들, 대부분 후회할 것이다. 아니... 어쩌면 자기 자식이 왜 탈선하고, 망가졌는지 조차도 모르는 인간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그런 자들 입으로는 들어가는 쌀 하나도 아깝다.
범죄 없는 마을? 그것은 있어도 쉬쉬하거나 주먹구구로 넘어가기 때문이라는 것은 알려나 모르겠다.
애시당초 그 시골이 고향이고, 그곳에서 쭉 살아왔다면 모를까... 도시에서 시골로 이사가는 것은 자식들에게는 치명적이다. 특히 자식이 사춘기를 전후했을 무렵에는 확실히 시골로 이사가지 않는게 여러 모로 좋은 것 같다.
어디로 귀농했다가, 동네놈들이 작당하고 개 죽인 일... 개 소리 시끄럽다고 그랬는지 아니면 보신탕에 눈이 멀었던지... 동네놈들이 작당해서 이 귀농한 집 개 잡아 죽이고는 시치미 딱 떼는 일이 있었다. 그 비슷한 일들이 몇건 있었고 SBS인가 어디 방송에도 떴었다. 시골은 그런 곳이다.
범죄없는 마을??? 시골, 농촌 인심은 순박하다??? 도시는 야박하고 정이 없는데 시골은 살만하다??? 착각하지 마라.
워낭소리, 집으로, 웰컴투동막골, 6시 내고향, 전원일기, 대추나무 사랑걸렸네 등에 속지 마라.
그것은 그 동네에서 계속 살던 놈들 끼리나 그렇게 정겹게 보이는 것이다.
범죄없는 마을??? 그런가?
시골, 농촌 인심은 순박하다??? 그런가?
도시는 야박하고 정이 없는데 시골은 살만하다??? 어디 그런가?
확실히 시골은 살기가 나쁘다. 우선 지역 유지하고 토호들의 입김이 너무 거세다.
정말 공부 할 마음이 있는 자식을 두었다면, 특히 유순하고 나약하고 세상물정 모르는 자식을 두었다면, 아니 부모 본인이 미련하고 무지해서 자식을 닭잡듯이 잡아서 키웠다면 시골로는 이사오지 마라. 자칫 하면 애 버리는 수가 있다.
특히 본인 혹은 자식들이 튀는 행동, 모난 행동으로 지역 토호나 지역 유지 집 자식에게 찍히면 그 자식은 공부 다 했다고 보면 된다.
또, 성인이 되어서도 지역 유지하고 토호들의 입김이 너무 거세서 시골에서는 시청이나 면사무소, 교육청 기간제 계약직 자리 조차 얻기 힘들다. 그런 것도 모르고 돈 몇푼 때문에 농촌으로 이사간 사람들, 대부분 후회할 것이다. 아니... 어쩌면 자기 자식이 왜 탈선하고, 망가졌는지 조차도 모르는 인간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그런 자들 입으로는 들어가는 쌀 하나도 아깝다.
범죄 없는 마을? 그것은 있어도 쉬쉬하거나 주먹구구로 넘어가기 때문이라는 것은 알려나 모르겠다.
애시당초 그 시골이 고향이고, 그곳에서 쭉 살아왔다면 모를까... 도시에서 시골로 이사가는 것은 자식들에게는 치명적이다. 특히 자식이 사춘기를 전후했을 무렵에는 확실히 시골로 이사가지 않는게 여러 모로 좋은 것 같다.
어디로 귀농했다가, 동네놈들이 작당하고 개 죽인 일... 개 소리 시끄럽다고 그랬는지 아니면 보신탕에 눈이 멀었던지... 동네놈들이 작당해서 이 귀농한 집 개 잡아 죽이고는 시치미 딱 떼는 일이 있었다. 그 비슷한 일들이 몇건 있었고 SBS인가 어디 방송에도 떴었다. 시골은 그런 곳이다.
범죄없는 마을??? 시골, 농촌 인심은 순박하다??? 도시는 야박하고 정이 없는데 시골은 살만하다??? 착각하지 마라.
워낭소리, 집으로, 웰컴투동막골, 6시 내고향, 전원일기, 대추나무 사랑걸렸네 등에 속지 마라.
그것은 그 동네에서 계속 살던 놈들 끼리나 그렇게 정겹게 보이는 것이다.
박정희 허위사실 유포한 증거자료 찾아냅시다.
박정희 허위사실 유포한 증거자료 찾아냅시다.
이승만, 박정희에 대한 허위 사실 유포한 자료들 수집해 둡시다.
사자의 명예 훼손이라... 하하하. 드디어 빨갱이들이 제 무덤을 팠습니다. 이번 기회에 지금껏 좌좀들이 박정희, 이승만 모독해온 것 한 번 제대로 털어 봅시다.
5·18 희생자 비하한 대학생 일베 회원 기소… 사자 명예회손 혐의
검찰, 5·18 희생자 비하한 일베 회원 기소… 사자 명예훼손 혐의
일베 회원 기소, 5·18 민주화운동 희생자 명예 훼손 혐의
일베 회원 기소, 5·18 희생자 관 '택배' 비하 명예훼손 혐의…
이승만 백년전쟁 타령, 이승만이 친일파를 신임했다는 허위사실들... 이것 죄다 사자 명예 훼손 아니냐?
박정희 역시 죽은 사람이고 사자이니, 박정희에 대한 허위사실들... 오카모토 미노루 설이라던가, 터무늬 없는 여자 200명 설 같은것들, 요시 그란도 타령 등... 이런것 싹 찾아서 사자의 명예훼손으로 고소하면 되겠군.
이승만, 박정희에 대한 허위 사실 유포한 자료들 수집해 둡시다.
덧붙여 친일인명사전으로 조리돌림한 것 역시 사안에 따라 사자에 대한 명예훼손감으로는 충분하겠고... 하하하
이승만, 박정희에 대한 허위 사실 유포한 자료들 수집해 둡시다.
사자의 명예 훼손이라... 하하하. 드디어 빨갱이들이 제 무덤을 팠습니다. 이번 기회에 지금껏 좌좀들이 박정희, 이승만 모독해온 것 한 번 제대로 털어 봅시다.
5·18 희생자 비하한 대학생 일베 회원 기소… 사자 명예회손 혐의
검찰, 5·18 희생자 비하한 일베 회원 기소… 사자 명예훼손 혐의
일베 회원 기소, 5·18 민주화운동 희생자 명예 훼손 혐의
일베 회원 기소, 5·18 희생자 관 '택배' 비하 명예훼손 혐의…
이승만 백년전쟁 타령, 이승만이 친일파를 신임했다는 허위사실들... 이것 죄다 사자 명예 훼손 아니냐?
박정희 역시 죽은 사람이고 사자이니, 박정희에 대한 허위사실들... 오카모토 미노루 설이라던가, 터무늬 없는 여자 200명 설 같은것들, 요시 그란도 타령 등... 이런것 싹 찾아서 사자의 명예훼손으로 고소하면 되겠군.
이승만, 박정희에 대한 허위 사실 유포한 자료들 수집해 둡시다.
덧붙여 친일인명사전으로 조리돌림한 것 역시 사안에 따라 사자에 대한 명예훼손감으로는 충분하겠고... 하하하
2013년 11월 3일 일요일
김재규가 의사 선생님인 증거?
김재규가 의사 선생님인 증거?
김재규가 의사라니, 김재규가 으사 양반이라니...
누가 김재규 의과대학 졸업한 증거 or 김재규가 대학교 의과 다닌 증거 좀 찾아보자.
아니면 김재규가 의사 면허 취득했다는 증거나 좀 제출해다오. 김재규가 의사 선생님인 증거 구경좀 해보자.
의사 면허도 없고, 의사 면허에 응시한 적 조차 없고, 의대생도 아닌 김재규가 왜 의사인가?
열사는 맞다. 차지철 때문에 열받아서 사고치고 죽었으니까 김재규 열사(열받고 사망)는 맞다만... 의사는 왜 의사인지 모르겠다. 김재규가 왜 의사란 말인가?
김재규가 의사라니, 김재규가 으사 양반이라니...
누가 김재규 의과대학 졸업한 증거 or 김재규가 대학교 의과 다닌 증거 좀 찾아보자.
아니면 김재규가 의사 면허 취득했다는 증거나 좀 제출해다오. 김재규가 의사 선생님인 증거 구경좀 해보자.
의사 면허도 없고, 의사 면허에 응시한 적 조차 없고, 의대생도 아닌 김재규가 왜 의사인가?
열사는 맞다. 차지철 때문에 열받아서 사고치고 죽었으니까 김재규 열사(열받고 사망)는 맞다만... 의사는 왜 의사인지 모르겠다. 김재규가 왜 의사란 말인가?
2013년 11월 2일 토요일
복지제도... 돈이 어디서 나오겠냐?
복지제도... 돈이 어디서 나오겠냐?
정지선 넘었다고 과태료 물려서 뭐같지? 만화 애니 게임 때려잡아서 뭐같고, 또 흡연장소 마련도 안해주고 흡연자들 돈 뜯어서 뭐같지??? 이미 예상된 순서대로 착착 진행되는 것 뿐이다. 그 잘나신 입진보 개새끼들 덕분에...
복지니 무상이니 하면 뭐 나라에서 공짜로 돈을 척척 퍼주는 줄로 알았나???
그 잘난 복지제도 하려면 돈이 필요한데, 그 돈이 어디서 어떻게 조달될 것 같냐?
그런데서 뜯어내야지 어디서 뜯어내는데???
벌써 시작된 것이다. 그 잘난 입진보 쓰레기들께서 무상, 복지 타령할때부터 이미 예상된 것이라니까...
월급쟁이들 4대보험 올리고, 4대보험 외에도 돈 더 뜯어내고
영화 드라마 내용검열 해서 돋 뜯고
뮤직비디오 검열해서 돈 뜯고
흡연금지 정책&흡연자 돈 뜯고
하나하나 시작하고 있지 않냐. 그 잘난 무상 복지 시스템 완비를 위해서... 왜? 아니꼽냐?
존나 숨막히고 깝깝해 죽겠지???
한국이 석유나 석탄, 가스같은 지하자원이 풍부하기를 하냐, 아니면 동식물 생물자원이 풍부하기를 하냐, 아니면 금, 은은 19세기에 다 캐가서 고갈된 상태고... 시발 개뿔 뭐가 있길래, 어디에서 돈을 마련할 것 같냐?
이건 초기단계고, 벌써 군출신 정치인들 조지고, 영화계 조지고, 프로그래머 조지고, 유흥업 조지고, 이제는 재벌 차례다. 이제는 뭐 게임 조지고...
그래서 그동안 민주화 보상금 수십억 무더기로 해쳐먹은 것 아니야? 그러고도 부족해서 징용 보상금하고 위안부 성금까지 떼어쳐먹었었지? 지금쯤 누군가는 다 보고 기억하고 있다.
복지? 복지 좋아하다가 다같이 멍잡게 생겼다. 참 꼴 좋겠다. 개새끼들...
이게 다 그 잘난 무상복지를 하기 위해서 아니겠냐. 아이들 밥 한끼 먹이는게 잘못이냐고? 쓰레기같은 입진보 양아치들...
복지? 자기 월급에서 돈 30만원, 40만원 50만원 우수리 떼이는 것을 봐야 정신차리려나.
p.s : 자기가 게을러서 가난하게 사는 놈들, 자기가 모자란 인간, 멍청한 인간이라서 가난하게 사는 것까지 국가가 해결을 해주길 바라다니.
국가는 최소한의 간섭 이상을 해서는 안되는 거다. 최소한의 간섭 이상의 간섭을 하게 되면 필연적으로 독재 or 국민의 무기력화로 흘러갈 수밖에 없다.
정지선 넘었다고 과태료 물려서 뭐같지? 만화 애니 게임 때려잡아서 뭐같고, 또 흡연장소 마련도 안해주고 흡연자들 돈 뜯어서 뭐같지??? 이미 예상된 순서대로 착착 진행되는 것 뿐이다. 그 잘나신 입진보 개새끼들 덕분에...
복지니 무상이니 하면 뭐 나라에서 공짜로 돈을 척척 퍼주는 줄로 알았나???
그 잘난 복지제도 하려면 돈이 필요한데, 그 돈이 어디서 어떻게 조달될 것 같냐?
그런데서 뜯어내야지 어디서 뜯어내는데???
벌써 시작된 것이다. 그 잘난 입진보 쓰레기들께서 무상, 복지 타령할때부터 이미 예상된 것이라니까...
월급쟁이들 4대보험 올리고, 4대보험 외에도 돈 더 뜯어내고
영화 드라마 내용검열 해서 돋 뜯고
뮤직비디오 검열해서 돈 뜯고
흡연금지 정책&흡연자 돈 뜯고
하나하나 시작하고 있지 않냐. 그 잘난 무상 복지 시스템 완비를 위해서... 왜? 아니꼽냐?
존나 숨막히고 깝깝해 죽겠지???
한국이 석유나 석탄, 가스같은 지하자원이 풍부하기를 하냐, 아니면 동식물 생물자원이 풍부하기를 하냐, 아니면 금, 은은 19세기에 다 캐가서 고갈된 상태고... 시발 개뿔 뭐가 있길래, 어디에서 돈을 마련할 것 같냐?
이건 초기단계고, 벌써 군출신 정치인들 조지고, 영화계 조지고, 프로그래머 조지고, 유흥업 조지고, 이제는 재벌 차례다. 이제는 뭐 게임 조지고...
그래서 그동안 민주화 보상금 수십억 무더기로 해쳐먹은 것 아니야? 그러고도 부족해서 징용 보상금하고 위안부 성금까지 떼어쳐먹었었지? 지금쯤 누군가는 다 보고 기억하고 있다.
복지? 복지 좋아하다가 다같이 멍잡게 생겼다. 참 꼴 좋겠다. 개새끼들...
이게 다 그 잘난 무상복지를 하기 위해서 아니겠냐. 아이들 밥 한끼 먹이는게 잘못이냐고? 쓰레기같은 입진보 양아치들...
복지? 자기 월급에서 돈 30만원, 40만원 50만원 우수리 떼이는 것을 봐야 정신차리려나.
p.s : 자기가 게을러서 가난하게 사는 놈들, 자기가 모자란 인간, 멍청한 인간이라서 가난하게 사는 것까지 국가가 해결을 해주길 바라다니.
국가는 최소한의 간섭 이상을 해서는 안되는 거다. 최소한의 간섭 이상의 간섭을 하게 되면 필연적으로 독재 or 국민의 무기력화로 흘러갈 수밖에 없다.
2013년 10월 27일 일요일
김재규가 왜 의사인가?
김재규가 왜 의사인가?
김재규가 왜 의사이고 열사인가??? 열사는 맞는 것 같다. 열받아서 차지철을 저격하고 죽음에 이르렀으니 "열받아서 사망한 사람"은 맞다. 그런데 김재규가 왜 의사가 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구나.
더구나 박정희 "장군님" 생일을 기념하여, 우리 "위대하신 박정희 장군님"께 바칠 고급시계 생일선물까지 공수하신 분이니 심지가 곧은 의사, 열사는 아닌 것이 분명해 보인다.
김재규가 의대를 졸업하였나? 어느 의대를 졸업했는지???
아니면 김재규가 대학교 의학과를 졸업하였나?
아니면 김재규가 의사 면허라도 취득했나???
누가 김재규가 의사면허 취득한 증거좀 누가 찾아주시오. 진귀한 자료, 나도 구경좀 해보게... 교사 자격증 없는 김대중을 선생 만들더니, 의사 면허 없는 김재규를 의사 슨상님으로 둔갑시켰네?
김재규가 의과 대학을 나왔거나 의사 면허에 합격한 증거가 나온다면 이보다 경이로운 발견은 없을 듯 싶다.
박정희 "장군님" 생일 선물로 고급 손목시계를 공수하신 김재규 으사 양반의 노고는 생각만 해도 눈물겹기까지 하다. 이보시오 으사양반, 비싼 고급시계 마련하는 것도 우국충정이신가?
의사 면허도 없고, 의과 대학 문턱도 못밟아본 김재규가 의사라니... 할 짓들 더럽게도 없는 모양이다. 차지철 때문에 열받고 뒈졌으니 열사는 맞는 것 같다. 그러나 의사는 아니다.
ps : 김재규의 의사면허 이전에, 김대중의 교사자격증 부터 먼저 입증해야 하지 않을까??? 하하하
김재규가 왜 의사이고 열사인가??? 열사는 맞는 것 같다. 열받아서 차지철을 저격하고 죽음에 이르렀으니 "열받아서 사망한 사람"은 맞다. 그런데 김재규가 왜 의사가 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구나.
더구나 박정희 "장군님" 생일을 기념하여, 우리 "위대하신 박정희 장군님"께 바칠 고급시계 생일선물까지 공수하신 분이니 심지가 곧은 의사, 열사는 아닌 것이 분명해 보인다.
김재규가 의대를 졸업하였나? 어느 의대를 졸업했는지???
아니면 김재규가 대학교 의학과를 졸업하였나?
아니면 김재규가 의사 면허라도 취득했나???
누가 김재규가 의사면허 취득한 증거좀 누가 찾아주시오. 진귀한 자료, 나도 구경좀 해보게... 교사 자격증 없는 김대중을 선생 만들더니, 의사 면허 없는 김재규를 의사 슨상님으로 둔갑시켰네?
김재규가 의과 대학을 나왔거나 의사 면허에 합격한 증거가 나온다면 이보다 경이로운 발견은 없을 듯 싶다.
박정희 "장군님" 생일 선물로 고급 손목시계를 공수하신 김재규 으사 양반의 노고는 생각만 해도 눈물겹기까지 하다. 이보시오 으사양반, 비싼 고급시계 마련하는 것도 우국충정이신가?
의사 면허도 없고, 의과 대학 문턱도 못밟아본 김재규가 의사라니... 할 짓들 더럽게도 없는 모양이다. 차지철 때문에 열받고 뒈졌으니 열사는 맞는 것 같다. 그러나 의사는 아니다.
ps : 김재규의 의사면허 이전에, 김대중의 교사자격증 부터 먼저 입증해야 하지 않을까??? 하하하
2013년 10월 12일 토요일
2013년 10월 10일 목요일
역시 미국을 믿는 것은 곤란하다
역시 미국을 믿는 것은 곤란하다
미국을 전적으로 믿는 것은 상당히 곤란하다. 미국은 언제든 자국의 이익에 따라 한국을 지키는 것 뿐이니까...
미국은 이렇게 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위안부 할머니들 팔아서 장사하는 인간들의 잔머리를 미국이 모르겠는가?
미국은 언제든지 일본의 손을 들어줄 수도 있다. 아니 언제든 한국이라는 나라를 포기할 수도 있음이다.
주한미군을 한국에 주둔시키는 것은 어디까지나 한국이 미국의 이해관계에 부합하는 나라니까 주둔해있는 것이다. 미국의 입장에서 아무런 이해가 안될 때는 언제든지 주한미군 뺄 수 있다.
벌써 1949년 한 차례 주한미군을 뺐었고, 1972~1979년 사이에 주한미군 철수를 시도했으며, 2003~2007년 노무현 정권 때 슬그머니 철수까지도 검토하려다가 한발 물러섰다. 전작권 반환 시도가 과연 무엇을 의미하겠는가???
반미 장사꾼들, 주제파악 못하고 "설마 미국이 한국을 버리겠는가" 싶어서 반미질하는데... 결국 아쉬운 것은 한국이다.
결국 아쉬운 것은 한국이다.
ps : 한국의 반미주의자는 크게 세 부류로 나뉜다. 박정희와 같은 골수 내셔널리스트, 북한을 추종하는 NL 주사파 계열, 그리고 설마 "미국이 한국을 버리겠는가" 하는 생각으로 개기는 부류... ㅋ
미국을 전적으로 믿는 것은 상당히 곤란하다. 미국은 언제든 자국의 이익에 따라 한국을 지키는 것 뿐이니까...
미국은 이렇게 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위안부 할머니들 팔아서 장사하는 인간들의 잔머리를 미국이 모르겠는가?
미국은 언제든지 일본의 손을 들어줄 수도 있다. 아니 언제든 한국이라는 나라를 포기할 수도 있음이다.
주한미군을 한국에 주둔시키는 것은 어디까지나 한국이 미국의 이해관계에 부합하는 나라니까 주둔해있는 것이다. 미국의 입장에서 아무런 이해가 안될 때는 언제든지 주한미군 뺄 수 있다.
벌써 1949년 한 차례 주한미군을 뺐었고, 1972~1979년 사이에 주한미군 철수를 시도했으며, 2003~2007년 노무현 정권 때 슬그머니 철수까지도 검토하려다가 한발 물러섰다. 전작권 반환 시도가 과연 무엇을 의미하겠는가???
반미 장사꾼들, 주제파악 못하고 "설마 미국이 한국을 버리겠는가" 싶어서 반미질하는데... 결국 아쉬운 것은 한국이다.
결국 아쉬운 것은 한국이다.
ps : 한국의 반미주의자는 크게 세 부류로 나뉜다. 박정희와 같은 골수 내셔널리스트, 북한을 추종하는 NL 주사파 계열, 그리고 설마 "미국이 한국을 버리겠는가" 하는 생각으로 개기는 부류... ㅋ
2013년 9월 21일 토요일
위안부 팔이 장사꾼들의 추태
위안부 팔이 장사꾼들의 추태
미국에서 더 이상 위안부 할머니들 앞세운 장사가 먹혀들지 않으니, 이제는 프랑스에 가서 위안부를 팔아먹는 것인가???
http://news.kbs.co.kr/news/NewsView.do?SEARCH_NEWS_CODE=2726042
http://news.sbs.co.kr/section_news/news_read.jsp?news_id=N1001988352
http://www.yonhapnews.co.kr/international/2013/09/18/0601130100AKR20130918065200081.HTML
정말 추접스럽다. 일본의 시민단체들과 사회당 일부 정치인들이 참여해서 만든 아세아여성기금에서의 구호, 지원도 거부한 너희들이 왜 외국에 나가서 위안부 할머니들을 팔아서 반일감정을 조장하는가???
참고로 일본의 사회당은 한국으로 치면 민주당과 통진당의 중간쯤 되는 정치색을 가진 정당이다. 자민당은 새누리당, 한나라당 정도의 스탠스고, 민주당, 그 다음이 사회당, 그리고 공산당이 있다. 일본 공산당은 한국의 진보신당이나 진보정의당 정도의 스탠스다. 자민당이나 일본 유신회 하고는 정치적 스탠스가 다르다.
자민당이 한국의 한나라당, 새누리당 정도의 이념, 정치색을 가진 집단이고, 일본 유신회는 그보다 더 강경 성향이다.
http://newsmaker.khan.co.kr/khnm.html?mode=view&code=115&artid=201112061801261&
그리고...
일본에서 준 위안부 할머니들 보상금 빼돌린 인간들... 뭐지?
http://www.independent.co.kr/news/article.html?no=5517
http://www.independent.co.kr/news/article.html?no=5490
페미들의 패악질 때문에 일부 위안부들은 지만원 박사 찾아와서 진실을 폭로한 일도 있다.
http://www.independent.co.kr/news/article.html?no=5508
http://www.independent.co.kr/news/article.html?no=5487
그리고...
일본에 가서 이런 주장을 한 자가 누구였을까???
그리고 또... 같은 한국인 업주나 포주 손에 팔려간 사람들도 일본의 잘못인가? 그것도 일본 정부 탓인가???
위안부 할머니들 이용해서 돈 뜯어먹는 추악한 인간들... 저런 자들이 반한감정을 유발하고, 신뢰도를 떨어뜨린다. 저런 자들이 한국에 대한 불신을 유발하는 것이다. 일본에는 논리력을 갖춘 네티즌이 없고, 일본놈들은 아무런 증거, 자료도 수집 못하는 병신, 장애자들만 모인 줄 아나???
당시 매일경제하고 조중동에서 이 내용, 기사로 보도한 줄로 안다. 조중동 기사는 삭제됐는지 없더만...
미국에서 더 이상 위안부 할머니들 앞세운 장사가 먹혀들지 않으니, 이제는 프랑스에 가서 위안부를 팔아먹는 것인가???
http://news.kbs.co.kr/news/NewsView.do?SEARCH_NEWS_CODE=2726042
http://news.sbs.co.kr/section_news/news_read.jsp?news_id=N1001988352
http://www.yonhapnews.co.kr/international/2013/09/18/0601130100AKR20130918065200081.HTML
정말 추접스럽다. 일본의 시민단체들과 사회당 일부 정치인들이 참여해서 만든 아세아여성기금에서의 구호, 지원도 거부한 너희들이 왜 외국에 나가서 위안부 할머니들을 팔아서 반일감정을 조장하는가???
참고로 일본의 사회당은 한국으로 치면 민주당과 통진당의 중간쯤 되는 정치색을 가진 정당이다. 자민당은 새누리당, 한나라당 정도의 스탠스고, 민주당, 그 다음이 사회당, 그리고 공산당이 있다. 일본 공산당은 한국의 진보신당이나 진보정의당 정도의 스탠스다. 자민당이나 일본 유신회 하고는 정치적 스탠스가 다르다.
자민당이 한국의 한나라당, 새누리당 정도의 이념, 정치색을 가진 집단이고, 일본 유신회는 그보다 더 강경 성향이다.
http://newsmaker.khan.co.kr/khnm.html?mode=view&code=115&artid=201112061801261&
그리고...
일본에서 준 위안부 할머니들 보상금 빼돌린 인간들... 뭐지?
http://www.independent.co.kr/news/article.html?no=5517
http://www.independent.co.kr/news/article.html?no=5490
페미들의 패악질 때문에 일부 위안부들은 지만원 박사 찾아와서 진실을 폭로한 일도 있다.
http://www.independent.co.kr/news/article.html?no=5508
http://www.independent.co.kr/news/article.html?no=5487
그리고...
일본에 가서 이런 주장을 한 자가 누구였을까???
그리고 또... 같은 한국인 업주나 포주 손에 팔려간 사람들도 일본의 잘못인가? 그것도 일본 정부 탓인가???
위안부 할머니들 이용해서 돈 뜯어먹는 추악한 인간들... 저런 자들이 반한감정을 유발하고, 신뢰도를 떨어뜨린다. 저런 자들이 한국에 대한 불신을 유발하는 것이다. 일본에는 논리력을 갖춘 네티즌이 없고, 일본놈들은 아무런 증거, 자료도 수집 못하는 병신, 장애자들만 모인 줄 아나???
당시 매일경제하고 조중동에서 이 내용, 기사로 보도한 줄로 안다. 조중동 기사는 삭제됐는지 없더만...
윤보선 기념행사"만" 통제?
윤보선 기념행사"만" 통제?
장준하 추모 행사는 막지 않지만, 윤보선 추모 행사는 막는다???
윤보선이라면 박정희의 유력한 정적 중의 한명이다. 더구나 박정희의 민족주의 사상을 대놓고 비판하고 민주주의 원칙에 어긋난다고 글과 칼럼 등을 통해 이론적으로 논박한 것은 윤보선이다. 그래서 윤보선 기념 행사조차 막았나???
그렇다면 대선기간 중에 장준하 시신을 발굴하고, 두개골 함몰 등의 의혹을 제기하는 것은 왜 막지 못했나?
사실 민족주의와 애국심이야말로 국민들을 통제하기 쉬운 수단이긴 하다. 야당 인사들과 기득권층의 이해관계가 맞았기 때문은 아닌가 싶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3&aid=0004771184
대선에 영향을 준다는 것은 핑계에 불과하다. 일부 재야인사들의 윤보선 기념행사를 막을 이유가 있었는가 싶다. 그렇다면 운동권 세력이 장준하를 들먹이는 것은 왜 반대하지 않았는가?
이제는 야당 인사라고 해도 민족주의적인 사고방식, 민족주의적 의식을 고취하지 않는 인물은 국가 정책적으로 통제한다 이런 뜻인가?
좌든 우든 민주주의나 자유주의와는 거리가 먼 파시즘 세력과 적당적당히 움직이자는 체제유지파들이 민주주의를 이래저래 압살하는 것이다.
심지어는 박정희, 전두환에게 꾸준히 저항하던 김영삼, 김대중 이 양아치들도 민족주의, 애국심을 이용하지 않았던가... 김영삼이 조선총독부 철거라던가 뜬금없는 상해임정 타령이라던가, 김대중의 금모으기 운동, 2002년 월드컵 파시즘 등등...
향후에 파시즘적 정치인이 등장한다면 그 "정치인"만이 문제가 아니라, 평소 이렇게 파시즘을 유발할 수 있는 정책들을 암암리에 펴온 기존 정치인들 역시 함께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다.
윤보선 기념 행사가 대선에 영향 주는 것이라서 막을 일인가? 그럼 그렇다면 대선기간 중에 장준하 시신을 발굴하고, 두개골 함몰 등의 의혹을 제기하는 것은 왜 막지 못했나?
민족주의적인 인물이 아니라는 이유로, 기념행사를 금지시켜??? 에라이 가소로운 것들...
p.s : 아무리 대선기간이라지만, 야당인사도 민족주의적인 인물이 아니면 기념행사조차 통제하려는 모양이다.
박정희의 많고 많은 라이벌 중에 윤보선, 장면, 유진산, 이철승, 김영삼 등은 꽤 비중있는 인물들인데도 이 사람들 대신 장준하만 띄우는 의도를 알 수 없다. 그렇다면 함석헌도 있고, 계훈제도 있고, 문익환도 있지 않던가???
p.s 2 : 아마 야당에서는 박정희를 부인할 목적으로 장준하를 띄우는 것이고, 정부와 기득권층은 박정희 민족주의 대신 민족주의적인 인물을 대항마로 내세우도록 방관하는 것은, 국민들을 통제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어디 윤보선 뿐이랴? 서재필, 윤치호, 장면, 김규식 등등... 자유주의 내지는 합리주의적인 가치관을 지닌 인물이면 의도적으로 묻어버리고 외면해왔다.
근현대사 인물들도 이상하게 의도적으로 취사선택해서 내보낸다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국민들 스스로가 냉철한 판단력을 갖는 것을 현재 여야 정치세력들은 원치 않는 것일까? 현재 한국사회의 기득권을 차지한 정치인들이 과연 썩기는 썩은 자들이로다.
장준하 추모 행사는 막지 않지만, 윤보선 추모 행사는 막는다???
윤보선이라면 박정희의 유력한 정적 중의 한명이다. 더구나 박정희의 민족주의 사상을 대놓고 비판하고 민주주의 원칙에 어긋난다고 글과 칼럼 등을 통해 이론적으로 논박한 것은 윤보선이다. 그래서 윤보선 기념 행사조차 막았나???
그렇다면 대선기간 중에 장준하 시신을 발굴하고, 두개골 함몰 등의 의혹을 제기하는 것은 왜 막지 못했나?
사실 민족주의와 애국심이야말로 국민들을 통제하기 쉬운 수단이긴 하다. 야당 인사들과 기득권층의 이해관계가 맞았기 때문은 아닌가 싶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3&aid=0004771184
대선에 영향을 준다는 것은 핑계에 불과하다. 일부 재야인사들의 윤보선 기념행사를 막을 이유가 있었는가 싶다. 그렇다면 운동권 세력이 장준하를 들먹이는 것은 왜 반대하지 않았는가?
이제는 야당 인사라고 해도 민족주의적인 사고방식, 민족주의적 의식을 고취하지 않는 인물은 국가 정책적으로 통제한다 이런 뜻인가?
좌든 우든 민주주의나 자유주의와는 거리가 먼 파시즘 세력과 적당적당히 움직이자는 체제유지파들이 민주주의를 이래저래 압살하는 것이다.
심지어는 박정희, 전두환에게 꾸준히 저항하던 김영삼, 김대중 이 양아치들도 민족주의, 애국심을 이용하지 않았던가... 김영삼이 조선총독부 철거라던가 뜬금없는 상해임정 타령이라던가, 김대중의 금모으기 운동, 2002년 월드컵 파시즘 등등...
향후에 파시즘적 정치인이 등장한다면 그 "정치인"만이 문제가 아니라, 평소 이렇게 파시즘을 유발할 수 있는 정책들을 암암리에 펴온 기존 정치인들 역시 함께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다.
윤보선 기념 행사가 대선에 영향 주는 것이라서 막을 일인가? 그럼 그렇다면 대선기간 중에 장준하 시신을 발굴하고, 두개골 함몰 등의 의혹을 제기하는 것은 왜 막지 못했나?
민족주의적인 인물이 아니라는 이유로, 기념행사를 금지시켜??? 에라이 가소로운 것들...
p.s : 아무리 대선기간이라지만, 야당인사도 민족주의적인 인물이 아니면 기념행사조차 통제하려는 모양이다.
박정희의 많고 많은 라이벌 중에 윤보선, 장면, 유진산, 이철승, 김영삼 등은 꽤 비중있는 인물들인데도 이 사람들 대신 장준하만 띄우는 의도를 알 수 없다. 그렇다면 함석헌도 있고, 계훈제도 있고, 문익환도 있지 않던가???
p.s 2 : 아마 야당에서는 박정희를 부인할 목적으로 장준하를 띄우는 것이고, 정부와 기득권층은 박정희 민족주의 대신 민족주의적인 인물을 대항마로 내세우도록 방관하는 것은, 국민들을 통제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어디 윤보선 뿐이랴? 서재필, 윤치호, 장면, 김규식 등등... 자유주의 내지는 합리주의적인 가치관을 지닌 인물이면 의도적으로 묻어버리고 외면해왔다.
근현대사 인물들도 이상하게 의도적으로 취사선택해서 내보낸다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국민들 스스로가 냉철한 판단력을 갖는 것을 현재 여야 정치세력들은 원치 않는 것일까? 현재 한국사회의 기득권을 차지한 정치인들이 과연 썩기는 썩은 자들이로다.
2013년 9월 15일 일요일
내딸 서영이의 현실판 버전
내딸 서영이의 현실판 버전
드라마 내딸 서영이의 작가는 유행을 내다보는 안목이 있었던거 같다.
자신의 불륜으로 죽은 딸을, 교통사고로 잃었다고 사기치는 내딸 차영이(?)
멀쩡히 살아있는 아버지를 죽었다고 속였다가 들킨 내딸 혜영이(혜령이?)
아! 내딸 서영이라는 드라마가 방송 1년도 안돼서, 이렇게 빨리 유행을 타리라고는 누가 감히 상상이나 하였겠는가!!!
드라마 내딸 서영이의 작가는 유행을 내다보는 안목이 있었던거 같다.
자신의 불륜으로 죽은 딸을, 교통사고로 잃었다고 사기치는 내딸 차영이(?)
멀쩡히 살아있는 아버지를 죽었다고 속였다가 들킨 내딸 혜영이(혜령이?)
아! 내딸 서영이라는 드라마가 방송 1년도 안돼서, 이렇게 빨리 유행을 타리라고는 누가 감히 상상이나 하였겠는가!!!
2013년 9월 12일 목요일
아듀... 성재기 열사
아듀... 성재기 열사
환영받는 선각자는 없다.
잘못된 대다수, 잘못된 주류의 주장에 아니오 라고 하는 것은 대단한 용기를 필요로 한다.
그렇다! 민주주의가 정답은 아니다. 다수의 생각이 절대 진리는 아니다. 또한 다수의 생각이 무조건 옳은 것은 더더욱 아니다.
민주주의가 정답, 진리가 아니라는 주장을 패기 있게 해왔던 박정희 역시도 생전에는 민주주의를 부정한다고 엄청난 비판을 받은 바 있다. 박정희 저서 "국가와 혁명과 나" 참고...
환영받는 선각자는 없다.
잘못된 대다수, 잘못된 주류의 주장에 아니오 라고 하는 것은 대단한 용기를 필요로 한다.
그렇다! 민주주의가 정답은 아니다. 다수의 생각이 절대 진리는 아니다. 또한 다수의 생각이 무조건 옳은 것은 더더욱 아니다.
민주주의가 정답, 진리가 아니라는 주장을 패기 있게 해왔던 박정희 역시도 생전에는 민주주의를 부정한다고 엄청난 비판을 받은 바 있다. 박정희 저서 "국가와 혁명과 나" 참고...
종북과 좌파는 다르다???
종북과 좌파는 다르다???
역시 종북과 좌파는 다르다, 종북과 진보는 다르다는 주장은 개소리임이 드러났다. 애당초 한나라당-새누리당은 찍지 못하지만 민주당, 민주노동당은 지지할 수 있는 것부터가 에러였다. 자칭 좌파, 진보라는 놈들이 이석기를 옹호하거나 그 비슷한 주장을 펼치는 것을 봐라.
한국에서 좌파, 진보라고 하는 새끼들이 바로 이런 놈들이다. 이석기를 규탄하는 놈은 거의 없다.
이석기는 분명 반사회적 내란을 획책한 놈이고, 폭동을 일으키려 했던 놈이다. 설령 일부 좌익측의 주장을 받아들여서 이석기가 북한과 내통하지는 않았다 라고 해도, 반정부적 쿠데타를 획책하고 준비까지 했던 것임에는 틀림이 없다. 이미 물증이 드러나지 않았던가...
그런데도 이석기 같은 놈을 정신병자로 모는 것들이 있다. 그것이 자칭 진보라는 자들의 실체다.
http://www.edaily.co.kr/news/NewsRead.edy?SCD=JF21&newsid=01922086602912568&DCD=A00602&OutLnkChk=Y
http://www.viewsnnews.com/article/view.jsp?seq=102930
역설적이게도 이석기를 단순 정신병자로 몰고 가는 표절중권 같은 것들이 이 시대의 살아있는 "진보적" 지성 행세를 하는 놈들과 자칭 진보라는 점이다.
국정원 선거 물타기 음모론, 프락치 매수론, 국정원의 공안정국 조성을 위한 꼼수라는 주장을 하는 놈들부터 이석기 개인의 문제, 이석기 개인이 정신병자로 몰고가는 놈들 등...
한국에서 좌파, 진보라고 하는 새끼들이 바로 이런 놈들이다. 이석기를 규탄하는 놈은 거의 없다.
종북과 좌파가 다르다고??? 다르기는 개뿔...
종북과 진보는 다르다? 어차피 과거 맑스레닌을 신처럼 받들다가 나중에 김일성 김정일, 김대중 노무현으로 신앙만 바꾼 놈들(NL) 하고, 여전히 맑스 레닌을 숭배하는 신앙인(PD)들일 뿐, 본질적으로 달라진 것은 없다.
종북과 진보는 다르다? 다르면 뭐 어쩔 셈인가? 그 자들은 새누리당은 찍을 수 없어도, 통진당이나 민주노동당, 민주당은 "비판적 지지"를 하면서 찍어줄 수 있는 자들이다. 뭘 알고나 생각해봐라.
역시 종북과 좌파는 다르다, 종북과 진보는 다르다는 주장은 개소리임이 드러났다. 애당초 한나라당-새누리당은 찍지 못하지만 민주당, 민주노동당은 지지할 수 있는 것부터가 에러였다. 자칭 좌파, 진보라는 놈들이 이석기를 옹호하거나 그 비슷한 주장을 펼치는 것을 봐라.
한국에서 좌파, 진보라고 하는 새끼들이 바로 이런 놈들이다. 이석기를 규탄하는 놈은 거의 없다.
이석기는 분명 반사회적 내란을 획책한 놈이고, 폭동을 일으키려 했던 놈이다. 설령 일부 좌익측의 주장을 받아들여서 이석기가 북한과 내통하지는 않았다 라고 해도, 반정부적 쿠데타를 획책하고 준비까지 했던 것임에는 틀림이 없다. 이미 물증이 드러나지 않았던가...
그런데도 이석기 같은 놈을 정신병자로 모는 것들이 있다. 그것이 자칭 진보라는 자들의 실체다.
http://www.edaily.co.kr/news/NewsRead.edy?SCD=JF21&newsid=01922086602912568&DCD=A00602&OutLnkChk=Y
http://www.viewsnnews.com/article/view.jsp?seq=102930
역설적이게도 이석기를 단순 정신병자로 몰고 가는 표절중권 같은 것들이 이 시대의 살아있는 "진보적" 지성 행세를 하는 놈들과 자칭 진보라는 점이다.
국정원 선거 물타기 음모론, 프락치 매수론, 국정원의 공안정국 조성을 위한 꼼수라는 주장을 하는 놈들부터 이석기 개인의 문제, 이석기 개인이 정신병자로 몰고가는 놈들 등...
한국에서 좌파, 진보라고 하는 새끼들이 바로 이런 놈들이다. 이석기를 규탄하는 놈은 거의 없다.
종북과 좌파가 다르다고??? 다르기는 개뿔...
종북과 진보는 다르다? 어차피 과거 맑스레닌을 신처럼 받들다가 나중에 김일성 김정일, 김대중 노무현으로 신앙만 바꾼 놈들(NL) 하고, 여전히 맑스 레닌을 숭배하는 신앙인(PD)들일 뿐, 본질적으로 달라진 것은 없다.
종북과 진보는 다르다? 다르면 뭐 어쩔 셈인가? 그 자들은 새누리당은 찍을 수 없어도, 통진당이나 민주노동당, 민주당은 "비판적 지지"를 하면서 찍어줄 수 있는 자들이다. 뭘 알고나 생각해봐라.
2013년 9월 8일 일요일
이석기 사건... 너무 빨리 잡았다.
이석기 사건... 너무 빨리 잡았다.
이석기 사건... 국정원에서 너무 빨리 잡았다는 생각이 든다. 그 놈들이 사고를 친 후에, 아니면 무전기라도 들고 설칠 때 잡아버렸어야 했다.
자칭 진보라는 놈들, 이석기 개인의 문제, 이석기가 정신병자라는 개소리를 해가며 물타기하려는 새끼들, 국정원의 선거 부정을 숨기려는 날조라는 음모론, 국정원의 공안정국 조성 타령 등의 음모론이나 날조하고 있지 않던가???
만약 사고가 터진 다음에 체포하면 그러면 희생자는 일부 나타나겠지만, 증거가 확실한데 무슨 변명을 할 수 있겠나?
국정원에서 3년간 내사를 했다면 어떻게 행동할 것이라는 것을 모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전화국이든 다리 하나든 뭐 하나 사고를 쳤을 때, 그때 신속히 잡았어야 했다. RO 조직원 100명에, 그에 포섭된 사람이 1인당 최소 3,4명 정도라면 최소 300~400명 정도의 가담자가 있었을 것이다.
군경이 합동으로 진압하면 그 정도의 인원은 반나절이면 족히 진압할수 있고, 요즘은 CCTV와 감시카메라, 녹음장치들이 있어서 5.18 폭동 때처럼 유언비어 날조도 쉽지 않다.
조금만 더 있다가 잡지... 그리되면 희생자가 생기겠지만, 아예 그 사건을 계기로 통합진보당, 진보정의당은 물론이고 민주노총, 전교조, 민주당까지 싸그리 날려버릴 수 있는 절호의 찬스가 되었을텐데... 아깝다.
ps : 국민을 볼모로 했다는 비판?
국정원, 검찰, 경찰이 만약 2010년 1월 1일에 그 정보를 입수했다고 쳐도, 언론에는 2013년 1월 1일에 정보를 입수했다 라고 해버리면 그만이다. 국정원, 검찰, 경찰이 그렇다는데 어쩔 셈인가?
아무리 사실, 진실이다 라고 하더라도 입증할 증거가 없으면 말짱 도루묵이다. 증거가 없으면, 그게 아무리 사실이고 진실이라고 해도 주장하는 쪽이 바보, 병신이 되는 것이다.
이석기 사건... 국정원에서 너무 빨리 잡았다는 생각이 든다. 그 놈들이 사고를 친 후에, 아니면 무전기라도 들고 설칠 때 잡아버렸어야 했다.
자칭 진보라는 놈들, 이석기 개인의 문제, 이석기가 정신병자라는 개소리를 해가며 물타기하려는 새끼들, 국정원의 선거 부정을 숨기려는 날조라는 음모론, 국정원의 공안정국 조성 타령 등의 음모론이나 날조하고 있지 않던가???
만약 사고가 터진 다음에 체포하면 그러면 희생자는 일부 나타나겠지만, 증거가 확실한데 무슨 변명을 할 수 있겠나?
국정원에서 3년간 내사를 했다면 어떻게 행동할 것이라는 것을 모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전화국이든 다리 하나든 뭐 하나 사고를 쳤을 때, 그때 신속히 잡았어야 했다. RO 조직원 100명에, 그에 포섭된 사람이 1인당 최소 3,4명 정도라면 최소 300~400명 정도의 가담자가 있었을 것이다.
군경이 합동으로 진압하면 그 정도의 인원은 반나절이면 족히 진압할수 있고, 요즘은 CCTV와 감시카메라, 녹음장치들이 있어서 5.18 폭동 때처럼 유언비어 날조도 쉽지 않다.
조금만 더 있다가 잡지... 그리되면 희생자가 생기겠지만, 아예 그 사건을 계기로 통합진보당, 진보정의당은 물론이고 민주노총, 전교조, 민주당까지 싸그리 날려버릴 수 있는 절호의 찬스가 되었을텐데... 아깝다.
ps : 국민을 볼모로 했다는 비판?
국정원, 검찰, 경찰이 만약 2010년 1월 1일에 그 정보를 입수했다고 쳐도, 언론에는 2013년 1월 1일에 정보를 입수했다 라고 해버리면 그만이다. 국정원, 검찰, 경찰이 그렇다는데 어쩔 셈인가?
아무리 사실, 진실이다 라고 하더라도 입증할 증거가 없으면 말짱 도루묵이다. 증거가 없으면, 그게 아무리 사실이고 진실이라고 해도 주장하는 쪽이 바보, 병신이 되는 것이다.
2013년 8월 25일 일요일
한국 여자들의 병적인 증상 2
한국 여자들의 병적인 증상 2
한국 여자들만의 병적인 증상은 자기보다 키 작은 남자, 뚱뚱한 남자를 괴물 취급한다. 키 작은 남자, 뚱뚱한 남자는 누가 낳았나? 키 작은 여자, 뚱뚱한 여자가 낳았다.
한국 여자들만의 병적인 증상은 성형수술 집착에 있다. 성형 수술을 하지 않으면 자신이 없는 것인가?
한국 여자들만의 병적 증상은 결혼 후 남편과 자식에게 집착한다는 것이다.
남편 아니면 못 살고, 자식 아니면 안 되는가??? 건전한 여가활동이나 테니스 배드민턴 체조 요가 등산 등의 스포츠, 아니면 독서 등등... 자기만의 취미 한 개쯤 가질 능력이 못되나? 그러면 대체 숨은 왜 쉬나???
한국 여자들만의 병적인 증상은 자기 돈은 아깝게 여기면서, 남자들의 지갑 걱정은 한번도 해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체 눈깔하고 머리는 왜 달고 사느냐? 눈깔하고 머리통이 귀걸이나 반지마냥 장식용인가...
한국 여자들만의 병적인 증상은 수다 떨면서 남 험담하는 것이다. 왜 남을 험담하는가? 수다떨면서 자기 이야기는 할 자신이 없는가? 그렇게 자신이 없으세요???
한국 여자들의 병적인 증상은 남자들에게 가정 책임지고 부양하라 하면서, 여자가 가정 책임지고 부양하는 일은 거의 없다는 점이다.
여자들이 회사나 공장에 나가는 것은 오직 자식!!! 결혼해서, 자식 학비 때문에 억지 춘향으로 나가는 것이다.
과연 내 말이 틀렸는가? 정말 자기 적성에 맞아서, 진심으로 직장 나가고 싶어서 나가는 가정주부 몇 명이나 되는가???
여자 직장인이 남자 백수 구제해서 데리고 산다는 이야기를 지금껏 한번도 듣지 못했으니, 내 귀가 벼룩이귀, 바늘귀냐 아니면 귀없이 태어난 장애인이란 말이냐? 한국 여자들 대체 숨은 왜 쉬나? 숨도 누군가 대신 쉬어줘야 되는 것 아닌가... 남자도 인간이다.
남자들도 한 사람의 인간이란 말이다!
한국 여자들만의 병적인 증상은 자기보다 키 작은 남자, 뚱뚱한 남자를 괴물 취급한다. 키 작은 남자, 뚱뚱한 남자는 누가 낳았나? 키 작은 여자, 뚱뚱한 여자가 낳았다.
한국 여자들만의 병적인 증상은 성형수술 집착에 있다. 성형 수술을 하지 않으면 자신이 없는 것인가?
한국 여자들만의 병적 증상은 결혼 후 남편과 자식에게 집착한다는 것이다.
남편 아니면 못 살고, 자식 아니면 안 되는가??? 건전한 여가활동이나 테니스 배드민턴 체조 요가 등산 등의 스포츠, 아니면 독서 등등... 자기만의 취미 한 개쯤 가질 능력이 못되나? 그러면 대체 숨은 왜 쉬나???
한국 여자들만의 병적인 증상은 자기 돈은 아깝게 여기면서, 남자들의 지갑 걱정은 한번도 해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체 눈깔하고 머리는 왜 달고 사느냐? 눈깔하고 머리통이 귀걸이나 반지마냥 장식용인가...
한국 여자들만의 병적인 증상은 수다 떨면서 남 험담하는 것이다. 왜 남을 험담하는가? 수다떨면서 자기 이야기는 할 자신이 없는가? 그렇게 자신이 없으세요???
한국 여자들의 병적인 증상은 남자들에게 가정 책임지고 부양하라 하면서, 여자가 가정 책임지고 부양하는 일은 거의 없다는 점이다.
여자들이 회사나 공장에 나가는 것은 오직 자식!!! 결혼해서, 자식 학비 때문에 억지 춘향으로 나가는 것이다.
과연 내 말이 틀렸는가? 정말 자기 적성에 맞아서, 진심으로 직장 나가고 싶어서 나가는 가정주부 몇 명이나 되는가???
여자 직장인이 남자 백수 구제해서 데리고 산다는 이야기를 지금껏 한번도 듣지 못했으니, 내 귀가 벼룩이귀, 바늘귀냐 아니면 귀없이 태어난 장애인이란 말이냐? 한국 여자들 대체 숨은 왜 쉬나? 숨도 누군가 대신 쉬어줘야 되는 것 아닌가... 남자도 인간이다.
남자들도 한 사람의 인간이란 말이다!
한국 여자들은 약자가 맞습니다.
한국 여자들은 약자가 맞습니다.
네, 약자가 맞지요. 한국 여자들은 약자가 맞습니다. 그래서 정말 보호받아야 될 대상들이 맞습니다. 그런 인간들의 돈과 이권과 감투를 위해서 여성계하고 여성부 까지 존재하는 현실을 보면 참 딱해보이기까지 합니다.
그래도 능력이 안돼서 백수 생활 하는 젊은 여자분들 많으니까요. 더구나 요즘은 40 넘은 노처녀들도 제법 등장했더군요? 그것도 남자들 탓이냐?
모든 권리는 동등하고, 모든 것은 남녀 나눠서 가져야 되지만 일은 남자가 해야 하고, 군대도 남자가 가야 하고, 데이트비 연애비용도 남자가 내야 합니다. 결혼할 때도 집과 자동차는 "무조건" 남자가 사와야 됩니다.
여자는 백수라고 해도 결혼정보회사 등록이 되고, 여자는 백수라고 해도 이상이 없지만 남자 백수는 결혼정보회사에 등록이 안되며, 남자 백수는 결혼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루저 찌질이이기 까지 합니다. 이런 니미럴 개 시발... 이런게 여성에 대한 기회 부여고, 양성 평등이냐? 날강도 양아치들 같으니!
하긴 도둑질할 기회, 치트키 쓸 기회를 달라는 것이겠지요? 그게 한국 여성계의 주장인 것입니다.
남자는 직업 갖고 여자를 책임져야 하지만, 여자는 직업 갖고 남자를 책임질 수 없습니다.
그러면...
숨은 왜 쉬냐? 연약하고 귀하신 몸인 한국여자분들, 숨은 어떻게 쉬십니까?
왜? 숨도 남자들이 대신 쉬어달라고 하지 그러냐?
그토록 연약하다면서 장교 노릇, 부사관 노릇은 어떻게 하고, 공무원 노릇은 어떻게 하니?
시발 대우를 받고 싶으면 똑같은 조건에서 시작하던가, 아니면 그에 합당한, 아니 작은 짐이라도 나눠서 짊어 지던가... 대가리에 똥만 차서는, 명품에 환장하거나 아니면 남자들 피해의식보다 여자들 피해의식이 몇 배는 심각하다. 한국 여자로 태어난게 무슨 대단한 벼슬이라도 되냐?
여자로 태어난게 무슨 대단한 벼슬인가! 한국여자들은 신체적 약자가 아니라, 인격에 문제가 있는 병적인 인격체, 정신적 약자들이 많다. 한국 여자들 당신들은 신체적 약자가 아니라 인격적인 약자 같네요. 병든 영혼을 가진 인격체들... 아마도...
p. s : 여자라서 뭐 어쩌라고??? 양성 평등, 남녀 평등이라며... 그런데 왜 평등한 선에서 출발하지 않고, 계속 특혜를 요구하느냐? 98년 이후에 공무원 채용에 여성 합격자들 급격히 증가한 것... 그것도 부인할 셈인가?
p.s : 여자라서 뭐 어쩌라고??? 여자라는 이유로 무조건적 배려를 요구하지 마라. 다만 배려를 받고 싶다면 한국여자들 스스로 병적인 인격체, 정신적 약자, 불구자임을 시인, "인정"하고 배려를 요구하라. 그러면 넓은 마음으로 수용해 주겠다.
네, 약자가 맞지요. 한국 여자들은 약자가 맞습니다. 그래서 정말 보호받아야 될 대상들이 맞습니다. 그런 인간들의 돈과 이권과 감투를 위해서 여성계하고 여성부 까지 존재하는 현실을 보면 참 딱해보이기까지 합니다.
그래도 능력이 안돼서 백수 생활 하는 젊은 여자분들 많으니까요. 더구나 요즘은 40 넘은 노처녀들도 제법 등장했더군요? 그것도 남자들 탓이냐?
모든 권리는 동등하고, 모든 것은 남녀 나눠서 가져야 되지만 일은 남자가 해야 하고, 군대도 남자가 가야 하고, 데이트비 연애비용도 남자가 내야 합니다. 결혼할 때도 집과 자동차는 "무조건" 남자가 사와야 됩니다.
여자는 백수라고 해도 결혼정보회사 등록이 되고, 여자는 백수라고 해도 이상이 없지만 남자 백수는 결혼정보회사에 등록이 안되며, 남자 백수는 결혼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루저 찌질이이기 까지 합니다. 이런 니미럴 개 시발... 이런게 여성에 대한 기회 부여고, 양성 평등이냐? 날강도 양아치들 같으니!
하긴 도둑질할 기회, 치트키 쓸 기회를 달라는 것이겠지요? 그게 한국 여성계의 주장인 것입니다.
남자는 직업 갖고 여자를 책임져야 하지만, 여자는 직업 갖고 남자를 책임질 수 없습니다.
그러면...
숨은 왜 쉬냐? 연약하고 귀하신 몸인 한국여자분들, 숨은 어떻게 쉬십니까?
왜? 숨도 남자들이 대신 쉬어달라고 하지 그러냐?
그토록 연약하다면서 장교 노릇, 부사관 노릇은 어떻게 하고, 공무원 노릇은 어떻게 하니?
시발 대우를 받고 싶으면 똑같은 조건에서 시작하던가, 아니면 그에 합당한, 아니 작은 짐이라도 나눠서 짊어 지던가... 대가리에 똥만 차서는, 명품에 환장하거나 아니면 남자들 피해의식보다 여자들 피해의식이 몇 배는 심각하다. 한국 여자로 태어난게 무슨 대단한 벼슬이라도 되냐?
여자로 태어난게 무슨 대단한 벼슬인가! 한국여자들은 신체적 약자가 아니라, 인격에 문제가 있는 병적인 인격체, 정신적 약자들이 많다. 한국 여자들 당신들은 신체적 약자가 아니라 인격적인 약자 같네요. 병든 영혼을 가진 인격체들... 아마도...
p. s : 여자라서 뭐 어쩌라고??? 양성 평등, 남녀 평등이라며... 그런데 왜 평등한 선에서 출발하지 않고, 계속 특혜를 요구하느냐? 98년 이후에 공무원 채용에 여성 합격자들 급격히 증가한 것... 그것도 부인할 셈인가?
p.s : 여자라서 뭐 어쩌라고??? 여자라는 이유로 무조건적 배려를 요구하지 마라. 다만 배려를 받고 싶다면 한국여자들 스스로 병적인 인격체, 정신적 약자, 불구자임을 시인, "인정"하고 배려를 요구하라. 그러면 넓은 마음으로 수용해 주겠다.
2013년 8월 14일 수요일
웃기는 씹덕 애국자
웃기는 씹덕 애국자
일본 만화, 일본 애니를 좋아하는 주제에 친일파를 비난하고, 3.1절하고 광복절만 되면 열혈 애국자로 변신한다. 이거 뭔가 모순 아닌가???
일본 만화와 일본 애니 등 일본 대중문화를 좋아하는 인간이 3.1절하고 광복절만 되면 갑자기 애국자로 변신한다.
상반신 애국자, 하반신 친일파… 일본 대중문화를 사랑하는 한국 애국자??? 이건 뭔가 모순적으로 보인다.
아예 친일파라고 커밍아웃 하던가… 한국이 후졌고 그래서 일본을 좋아한다, 일본 대중문화가 좋다… 이렇게 대놓고 나오면 안되는가?
주변의 비난이 무섭다고? 이미 일본 애니, 일본 만화에 푹 빠진 씹덕들은 수두룩하고, 지금 30~40대 중에는 일본 만화나 일본 애니는 아니지만 일본 게임에 빠진 놈들도 제법 된다. 그럼 한사람씩만 자기가 일본 대중문화 좋아하는 놈이라고 커밍아웃 해도 대체 몇 명이냐?
일본은 싫지만 일본 천황과 일본 국민들에게 돈 쑤셔박는 짓은 하고 싶습니다?
그냥 친일파라고 밝혀라. 같잖은 애국자 흉내내지 말고…
일본 만화, 일본 애니를 좋아하는 주제에 친일파를 비난하고, 3.1절하고 광복절만 되면 열혈 애국자로 변신한다. 이거 뭔가 모순 아닌가???
일본 만화와 일본 애니 등 일본 대중문화를 좋아하는 인간이 3.1절하고 광복절만 되면 갑자기 애국자로 변신한다.
상반신 애국자, 하반신 친일파… 일본 대중문화를 사랑하는 한국 애국자??? 이건 뭔가 모순적으로 보인다.
아예 친일파라고 커밍아웃 하던가… 한국이 후졌고 그래서 일본을 좋아한다, 일본 대중문화가 좋다… 이렇게 대놓고 나오면 안되는가?
주변의 비난이 무섭다고? 이미 일본 애니, 일본 만화에 푹 빠진 씹덕들은 수두룩하고, 지금 30~40대 중에는 일본 만화나 일본 애니는 아니지만 일본 게임에 빠진 놈들도 제법 된다. 그럼 한사람씩만 자기가 일본 대중문화 좋아하는 놈이라고 커밍아웃 해도 대체 몇 명이냐?
일본은 싫지만 일본 천황과 일본 국민들에게 돈 쑤셔박는 짓은 하고 싶습니다?
그냥 친일파라고 밝혀라. 같잖은 애국자 흉내내지 말고…
2013년 8월 2일 금요일
남성연대는 죽지 않는다
남성연대는 죽지 않는다
다만 이런 저런 이유로 흐지부지되어간다 해도
몇몇 젊은이들의 가슴에 불씨를 심어놓을 수 있기를...
지금의 고등학생, 대학생 젊은이들 몇 명의 가슴에
작은 불씨 하나 키워놓는다면
분명 남성연대는 다시 부활할 것이다.
작은 불씨 하나가 살아남아 커다란 들불이 되기를...
남자도 약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남자니까, 남자답지 못하게, 남자가 쪼잔하게 등의 망언을 일삼지 않는 사회
그런 사회가 될 때 비로소 고인의 숭고한 희생은 인정되리라.
그때는 정식으로 심헌 성재기 열사 기념사업회도 구성되고
오늘의 이 고난의 순간
아니 과거 성재기 열사와 함께 했던 아름다운 나날들
모두가 하나의 아름다운 추억으로 기억되겠지
성재기 열사...
그렇다. 당신은 어떤 이념이나 사상을 강요하지 않았다.
단지 남자도 한 사람의 인간이라는 사실을 알아달라고 계속 반복해서 외쳤다.
남자는 사람이다...
그렇다. 남자도 사람이다. 당신 말처럼 남자도 아픔과 고통을 느끼는 한 사람의 인간이었다.
당신을 먼 발치에서 나마 지켜볼 수 있었다는 사실
당신의 열정을 목격할 수 있었다는 사실을
나는 정말 큰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안녕... 성재기
다만 이런 저런 이유로 흐지부지되어간다 해도
몇몇 젊은이들의 가슴에 불씨를 심어놓을 수 있기를...
지금의 고등학생, 대학생 젊은이들 몇 명의 가슴에
작은 불씨 하나 키워놓는다면
분명 남성연대는 다시 부활할 것이다.
작은 불씨 하나가 살아남아 커다란 들불이 되기를...
남자도 약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남자니까, 남자답지 못하게, 남자가 쪼잔하게 등의 망언을 일삼지 않는 사회
그런 사회가 될 때 비로소 고인의 숭고한 희생은 인정되리라.
그때는 정식으로 심헌 성재기 열사 기념사업회도 구성되고
오늘의 이 고난의 순간
아니 과거 성재기 열사와 함께 했던 아름다운 나날들
모두가 하나의 아름다운 추억으로 기억되겠지
성재기 열사...
그렇다. 당신은 어떤 이념이나 사상을 강요하지 않았다.
단지 남자도 한 사람의 인간이라는 사실을 알아달라고 계속 반복해서 외쳤다.
남자는 사람이다...
그렇다. 남자도 사람이다. 당신 말처럼 남자도 아픔과 고통을 느끼는 한 사람의 인간이었다.
당신을 먼 발치에서 나마 지켜볼 수 있었다는 사실
당신의 열정을 목격할 수 있었다는 사실을
나는 정말 큰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안녕... 성재기
2013년 7월 20일 토요일
흉악무도한 일베의 프락치들
흉악무도한 일베의 프락치들
일베의 단어를 쓰는 흉악무도한 놈들을 보라! 얼마나 흉악무도하냐!!!





자! 저 흉악무도한 일베의 프락치들을 보라.
설마... 저들을 일베 프락치로 믿는 것은 아니겠지???

괜히 죄없는 아이돌이나 물어뜯는 정신나간 자들아.
노무노무가 일베의 단어면 공인노무사, 현장노무직 광고도 일베충이 낸 광고였나? 이러다가 프리메이슨의 21세기 한국판 일베메이슨이라도 창조할 기세로다.

언제까지 인생 그렇게 살텐가!!!
일베의 단어를 쓰는 흉악무도한 놈들을 보라! 얼마나 흉악무도하냐!!!





자! 저 흉악무도한 일베의 프락치들을 보라.
설마... 저들을 일베 프락치로 믿는 것은 아니겠지???

괜히 죄없는 아이돌이나 물어뜯는 정신나간 자들아.
노무노무가 일베의 단어면 공인노무사, 현장노무직 광고도 일베충이 낸 광고였나? 이러다가 프리메이슨의 21세기 한국판 일베메이슨이라도 창조할 기세로다.

언제까지 인생 그렇게 살텐가!!!
반한감정 유발자들
반한감정 유발자들
어떤 덜떨어진 반한감정 유발자들을 보시겠다. 미국과 일본에 5만~50만 명 되는 한국창녀들도 그렇고... 이런 인간들도 한국의 이미지를 버리는데 제대로 한몫 하시는 분들이 되겠다.

일본정부 대변인도 아니고 미국 정부가 일본문제를 발표하는 것도 아닌데, 일본 얘기를 왜 계속 꺼내나???


이들이 자기 나라에 돌아가서, 코리안 잡놈들이 나를 이용해먹었다... 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기분이 어떨까?
암 그라제잉! 우리는 항상 선의의 피해자들이었지...
평소에 저렇게 행동해놓고는 항상 우리는 선의의 피해자!!! 일본 or 외국만 나쁜놈!!!

야 이놈들아! 언제까지 인생 그렇게 살텐가?
어떤 덜떨어진 반한감정 유발자들을 보시겠다. 미국과 일본에 5만~50만 명 되는 한국창녀들도 그렇고... 이런 인간들도 한국의 이미지를 버리는데 제대로 한몫 하시는 분들이 되겠다.

일본정부 대변인도 아니고 미국 정부가 일본문제를 발표하는 것도 아닌데, 일본 얘기를 왜 계속 꺼내나???


이들이 자기 나라에 돌아가서, 코리안 잡놈들이 나를 이용해먹었다... 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기분이 어떨까?
암 그라제잉! 우리는 항상 선의의 피해자들이었지...
평소에 저렇게 행동해놓고는 항상 우리는 선의의 피해자!!! 일본 or 외국만 나쁜놈!!!

야 이놈들아! 언제까지 인생 그렇게 살텐가?
2013년 7월 19일 금요일
전두환 비자금을 건드지는 타이밍
전두환 비자금을 건드지는 타이밍
그렇게 좌좀들에게 잘 보이고 싶은가? 왜 하필 전두환이냐??? 그리고... 전두환 자식들은 무슨 죄가 있길래 괴롭히는가?
역시 박근혜 일당은 교활한 언론플레이의 명수로군
국민감정 다른데로 돌리려고 죄없는 전두환을 건드리는 것을 보게...
좌빨들에게 인기라도 얻고 싶은가, 왜 죄없는 전두환 자녀들의 재산 까지 들추고 난리인가? 연좌제도 아니고... 전두환하고 이순자 선에서 끝내라.
좌우단간 노빠짓 하다가 박사모나 박빠 쪽으로 건너온 교활한 공산주의자 새끼들이 나라꼴을 제대로 거덜내고 있다. 어찌 일은 하지 않고 언론플레이질이나 한다는 말인가...
ps : 안철수의 탈을 쓴 민주당에게 잘하면 빼앗길 지도 모르겠다. 하는 꼬라지들이...
무능력하면 성실하기라도 해야지 이건 적당히 허튼짓 하지 않으면 언론플레이나 하고들 앉아있으니.
그렇게 좌좀들에게 잘 보이고 싶은가? 왜 하필 전두환이냐??? 그리고... 전두환 자식들은 무슨 죄가 있길래 괴롭히는가?
역시 박근혜 일당은 교활한 언론플레이의 명수로군
국민감정 다른데로 돌리려고 죄없는 전두환을 건드리는 것을 보게...
좌빨들에게 인기라도 얻고 싶은가, 왜 죄없는 전두환 자녀들의 재산 까지 들추고 난리인가? 연좌제도 아니고... 전두환하고 이순자 선에서 끝내라.
좌우단간 노빠짓 하다가 박사모나 박빠 쪽으로 건너온 교활한 공산주의자 새끼들이 나라꼴을 제대로 거덜내고 있다. 어찌 일은 하지 않고 언론플레이질이나 한다는 말인가...
ps : 안철수의 탈을 쓴 민주당에게 잘하면 빼앗길 지도 모르겠다. 하는 꼬라지들이...
무능력하면 성실하기라도 해야지 이건 적당히 허튼짓 하지 않으면 언론플레이나 하고들 앉아있으니.
2013년 6월 24일 월요일
"성격장애"에 대해서 알아보자 by 의게이
"성격장애"에 대해서 알아보자 by 의게이
게이들아 안녕?
3평짜리 진료실에서 토요일 오전까지 좆빠져라 일하고 저녁에 동기들만나서 간만에 술펐드만 일어나보니 일요일 오후盧? ㅅㅂ..
먹고 사니라 바뻐서 지난 주에는 아예 ㅇㅂ 한번도 못들어온 듯 하다. 한 1~2주전에 논문, ABCD이론에 관해 정보글 싸질렀던 게이인데..
오늘은 게이들이 흥미를 가질 만한 주제 – 성격장애에 대해 정리해보려고 해.
썼다가 묻혀서 재재업한다. 앙망한다 ㅠㅠ
선3줄 요약
1. 성격장애는 말그대로 성격이 이상한 경우를 의미하고, 정신분열, 양극성 장애 등 대놓고 맛이 간 정신병과는 좀 다르다.
2. 주위에 허벌나게 많다. 이 글 자세히 보고 주위를 둘러봐라.
3. 지피지기 백전백승.. 성격장애자는 그에 맞게 대하자.
게이들은 정신병자 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노?
일게이들도 어릴 적에 위와 같은 맛탱이 간 동네 형들이 한둘쯤 기억이 날거다. 지하철 역이나 대학 도서관 근처에도 위생 상태가 死십死일간 뒷물안한 김치년 보징어 수준인 아재들이 중얼중얼거리며 다니는데, 대부분 이런 타입은 정신분열병 (schizophrenia, 의게이들은 줄여서 스키조~라고 함)이다. 사족이지만, 이런 애들 중 극소수가 사고를 치고, 그러면 매스컴에서 대서특필을 하고 영화를 만들고 해서 스키조 = 연쇄살인마 ㄷㄷㄷ이지랄 하지만 실제 환자들 만나보면 존나게 불쌍하다. 성인인데도 누가 안챙겨주면 일주일도 못살고 굶어죽는다.
그 외에도 전국의 수많은 운지 매니아를 만드는데 혁혁한 공을 세운 우울증, 조울증(=양극성 장애)가 있지.
역시 사족이지만, 운지류 초대 사범이신 노운지님께서는 운지 시전 당시 우울증 환자이었는가? 묻는다면 다수의 일게이들이 당근 우울증이아니노? 하겠지. 하지만 당시 정황상 아! 내가 받았다 피아제 를 비롯하여 무수한 비리가 딸치다 황홀경에 이른 일게이 좆물터지듯 터지기 직전 상황이었으므로 극도의(외적인) 스트레스를 받던 중이라 할 수 있지. 따라서 이는 외적인 요인에 대한 반응으로서 우울한 기분이 생기고, 그것이 운지를 초래할 정도로 악화되었을 뿐, 병으로서 우울증을 앓았다고 정의할 수는 없는기야.
이렇게 해맑은데 우울증이라니?! 이거 직무유기 아임니까?
자, 소위 정신 질환으로 분류되는 정신분열증, 우울증, 조울증 등은 그 질환으로 인해 삶을 영위하는 능력에 심대한 장애가 초래되고, 따라서 사회적, 경제적으로 기능을 할 수 없어 환자로 하여금 독립적인 생활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특징이 있어.
하지만 성격장애는 소위 성공한 사람들 중에도 무척 많이 관찰되곤 하지.
먼저 성격장애에 대한 정의를 아라보자.
“어린 시절부터 서서히 발전하여 성인기에 개인의 성격으로 굳어진 심리적 특성이 부적응적 양상을 나타내는 경우로서,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고 지속되는 사고방식과 행동양식”
이야.
즉 어릴때부터 부모가 밥상머리 교육을 환상적으로 시켰다든지, 아니면 학창 시절에 일진/왕따 등 비정상적인 생활을 하였다든가, 그도 아니면 원래 그렇게 타고 났던간에 아무튼 성격 형성 과정이 남들과 다르고, 그 이상한 성격이 고착화되어 버린 경우를 뜻한다.
대신, 정신분열/우울증 등의 정신질환과 달리 성격 장애는 성격이 약간 주위와 어울리기 부적응적일 뿐, 생활 자체를 영위하는데 심대한 문제를 초래하지는 않는 경우야.
이제 각론으로 들어가서 각각의 성격 장애와 그 케이스를 살펴보도록 하자.
크게 성격 장애는 3개의 군(group)으로 나눈다. 쉽게 이야기하자면,
A군 – 이상한 놈
B군 – 막나가는 놈
C군 – 불안한 놈
먼저 A군을 보자.
1. 편집성 성격장애
여기서 편집이라 함은 방송에서 나오는 편집(editing)이 아니라, 한쪽 (편)에만 집착 (집)한다는 뜻이야. 그러니 자기가 어떤 생각에 꽂히면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를 의미해.
보통, 주위에 남들이 생각없이 농담한 말 혹은 전혀 다른 의미로 한 말에 자의적으로 해석한 뒤,죽자 살자 덤비는 경우라고 할 수 있어.
대표적으로 이번에 에스프레소 매거진 중력절 추모문 사건을 일으킨 좌빨 씹선비년들을 들 수 있지.
평소 대가리 속에 패륜밖에 안들어있는 좌빨 씹선비들은 위 추모문을 보고 마치 뷰티풀 마인드에서 러셀크로우가 그랬듯 야호기뿐중력절자살왕 이라는 희대의 세로드립을 치게 되고, 결국 에스프레소는 억울하게도 앙망문을 써야만 했지.
그러면 일게이들은 “야 씨발 그러면 러셀 크로우도 미친 게 아니라 그냥 편집성 성격장애일 뿐 아니노?”라고 하겠지만.. 그게아니다. 왜냐 러셀 크로우는 신문을 보다가 전혀 주변 상황+신문의 내용과 상관이 없는 말그대로 망상과 다름없는 단어를 신문에서 캐치해내지만 좌빨들은 고무통과 그래도 연관이 있는 중력, 자살 등의 단어를 끄집어 낸거다.
2. 분열성 성격장애
아마 여그에 해당하는 일게이들이 많을기다. 정의를 보면
“타인과의 친밀한 관계 형성에 관심이 없고 감정 표현이 부족하여 사회적 적응에 현저히 어려움을 나타내는 성격장애” 이다.
한마디로 ‘은둔형 외톨이(히키코모리)’ 아니겠노?
그럼 또 일게이들은 묻겠지 “우울증 환자들이 사회생활 하는거 봤냐? 그러면 모든 우울증 환자는 다 분열성 성격장애냐?” à 역시 아니다.
우울증 환자는 감정적 우울이 극심하여 그 환자의 모든 (사회/경제적) 능력을 셧다운 시킨 상태로, 주변과의 관계를 못 맺는 거다. 모든 능력이 망가졌으니 자기 건강? 위생? 주변 정리? 이런게 되겠노? 그러니 우울증이나 정신분열증 환자들 혼자 사는 방을 열어보면 가관이지. 음식물, 옷가지, 휴지, 배설물이 온통 섞여서 악취가 코를 찌른다. 하지만 위 그림에 나오는 안여돼 덕후를 봐라. 깔끔하지 않노? 컴퓨터 책상이며 만화책이며 심지어 자기 방안에서도 옷 차려입은 거 좀 봐라.
가끔 일베가는 “내인생ㅍㅌㅊ?”글들 보면 한달에 20만원으로도 잘 살 수 있다는둥, 직장스트레스 없이 이렇게 사는게 더 좋다는 둥 싸지르는 게이들보면 십중팔구 분열성 성격장애라 보면 된다.
3. 분열형 성격장애
이건 한마디로 4차원이다. 정의상 “기이한 생각이나 행동을 나타내어 사회적 부적응을 초래하는 성격장애”야. 그러면 망상이 대표적인 증상인 정신분열증(ß 이건 완전히 정신 질환이지)와의 차이가 뭐냐? 할텐데, 아래의 예를 보자.
중력절 고무통 사진이 TV에 나왔는데 다음 a~c 세 사람의 반응
a. (분노하며) 수구 우좀 새끼들이 장악한 정부의 음모랑께? 우리 노짱이 셀프 운지하실리가 없지라. 암.. 분명히 더러분 정부 새끼들이 청부 살인을 한거랑께요?
b. (감동한 듯한 표정을 지으며) 우리 노짱의 고매한 인격이 하늘에 닿아서 하느님도 너무 노짱을 사랑하신 나머지 노짱이 서 있던 부엉이 바위를 잠깐 미끄럽게 만든거야. 그래서 운지를 하신거야..
c. (갑자기 울음을 터뜨리며) 내가 막을 수 있었는데! 내 탓이야 내탓!! 크흑흑 그날 새벽에 盧스트라다무스가 나를 찾아와서 “오유충 군아 몇 시간 뒤면 노짱이 운지를 할 테니 그를 막으려면 니 자지를 니 똥구녁에 박고 세번 쑤셔야 하느니라” 라고 말씀하셨거든. 근데 내 자지가 짧아서 그걸 못했어 크흑흑 그때 자지를 잘랐어야 하는건데 크흐흑..
盧스트라다무스
좀 다르지?
매치를 하자면
A환자는 편집성 성격장애, B환자는 분열형 성격장애, C환자는 망상형 정신분열증 환자야. C환자의 경우 저런 이야기를 농담이 아니라 공석에서 한다쳐봐.생활이 되겠어? 바로 경찰서 행이지. 반면 A나 B의 경우에는 보기에 따라 아 얘가 좌빨에 심취하더니 좀 그렇구나..하고 넘길 수도 있겠지.
이제 B군으로 넘어가보자. B군은 막나가는 놈,년이야.
1. 반사회성 성격장애
한번쯤은 들어봤지? 소위 사이코패스니 소시오패스니 하는 작자들이야. 주로 남자에 많고, 보통 학창 시절부터 저 새끼 성격 더럽네 소리 들으며 친구도 거의 없고, 군대서는 하극상 시전하고 영창 들락거리고, 취직해서는 동료, 상사랑 허구헌날 싸우고 몇 달도 못버티고 때려치는 그런 타입들이야.
의게이로서 하는 말이지만, 이런 새끼들하고는 말도 섞지 마라. 뭐 여기에 대해서는 워낙 이전에도 글이 많이 올라왔으므로 간략히 한다.
2. 연극성 성격장애
요시! 드디어 나왔다! 김치성괴년 종특!!!
전설이 되어버린 성괴수 하나공쥬뉨..
연극성 성격장애는 “자신이 관심의 초점이 되질 모사하는 상황이 불편하여, 감정의 빠른 변화와 피상적 표현을 보이며, 관심을 끌기 위해 지속적으로 육체적 외모를 활용한다”라고 정의된다. Kia~ 딱이지 않노? 주모! 여기 DSM-IV 진단기준 뽕 하나 추가요!!
아따 나는 정말로 부정교합이 너무 심해서 치료 목적으로 양악수술을 했당께요? 아따 나는 속눈썹 말림증(entropion)이 너무 심해서 치료 목적으로 쌍수를 했당께요? 이런 개소리 수도 없이 들었을거다. 그게 아니다. 그 성괴들이 수술한 이유는 부정교합도, 비중격이상증도, 눈꺼풀 말림증도 아닌 ‘연극성 성격장애’때문인거다.
머리는 빠가야, 운동능력은 씹병신이야, 거기에 대인관계 능력 종범.. 그런데 존나 관심을 받고 보빨을 받고자하는 욕망이 너무나 강렬한.. 그런 상태인거지. 그러니 한 2000만원 정도면 보빨러들 데리고 새출발할 수 있으니 너도 나도 하게 되는거지. 페북, 트위터에 매일 사진 올리며 “히잉~ 오늘은 피곤해서 화장이 너무 안먹네 ㅠㅠ”:하는 종자들은 거의 이 카테고리라고 보면 됨.
보빨러들은 이 점을 잘 알아야 한다 – 너네가 보빨하는 그 성괴들은 자신감 넘치고, 자기를 사랑하는 당찬 여성들이 아니라 단지 성격 장애자일뿐임을.
3. 자기애성 성격장애
이건 나르시시즘이라고 알지? 역시 김치년에 많고, 2.연극성 성격장애와 겹치는 부분이 많으므로 생략할게.
4. 경계성 성격장애
자.. 일게이들아 이 대목에 주목해라. 김치년 대표 종특 중 하나인 경계성 성격장애, 소위 ‘보더라인’이라고 하는 그 성격장애다.
정의는 “극단적인 이상화와 평가절하가 특징적으로 반복되는 불안정하고 강렬한 대인관계 양식”이다. 이해가 안되노? 쉽게 말하면 성격이 동짓날 팥죽 끓듯 한다 이말이다. 이들의 가장 큰 특징은 극단적인 심리적 불안정성이며, 남으로부터 ‘버림받는 것’을 너무나도 두려워한다.
(혼자생각) “남친이 언젠가부터 식당에 가면 의자를 안빼줘.. 이 자지새끼가 이제 나를 버릴 건가봐 내가 얼마나 잘 해줬는데 이 배은망덕한 자지새끼.. 흑흑흑 아니야 다시 생각해보면 오빠랑 밥먹을 때 내가 돈을 낸적도 없잖아. 오빠는 나를 사랑한단 말이야.. 흑흑흑 아니야 이 자지새끼는 나중에 돈 벌고 성공하면 분명히 날 버릴꺼야! 내가 놔둘줄 알고!? 그렇게 되면 장미칼로 자지새끼 찔러 죽이고 나도 따라서 죽을꺼야”
위의 사고 과정이 한 김치년의 머리속에서, 그것도 1분내로 흘러간다면 어떻겠노? 호옹이?? 근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지금도 수많은 호구잦 일게이들이 연애를 빙자한 자지고문에 시달리고 있는데, 살펴보면 느그 여친들이 경계성 성격장애일 가능성이 다분하다 이거다. 아무 것도 아닌, 너의 카톡 메시지에 대해서 개흥분해서 죽일 듯 달려들다가 니가 질려서 “야야 이제 우리 이제 그만하자 나 힘들다 관계 다시 생각해보자..”하면 갑자기 쳐울며 “오빠 잘못했어 내가 못난 년이라 그래 용서해죠 흑흑 오빠 나 차면 나 정말 자살할꺼야 흑흑” 이러며 앙망문 시전..
물론 여기에 넘어간 호구잦은 하루 뒤에 똑 같은 상황을 맞이합니다.
호구잦들은 이런 상황을 아! 내 여친이 생리다! 하고 별거 아닌 이벤트로 넘어가는 경우가 많은데 물론 월경전증후군이라는 개념이 실제로 있긴하다만 우째 여자가 한달내내 생리만 하고 살겠노? 그 빈도가 너무 높다 싶으면 경계성 성격장애를 의심해봐라.
첨언하자면, 경계성 성격장애는 여자에 훨 많고, 쉽게 말해 남자에서의 반사회성 성격장애의 여자 버전으로 보면 된다. 남자가 주위에 공격적인 성향을 보이며 상해를 가하고 살인을 한다면 경계성 성격장애의 김치년들은 자학 – 대표적으로 폭식!!! –을 한다.
“아 씨발..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
긍까 니 여친이 허구헌날 그날 코스프레를 해대고 화냈다가 울며 앙망하다가 웃다가 다시 화내고를 반복한다면 이걸 의심해봐라.
또, 의게이로서 충고컨데 만약 이게 맞다싶으면 내일 정중하게, 대신 강경하게 헤어지자고 말해라. 그냥 결혼 ㄱㄱ씽하면 니 인생 100% 운지 확정이다. 제발 믿어라…
마지막으로 C군이야.
쓰다보니 넘 길어져서 나도 힘들다..
C군은 불쌍한 놈들이라고 했지?
1. 강박성 성격장애
이건 미드나 영화를 통해서 많이 소개됐지? 자기만의 징크스나, 목표나 그런게 너무 세고 그를 성취하기 위해 주위에 인색하게 구는 그런 타입이야. 참고로 강박증(역시 정신질환)보다는 그 정도가 약하고, 오히려 강박성 성격장애자들은 성취 지향적이라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에게 흔히 관찰돼.
간략히 강박증과 비교하자면
A. 나는 반드시 이번 시험에서 90점 이상을 받아야해. 그 목표를 이루기 전까지는 가족 친구들의 대소사에 불참함은 물론이고, 신문이나 TV등도 일절 안볼거야.
B. 항상 나는 시험에서 90점 이상을 받으려면 흰색 여자 팬티 3장에 내 대중이를 문지르고 사정을 해야한다.
A는 강박성 성격장애 B는 강박증 (+다소 정신분열증 끼도 포함됨) 이야.
2. 의존성 성격장애
“스스로 독립적인 생활을 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에게 과도하게 의존하거나 보호받으려함”
역시 보지들에 많지. 쉽게 말해 자기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하는 타입이다. 직업을 결정할때도 자기가 뭘 하고픈지, 꿈이 먼지도 관심없고 그냥 부모한테 물어보고 시키는대로 하고, 커서 자지하나 물면 그냥 매사를 카톡으로 자지한테 보내고 어카면돼? 하는 거지.
역시 일부 호구잦들은 이런 보지들에 대해서 ‘순종적’이라며 패티쉬기질을 보이기도 하는데 역시 인생 운지하는 지름길임을 밝혀둔다. 다 큰 애 하나 더 키울 생각이라면 모르겠지만.
역대급 의존성 성격장애 – 남친이 코딱지도 파준당께요?
일게이들 얘가 귀여워보이노? 얘가 44살 먹고 니한테 코딱지 파주고 똥 구녁 닦아달라면 우짤끼고??
3. 회피성 성격장애
이건 분열성 성격장애처럼 혼자 지내는 놈들인데, 차이점으로 남의 비난이나 꾸중이 두려워서 관계 맺기를 포기한 거지.
즉 분열성이 ‘안’ 하는거라면 회피성은 ‘못’ 하는거야.
자 이렇게 오늘은 성격장애에 대해서 알아봤어.
각 성격장애별로 유병률에 있어 성별의 차이가 있음은 설명했고, 일게이들 주위에 김치남 김치년들을 보며 평소에 저 새끼 참 성격 특이하다 싶었으면 한번 적용해봄이 어떠노?
성격별로 한줄로 요약할게
1. 편집성 – 농담에 죽자살자 덤비는 놈들. 정치 이야기 등 괜히 꺼내서 봉변당하지 마라.
2. 분열성 – 히키코모리. 니가 어떻게 이야기하든 이새끼들은 신경안쓴다. 니도 신경꺼라.
3. 분열형 – 좋게 보면 4차원. 영양가 없는 헛소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님.
4. 반사회성 – 무조건 피해라.
5. 연극성 – 칭찬도, 비난도 하지마라. 그냥 무시하고 관심도 주지마라.
6. 경계성 – 무조건 피해라.
7. 강박성 – 니 직장 상사일 가능성이 크다. 능력좋다고 후빨해주면 좋아할거다.
8. 의존성 – 순종적 조신녀로 착각 ㄴㄴ해. 그냥 피해라.
9. 회피성 – 불쌍한 애들이다.
마지막으로 나 정신과 아니다. 저격 ㄴㄴ함.
이 정도는 의대 졸업자 수준만 되도 다 아는 내용이라 그냥 정리해봄.
게이들아 안녕?
3평짜리 진료실에서 토요일 오전까지 좆빠져라 일하고 저녁에 동기들만나서 간만에 술펐드만 일어나보니 일요일 오후盧? ㅅㅂ..
먹고 사니라 바뻐서 지난 주에는 아예 ㅇㅂ 한번도 못들어온 듯 하다. 한 1~2주전에 논문, ABCD이론에 관해 정보글 싸질렀던 게이인데..
오늘은 게이들이 흥미를 가질 만한 주제 – 성격장애에 대해 정리해보려고 해.
썼다가 묻혀서 재재업한다. 앙망한다 ㅠㅠ
선3줄 요약
1. 성격장애는 말그대로 성격이 이상한 경우를 의미하고, 정신분열, 양극성 장애 등 대놓고 맛이 간 정신병과는 좀 다르다.
2. 주위에 허벌나게 많다. 이 글 자세히 보고 주위를 둘러봐라.
3. 지피지기 백전백승.. 성격장애자는 그에 맞게 대하자.
게이들은 정신병자 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노?
일게이들도 어릴 적에 위와 같은 맛탱이 간 동네 형들이 한둘쯤 기억이 날거다. 지하철 역이나 대학 도서관 근처에도 위생 상태가 死십死일간 뒷물안한 김치년 보징어 수준인 아재들이 중얼중얼거리며 다니는데, 대부분 이런 타입은 정신분열병 (schizophrenia, 의게이들은 줄여서 스키조~라고 함)이다. 사족이지만, 이런 애들 중 극소수가 사고를 치고, 그러면 매스컴에서 대서특필을 하고 영화를 만들고 해서 스키조 = 연쇄살인마 ㄷㄷㄷ이지랄 하지만 실제 환자들 만나보면 존나게 불쌍하다. 성인인데도 누가 안챙겨주면 일주일도 못살고 굶어죽는다.
그 외에도 전국의 수많은 운지 매니아를 만드는데 혁혁한 공을 세운 우울증, 조울증(=양극성 장애)가 있지.
역시 사족이지만, 운지류 초대 사범이신 노운지님께서는 운지 시전 당시 우울증 환자이었는가? 묻는다면 다수의 일게이들이 당근 우울증이아니노? 하겠지. 하지만 당시 정황상 아! 내가 받았다 피아제 를 비롯하여 무수한 비리가 딸치다 황홀경에 이른 일게이 좆물터지듯 터지기 직전 상황이었으므로 극도의(외적인) 스트레스를 받던 중이라 할 수 있지. 따라서 이는 외적인 요인에 대한 반응으로서 우울한 기분이 생기고, 그것이 운지를 초래할 정도로 악화되었을 뿐, 병으로서 우울증을 앓았다고 정의할 수는 없는기야.
이렇게 해맑은데 우울증이라니?! 이거 직무유기 아임니까?
자, 소위 정신 질환으로 분류되는 정신분열증, 우울증, 조울증 등은 그 질환으로 인해 삶을 영위하는 능력에 심대한 장애가 초래되고, 따라서 사회적, 경제적으로 기능을 할 수 없어 환자로 하여금 독립적인 생활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특징이 있어.
하지만 성격장애는 소위 성공한 사람들 중에도 무척 많이 관찰되곤 하지.
먼저 성격장애에 대한 정의를 아라보자.
“어린 시절부터 서서히 발전하여 성인기에 개인의 성격으로 굳어진 심리적 특성이 부적응적 양상을 나타내는 경우로서,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고 지속되는 사고방식과 행동양식”
이야.
즉 어릴때부터 부모가 밥상머리 교육을 환상적으로 시켰다든지, 아니면 학창 시절에 일진/왕따 등 비정상적인 생활을 하였다든가, 그도 아니면 원래 그렇게 타고 났던간에 아무튼 성격 형성 과정이 남들과 다르고, 그 이상한 성격이 고착화되어 버린 경우를 뜻한다.
대신, 정신분열/우울증 등의 정신질환과 달리 성격 장애는 성격이 약간 주위와 어울리기 부적응적일 뿐, 생활 자체를 영위하는데 심대한 문제를 초래하지는 않는 경우야.
이제 각론으로 들어가서 각각의 성격 장애와 그 케이스를 살펴보도록 하자.
크게 성격 장애는 3개의 군(group)으로 나눈다. 쉽게 이야기하자면,
A군 – 이상한 놈
B군 – 막나가는 놈
C군 – 불안한 놈
먼저 A군을 보자.
1. 편집성 성격장애
여기서 편집이라 함은 방송에서 나오는 편집(editing)이 아니라, 한쪽 (편)에만 집착 (집)한다는 뜻이야. 그러니 자기가 어떤 생각에 꽂히면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를 의미해.
보통, 주위에 남들이 생각없이 농담한 말 혹은 전혀 다른 의미로 한 말에 자의적으로 해석한 뒤,죽자 살자 덤비는 경우라고 할 수 있어.
대표적으로 이번에 에스프레소 매거진 중력절 추모문 사건을 일으킨 좌빨 씹선비년들을 들 수 있지.
평소 대가리 속에 패륜밖에 안들어있는 좌빨 씹선비들은 위 추모문을 보고 마치 뷰티풀 마인드에서 러셀크로우가 그랬듯 야호기뿐중력절자살왕 이라는 희대의 세로드립을 치게 되고, 결국 에스프레소는 억울하게도 앙망문을 써야만 했지.
그러면 일게이들은 “야 씨발 그러면 러셀 크로우도 미친 게 아니라 그냥 편집성 성격장애일 뿐 아니노?”라고 하겠지만.. 그게아니다. 왜냐 러셀 크로우는 신문을 보다가 전혀 주변 상황+신문의 내용과 상관이 없는 말그대로 망상과 다름없는 단어를 신문에서 캐치해내지만 좌빨들은 고무통과 그래도 연관이 있는 중력, 자살 등의 단어를 끄집어 낸거다.
2. 분열성 성격장애
아마 여그에 해당하는 일게이들이 많을기다. 정의를 보면
“타인과의 친밀한 관계 형성에 관심이 없고 감정 표현이 부족하여 사회적 적응에 현저히 어려움을 나타내는 성격장애” 이다.
한마디로 ‘은둔형 외톨이(히키코모리)’ 아니겠노?
그럼 또 일게이들은 묻겠지 “우울증 환자들이 사회생활 하는거 봤냐? 그러면 모든 우울증 환자는 다 분열성 성격장애냐?” à 역시 아니다.
우울증 환자는 감정적 우울이 극심하여 그 환자의 모든 (사회/경제적) 능력을 셧다운 시킨 상태로, 주변과의 관계를 못 맺는 거다. 모든 능력이 망가졌으니 자기 건강? 위생? 주변 정리? 이런게 되겠노? 그러니 우울증이나 정신분열증 환자들 혼자 사는 방을 열어보면 가관이지. 음식물, 옷가지, 휴지, 배설물이 온통 섞여서 악취가 코를 찌른다. 하지만 위 그림에 나오는 안여돼 덕후를 봐라. 깔끔하지 않노? 컴퓨터 책상이며 만화책이며 심지어 자기 방안에서도 옷 차려입은 거 좀 봐라.
가끔 일베가는 “내인생ㅍㅌㅊ?”글들 보면 한달에 20만원으로도 잘 살 수 있다는둥, 직장스트레스 없이 이렇게 사는게 더 좋다는 둥 싸지르는 게이들보면 십중팔구 분열성 성격장애라 보면 된다.
3. 분열형 성격장애
이건 한마디로 4차원이다. 정의상 “기이한 생각이나 행동을 나타내어 사회적 부적응을 초래하는 성격장애”야. 그러면 망상이 대표적인 증상인 정신분열증(ß 이건 완전히 정신 질환이지)와의 차이가 뭐냐? 할텐데, 아래의 예를 보자.
중력절 고무통 사진이 TV에 나왔는데 다음 a~c 세 사람의 반응
a. (분노하며) 수구 우좀 새끼들이 장악한 정부의 음모랑께? 우리 노짱이 셀프 운지하실리가 없지라. 암.. 분명히 더러분 정부 새끼들이 청부 살인을 한거랑께요?
b. (감동한 듯한 표정을 지으며) 우리 노짱의 고매한 인격이 하늘에 닿아서 하느님도 너무 노짱을 사랑하신 나머지 노짱이 서 있던 부엉이 바위를 잠깐 미끄럽게 만든거야. 그래서 운지를 하신거야..
c. (갑자기 울음을 터뜨리며) 내가 막을 수 있었는데! 내 탓이야 내탓!! 크흑흑 그날 새벽에 盧스트라다무스가 나를 찾아와서 “오유충 군아 몇 시간 뒤면 노짱이 운지를 할 테니 그를 막으려면 니 자지를 니 똥구녁에 박고 세번 쑤셔야 하느니라” 라고 말씀하셨거든. 근데 내 자지가 짧아서 그걸 못했어 크흑흑 그때 자지를 잘랐어야 하는건데 크흐흑..
盧스트라다무스
좀 다르지?
매치를 하자면
A환자는 편집성 성격장애, B환자는 분열형 성격장애, C환자는 망상형 정신분열증 환자야. C환자의 경우 저런 이야기를 농담이 아니라 공석에서 한다쳐봐.생활이 되겠어? 바로 경찰서 행이지. 반면 A나 B의 경우에는 보기에 따라 아 얘가 좌빨에 심취하더니 좀 그렇구나..하고 넘길 수도 있겠지.
이제 B군으로 넘어가보자. B군은 막나가는 놈,년이야.
1. 반사회성 성격장애
한번쯤은 들어봤지? 소위 사이코패스니 소시오패스니 하는 작자들이야. 주로 남자에 많고, 보통 학창 시절부터 저 새끼 성격 더럽네 소리 들으며 친구도 거의 없고, 군대서는 하극상 시전하고 영창 들락거리고, 취직해서는 동료, 상사랑 허구헌날 싸우고 몇 달도 못버티고 때려치는 그런 타입들이야.
의게이로서 하는 말이지만, 이런 새끼들하고는 말도 섞지 마라. 뭐 여기에 대해서는 워낙 이전에도 글이 많이 올라왔으므로 간략히 한다.
2. 연극성 성격장애
요시! 드디어 나왔다! 김치성괴년 종특!!!
전설이 되어버린 성괴수 하나공쥬뉨..
연극성 성격장애는 “자신이 관심의 초점이 되질 모사하는 상황이 불편하여, 감정의 빠른 변화와 피상적 표현을 보이며, 관심을 끌기 위해 지속적으로 육체적 외모를 활용한다”라고 정의된다. Kia~ 딱이지 않노? 주모! 여기 DSM-IV 진단기준 뽕 하나 추가요!!
아따 나는 정말로 부정교합이 너무 심해서 치료 목적으로 양악수술을 했당께요? 아따 나는 속눈썹 말림증(entropion)이 너무 심해서 치료 목적으로 쌍수를 했당께요? 이런 개소리 수도 없이 들었을거다. 그게 아니다. 그 성괴들이 수술한 이유는 부정교합도, 비중격이상증도, 눈꺼풀 말림증도 아닌 ‘연극성 성격장애’때문인거다.
머리는 빠가야, 운동능력은 씹병신이야, 거기에 대인관계 능력 종범.. 그런데 존나 관심을 받고 보빨을 받고자하는 욕망이 너무나 강렬한.. 그런 상태인거지. 그러니 한 2000만원 정도면 보빨러들 데리고 새출발할 수 있으니 너도 나도 하게 되는거지. 페북, 트위터에 매일 사진 올리며 “히잉~ 오늘은 피곤해서 화장이 너무 안먹네 ㅠㅠ”:하는 종자들은 거의 이 카테고리라고 보면 됨.
보빨러들은 이 점을 잘 알아야 한다 – 너네가 보빨하는 그 성괴들은 자신감 넘치고, 자기를 사랑하는 당찬 여성들이 아니라 단지 성격 장애자일뿐임을.
3. 자기애성 성격장애
이건 나르시시즘이라고 알지? 역시 김치년에 많고, 2.연극성 성격장애와 겹치는 부분이 많으므로 생략할게.
4. 경계성 성격장애
자.. 일게이들아 이 대목에 주목해라. 김치년 대표 종특 중 하나인 경계성 성격장애, 소위 ‘보더라인’이라고 하는 그 성격장애다.
정의는 “극단적인 이상화와 평가절하가 특징적으로 반복되는 불안정하고 강렬한 대인관계 양식”이다. 이해가 안되노? 쉽게 말하면 성격이 동짓날 팥죽 끓듯 한다 이말이다. 이들의 가장 큰 특징은 극단적인 심리적 불안정성이며, 남으로부터 ‘버림받는 것’을 너무나도 두려워한다.
(혼자생각) “남친이 언젠가부터 식당에 가면 의자를 안빼줘.. 이 자지새끼가 이제 나를 버릴 건가봐 내가 얼마나 잘 해줬는데 이 배은망덕한 자지새끼.. 흑흑흑 아니야 다시 생각해보면 오빠랑 밥먹을 때 내가 돈을 낸적도 없잖아. 오빠는 나를 사랑한단 말이야.. 흑흑흑 아니야 이 자지새끼는 나중에 돈 벌고 성공하면 분명히 날 버릴꺼야! 내가 놔둘줄 알고!? 그렇게 되면 장미칼로 자지새끼 찔러 죽이고 나도 따라서 죽을꺼야”
위의 사고 과정이 한 김치년의 머리속에서, 그것도 1분내로 흘러간다면 어떻겠노? 호옹이?? 근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지금도 수많은 호구잦 일게이들이 연애를 빙자한 자지고문에 시달리고 있는데, 살펴보면 느그 여친들이 경계성 성격장애일 가능성이 다분하다 이거다. 아무 것도 아닌, 너의 카톡 메시지에 대해서 개흥분해서 죽일 듯 달려들다가 니가 질려서 “야야 이제 우리 이제 그만하자 나 힘들다 관계 다시 생각해보자..”하면 갑자기 쳐울며 “오빠 잘못했어 내가 못난 년이라 그래 용서해죠 흑흑 오빠 나 차면 나 정말 자살할꺼야 흑흑” 이러며 앙망문 시전..
물론 여기에 넘어간 호구잦은 하루 뒤에 똑 같은 상황을 맞이합니다.
호구잦들은 이런 상황을 아! 내 여친이 생리다! 하고 별거 아닌 이벤트로 넘어가는 경우가 많은데 물론 월경전증후군이라는 개념이 실제로 있긴하다만 우째 여자가 한달내내 생리만 하고 살겠노? 그 빈도가 너무 높다 싶으면 경계성 성격장애를 의심해봐라.
첨언하자면, 경계성 성격장애는 여자에 훨 많고, 쉽게 말해 남자에서의 반사회성 성격장애의 여자 버전으로 보면 된다. 남자가 주위에 공격적인 성향을 보이며 상해를 가하고 살인을 한다면 경계성 성격장애의 김치년들은 자학 – 대표적으로 폭식!!! –을 한다.
“아 씨발..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
긍까 니 여친이 허구헌날 그날 코스프레를 해대고 화냈다가 울며 앙망하다가 웃다가 다시 화내고를 반복한다면 이걸 의심해봐라.
또, 의게이로서 충고컨데 만약 이게 맞다싶으면 내일 정중하게, 대신 강경하게 헤어지자고 말해라. 그냥 결혼 ㄱㄱ씽하면 니 인생 100% 운지 확정이다. 제발 믿어라…
마지막으로 C군이야.
쓰다보니 넘 길어져서 나도 힘들다..
C군은 불쌍한 놈들이라고 했지?
1. 강박성 성격장애
이건 미드나 영화를 통해서 많이 소개됐지? 자기만의 징크스나, 목표나 그런게 너무 세고 그를 성취하기 위해 주위에 인색하게 구는 그런 타입이야. 참고로 강박증(역시 정신질환)보다는 그 정도가 약하고, 오히려 강박성 성격장애자들은 성취 지향적이라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에게 흔히 관찰돼.
간략히 강박증과 비교하자면
A. 나는 반드시 이번 시험에서 90점 이상을 받아야해. 그 목표를 이루기 전까지는 가족 친구들의 대소사에 불참함은 물론이고, 신문이나 TV등도 일절 안볼거야.
B. 항상 나는 시험에서 90점 이상을 받으려면 흰색 여자 팬티 3장에 내 대중이를 문지르고 사정을 해야한다.
A는 강박성 성격장애 B는 강박증 (+다소 정신분열증 끼도 포함됨) 이야.
2. 의존성 성격장애
“스스로 독립적인 생활을 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에게 과도하게 의존하거나 보호받으려함”
역시 보지들에 많지. 쉽게 말해 자기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하는 타입이다. 직업을 결정할때도 자기가 뭘 하고픈지, 꿈이 먼지도 관심없고 그냥 부모한테 물어보고 시키는대로 하고, 커서 자지하나 물면 그냥 매사를 카톡으로 자지한테 보내고 어카면돼? 하는 거지.
역시 일부 호구잦들은 이런 보지들에 대해서 ‘순종적’이라며 패티쉬기질을 보이기도 하는데 역시 인생 운지하는 지름길임을 밝혀둔다. 다 큰 애 하나 더 키울 생각이라면 모르겠지만.
역대급 의존성 성격장애 – 남친이 코딱지도 파준당께요?
일게이들 얘가 귀여워보이노? 얘가 44살 먹고 니한테 코딱지 파주고 똥 구녁 닦아달라면 우짤끼고??
3. 회피성 성격장애
이건 분열성 성격장애처럼 혼자 지내는 놈들인데, 차이점으로 남의 비난이나 꾸중이 두려워서 관계 맺기를 포기한 거지.
즉 분열성이 ‘안’ 하는거라면 회피성은 ‘못’ 하는거야.
자 이렇게 오늘은 성격장애에 대해서 알아봤어.
각 성격장애별로 유병률에 있어 성별의 차이가 있음은 설명했고, 일게이들 주위에 김치남 김치년들을 보며 평소에 저 새끼 참 성격 특이하다 싶었으면 한번 적용해봄이 어떠노?
성격별로 한줄로 요약할게
1. 편집성 – 농담에 죽자살자 덤비는 놈들. 정치 이야기 등 괜히 꺼내서 봉변당하지 마라.
2. 분열성 – 히키코모리. 니가 어떻게 이야기하든 이새끼들은 신경안쓴다. 니도 신경꺼라.
3. 분열형 – 좋게 보면 4차원. 영양가 없는 헛소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님.
4. 반사회성 – 무조건 피해라.
5. 연극성 – 칭찬도, 비난도 하지마라. 그냥 무시하고 관심도 주지마라.
6. 경계성 – 무조건 피해라.
7. 강박성 – 니 직장 상사일 가능성이 크다. 능력좋다고 후빨해주면 좋아할거다.
8. 의존성 – 순종적 조신녀로 착각 ㄴㄴ해. 그냥 피해라.
9. 회피성 – 불쌍한 애들이다.
마지막으로 나 정신과 아니다. 저격 ㄴㄴ함.
이 정도는 의대 졸업자 수준만 되도 다 아는 내용이라 그냥 정리해봄.
개정일, 개무현 간 대화록 공개
개정일, 개무현 간 대화록 공개
3 쪽
노무현 : 오늘 아리랑 공연에 대해서도 이런저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만, 저는 큰 기대를 가지고 있고, 위원장님과 함께 볼 수 있으면 하는 기대를 하고 있습니다만.
4 쪽
노무현 : 그동안 해외를 다니면서 50회 넘는 정상회담을 했습니다만, 그동안 외국 정상들의 북측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을 때, 나는 북측의 대변인 노릇 또는 변호인 노릇을 했고 때로는 얼굴도 붉혔던 일도 있습니다.
17 쪽
김정일 : 군사경계, 우리가 주장하는 군사경계선, 또 남측이 주장하는 북방한계선, 이것 사이에 있는 수역을 공동어로구역, 아니면 평화수역으로 설정하면 어떻겠는가.
김정일 : 우리 군대는 지금까지 주장해 온 군사경계선에서 남측이 북방한계선까지 물러선다. 물러선 조건에서 공동수역으로 한다.
18 쪽
김정일 : 북방한계선과 우리 군사경계선 안에 있는 수역을 평화수역으로 선포한다.
노무현 : 예. 아주 저도 관심이 많은...
35 쪽
노무현 : 어쨌든 자주…자주국방이라는 말을 이제 우리 군대가 비로소 쓰기 시작합니다. 주적용어 없애버렸습니다.
36∼37 쪽
노무현 : 작계 5029라는 것을 미측이 만들어 가지고 우리한테 가는데...그거 지금 못 한다...이렇게 해서 없애버리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개념계획이란 수준으로 타협을 해가지고 있는데 이제 그거 없어진 겁니다.
우리 국민들 사이에서 그 흐름을 돌이킬 수 없는 것으로 굳혀나가는 것은 남북관계에 성과있는 진전이 있어야 된다는 것이죠...
40∼41 쪽
노무현 : NLL 문제 의제로 넣어라. 넣어서 타협해야 할 것 아니다. 그것이 국제법적인 근거도 없고 논리적 근거도 분명치 않은 것인데... 그러나 현실로서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북측 인민으로서도 그건 아마 자존심이 걸린 것이고, 남측에서는 이걸 영토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혼동이라는 것을 풀어가면서 풀어야되는 것인데...이 풀자는 의지를 군사회담 넣어 놓으니까 싸움질만 하고요...풀자는 의지를…두 가지...의지가 부족하고 자기들 안보만 생각했지 풀자는 의지가 부족하고...뭐 아무리 설명을 해도 자꾸 딴소리를 하는 겁니다. 그거 안됩니다 하고... 그 다음에 이런 여러 가지 위원장께서 제기하신 서해 공동어로 평화의 바다…내가 봐도 숨통이 막히는데 그거 남쪽에다 그냥 확 해서 해결해 버리면 좋겠는데...
42 쪽
노무현 : 위원장이 지금 구상하신 공동어로 수역을 이렇게 군사 서로 철수하고 공동어로하고 평화수역 이 말씀에 대해서 똑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거든요... 단지 딱 가서 NLL 말만 나오면 전부다 막 벌떼처럼 들고 일어나는 것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인데 위원장하고 나하고 이 문제를 깊이 논의해볼 가치가 있는 게 아니냐...
47 쪽
노무현 : 우리는 위원장하고 김대중 대통령하고 6·15 때 악수 한번 했는데, 그게 우리 남쪽 경제에 수 조원, 수 십 조원 번 거 거든요. 어제 사진도, 어제 내가 분계선을 넘어선 사진으로 남측이 아마 수 조원 벌었습니다.
50 쪽
노무현 : 남측은 데모가 너무 자유로운 나라라서 모시기도 그렇게... 우리도 좀 어려움이 있습니다.
57 쪽
노무현 : 그런데 NLL이라는 것이 이상하게 생겨 가지고, 무슨 괴물처럼 함부로 못 건드리는 물건이 돼 있거든요.
그래서 거기에 대해 말하자면 서해 평화지대를 만들어서 공동어로도 하고, 한강하구에 공동개발도 하고, 나아가서는 인천, 해주 전체를 엮어서 공동경제구역도 만들어서 통항도 맘대로 하게하고, 그렇게 되면, 그 통항을 위해서 말하자면 그림을 새로 그려야 하거든요. 여기는 자유통항구역이고, 여기는 공동어로구역이고, 그럼 거기에는 군대를 못 들어가게 하고, 양측이 경찰이 관리를 하는 평화지대를 하나 만드는, 그런 개념들을 설정하는 것이 가장 시급한 문제이지요.
63 쪽
노무현 : 자주적으로 문제를 풀어나갈 수 있는 환경의 변화라고 생각합니다. 또 남측의 지도자들도 그러한 환경의 변화를 지켜만 보고 있지는 않을 것입니다. 오전에 내가 말씀드렸듯이 여러가지 노력을 통해 자주적인 역량을 강화해 나가고 있습니다.
68 쪽
노무현 : 개혁 개방을 유도하기 위해 온 것이 결코 아닙니다. 경제의 성과를 생각하는 것이죠.
우린 북측 체제를 존중하는 것이 약속일 뿐만 아니라, 도리일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이익이 됩니다.
69∼70 쪽
노무현: 우리는 북측이 굳건하게 체제를 유지하고 안정을 유지한 토대 위에서 경제적으로 발전하는 것이 우리에게 이익이라고 다들 생각하고 있습니다. 조선공업 같은 것은 우리 남측을 위해서 돌파구를 열어 주셔야 합니다.
NLL 문제가 남북문제에 있어서 나는 제일 큰 문제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난 번에 장관급 회담을 여느냐 안 여느냐 했을 때, 장성급 회담을 열어서 서해평화문제 얘기 진전이 안 되면 우리는 장관급회담도 안 할란다 이렇게 억지를 부려본 적도 있습니다. 서해에서 1차적으로 상호 교신하고 상호 알려주고 했는데, 이행은 좀 잘 안되고 있지만, 문제는 인제 북측에서 NLL이란 본질적인 문제를 장성급회담에 들고 나온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의제로 다뤄라 지시를 했는데 …반대를 합니다. 우선 회담에 나갈 장소부터 만들어야죠.
단호하게 다뤄라 했는데 그 뒤에 그러한 기회가 무시되고 말았지만…이 문제에 대해서 나는 위원장님하고 인식을 같이 하고 있습니다. NLL은 바꿔야 합니다.
그러나 이게 현실적으로 자세한 내용도 모르는 사람들이 민감하게, 시끄럽긴 되게 시끄러워요. 그래서 우리가 제안하고 싶은 것이 안보군사 지도 위에다가 평화 경제지도를 크게 위에다 덮어서 그려 보자는 것입니다.
전체를 평화체제로 만들어 쌍방의 경찰들만이 관리하자는 겁니다.
72 쪽
김정일 : 서해 북방 군사분계선 경계선을 쌍방이 다 포기하는 법률적인 이런거 하면 해상에서는 군대는 다 철수하고 그 담에 경찰이 하자고 하는 경찰 순시…
73 쪽
노무현 : 서해 평화협력지대를 설치하기로 하고 그것을 가지고 평화문제, 공동번영의 문제를 다 일거에 해결하기로 합의하고 거기에 필요한 실무 협의 계속해 나가면 내가(내) 임기동안에 NLL 문제는 다 치유가 됩니다.
74 쪽
노무현 : 그건 뭐 그런 평화협력지대가 만들어지면 그 부분은 다 좋아할 것입니다. 또 뭐 시끄러우면 우리가 설명해서 평화문제와 경제문제를 일거에 해결하는 포괄적 해결을 일괄 타결하는 포괄적 해결방식인데 얼마나 이게 좋은 것입니까?
나는 뭐 자신감을 갖습니다. 헌법문제라고 자꾸 나오고 있는데 헌법문제 절대 아닙니다. 얼마든지 내가 맞서 나갈 수 있습니다. 더 큰 비전이 있는데 큰 비전이 없으면 작은 시련을 못이겨 내지만 큰 비전을 가지고 하면 나갈 수 있습니다. 아주 내가 가장 핵심적으로 가장 큰 목표로 삼았던 문제를 위원장님께서 지금 승인해 주신거죠.
김정일 : 협력지대로 평화협력지대로 하니까 서부지대인데 서부지대는 바다문제가 해결되지 않고서는 그건 해결되지 않습니다. 그래 바다문제까지 포함해서 그카면 이제 실무적인 협상에 들어가서는 쌍방이 다 법을 포기한다, 과거에 정해져 있는 것. 그것은 그때 가서 할 문제이고 그러나 이 구상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이렇게 발표해도 되지 않겠습니까?
노무현 : 예 좋습니다.
85 쪽
김정일 : 남측의 반응은 어떻게 예상됩니까?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지요?
노무현 : 서해 평화협력지대를 만든다는 데에서 아무도 없습니다. 반대를 하면 하루아침에 인터넷에서 반대하는 사람은 바보되는 겁니다.
87 쪽
노무현 : 항상 남쪽에서도 군부가 뭘 자꾸 안할라구 합니다. 뒤로 빼고 하는데 이번에 군부가 개편이 돼서 사고방식이 달라지고, 평화 협력에 대해 전향적인 태도를 갖고 있습니다만.
88 쪽
노무현 : 군부가 이 사업에 적극 참여해서 그래서 군비를 강화하는 필요있는 곳을 강화해나가는 방안을 모색해가는 방법이 있지 않겠습니까?
97 쪽
노무현 : 임기 마치고 난 다음에 위원장께 꼭 와서 뵙자는 소리는 못하겠습니다만, 평양 좀 자주 들락날락 할 수 있게 좀... 특별한 대접은 안 받아도...
102 쪽
노무현 : 내가 받은 보고서인데 위원장님께서 심심할 때 보시도록 드리고 가면 안되겠습니까?
김정일 : 여기 우리 합의한 것에 대해 의문점은...? 우리는 뭐...
노무현 : 없습니다. 아주 좋습니다.
김정일 : 김대중 대통령께서는 6.15 선언, 큰 선언을 하나 만드시고 돌아가셨는데...이번 노대통령께서는 실무적으로 선언보다...선언도 중요하지만...보다 해야될 짐을 많이 지고 가는 것이 됐습니다.
노무현 : 내가 원하는 것은 시간을 늦추지 말자는 것이고...또 다음 대통령이 누가 될지 모르니까...뒷걸음질 치지 않게...쐐기를 좀 박아 놓자...
<주한 미군>
36 쪽
노무현 : 작전통제권 환수하고 있지 않습니까. 많은 사람들은 2사단 후방배치를 미국이...또 이런 저런 전략이라고 얘기하지만...그건 후보때부터 얘기하던 나의 방침이기도 합니다. 왜 미국 군대가 거기가 있냐. 인계철선 얘기하는데 미국이 인계철선이 되면 우린 자주권을 가질 수가 없는 것 아니냐...국방을 거기다 맡겨놓고 어떻게 우리가 자주를 얘기할 수 있느냐...그래서 2사단 철수한다는 것이 방침이었는데 마침 미국도 재배치계획을 가지고 있어서 일치해서 용산 기지를 이전하는 데 우리가 60억달러라는 돈이 듭니다.
그런데 60억달러가 들어도 100억달러가 들어도 대한민국 수도 한복판에 외국군대가 있는 것은 나라 체면이 아니다...보내지 않습니까...보냈고...나갑니다. 2011년 되면...그래서 자꾸 이제 너희들 뭐하냐...이렇게만 보지 마시구요 점진적으로 달라지고 있구나...이렇게 보시면 달라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전략적 유연성...전략적 유연성 문제에 있어서 우리가 현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지만...동북아시아에서 군대를 움직일 때에는 우리 정부의 승인을 반드시 받아야 된다...합의했지 않았습니까...
<북핵·경수로>
39 쪽
노무현 : 지난번에 경수로 못한다...그 이종석(통일장관)씨 잘 아실 겁니다. 기존 이종석이 보고 우리가 경수로 짓자...미국 제끼고...몇 번 말로 하니까 안 된다 그래서 그럼 안 되는 이유를 보고서로 글로 써내라...분석보고서를 써내라...한번 올라왔는데 뭐 좀 자세하지 않아서 한번 더 이거 이거 이거 다시 보고서를 내보라 지적해서 다시 보고서를 받았는데 할 수 없는 것입니다.
42 쪽
노무현 : 6자회담에 관해서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는데 조금 전에 보고를 그렇게 상세하게 보고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남측에서 이번에 가서 핵문제 확실하게 이야기하고 와라...주문이 많죠...근데 그것은 나는 되도록이면 가서 판 깨고...판 깨지기를 바라는 사람들의 주장 아니겠습니까...
46 쪽
노무현 : 그래서 지금 경수로 하나 하는 것도요, 정치적 상황 때문에 그렇겠지만, 94년에 합의 돼가지고 98년에 첫 삽 뜨고 2003년 초에 중단이 됐는데, 그 중단될 때까지 35% 공정 밖에 안됐습니다. 그 투자한 돈 13억 달러 안고 있습니다만, 우리는 경수로 꼭 지어야 합니다.
그래서 나는 지난 5년 동안 내내 북핵문제를 둘러싼 북측의 6자회담에서의 입장을 가지고 미국하고 싸워 왔고, 국제무대에 나가서 북측 입장을 변호해 왔습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내가 행동하면서 미국하고 딱 끊고 당신 잘못했다고 하지 못한 것은 미국이 회담장을 박차고 떠나 버리면, 북측도 좋은 일이 아니겠지만, 우리 남측으로봐서도 좋지 않습니다.
75 쪽
노무현 : 궁극적으로는 경수로문제 뭐 그것은 우리가 적극적으로 주장하고 협력할 것입니다.
<대미관계·BDA>
38 쪽
노무현 : 지난 번에 BDA 때...BDA는 뭐..그건 미국의 실책입니다. 분명히 얘기를 하는데...실책인데...그러나 어쨌든 미국의 실책임에도 불구하고 북측의 돈을 받으라하니까 어느 은행도 하는 것 아닙니까.
46 쪽
노무현 : BDA 문제는 미국이 잘못한 것인데, 북측을 보고 손가락질하고 북측보고 풀어라 하고, 부당하다는 거 다 알고 있습니다.
61 쪽
노무현 : 뭐 제일 큰 문제가 미국입니다. 나도 역사적으로 제국주의 역사가 사실 세계, 세계 인민들에게 반성도 하지 않았고, 오늘날도 패권적 야망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는 인식을 갖고 있습니다.
63 쪽
노무현 : 우리 남측 국민들에게 여론조사를 해 봤는데 제일 미운 나라가 어디냐고 했을 때 그 중에 미국이 상당 숫자가 나옵니다. 또 동북아시아에서 앞으로 평화를 해롭게 할 국가가 어디냐, 평화를 깰 수 있는 국가가 어디냐 했을 때 미국이 일번으로 나오고 제일 많이 나오고 많은 사람들이 미국을 지목하고, 그 다음은 일본을 지목하고 다음은 북측을 지목했습니다.
<대일관계>
93 쪽
노무현 : 지난번에 일본 대사가 이임하면서 찾아왔길래...당신들 요구가 뭐냐 물었더니, 사람 돌려달라, 다 돌아갔잖냐 했더니, 더 있다는 겁니다. 어떻게 증거가 있냐 이랬더니, 하여튼 못 믿겠다 이런 얘기만 하는 겁니다.
납치문제에 있어 구체적으로 내가 무슨 말씀을 드릴 수 없고 나도 일본측의 주장을 들어봤지만 잘 못 알아듣겠구요. 이상하다 그것만...호주 사람이 쓴 아주 잘 분석된 책을 봐도 일본이 생트집 잡고 있다고 써놓은 책도 있고 한데...
3 쪽
노무현 : 오늘 아리랑 공연에 대해서도 이런저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만, 저는 큰 기대를 가지고 있고, 위원장님과 함께 볼 수 있으면 하는 기대를 하고 있습니다만.
4 쪽
노무현 : 그동안 해외를 다니면서 50회 넘는 정상회담을 했습니다만, 그동안 외국 정상들의 북측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을 때, 나는 북측의 대변인 노릇 또는 변호인 노릇을 했고 때로는 얼굴도 붉혔던 일도 있습니다.
17 쪽
김정일 : 군사경계, 우리가 주장하는 군사경계선, 또 남측이 주장하는 북방한계선, 이것 사이에 있는 수역을 공동어로구역, 아니면 평화수역으로 설정하면 어떻겠는가.
김정일 : 우리 군대는 지금까지 주장해 온 군사경계선에서 남측이 북방한계선까지 물러선다. 물러선 조건에서 공동수역으로 한다.
18 쪽
김정일 : 북방한계선과 우리 군사경계선 안에 있는 수역을 평화수역으로 선포한다.
노무현 : 예. 아주 저도 관심이 많은...
35 쪽
노무현 : 어쨌든 자주…자주국방이라는 말을 이제 우리 군대가 비로소 쓰기 시작합니다. 주적용어 없애버렸습니다.
36∼37 쪽
노무현 : 작계 5029라는 것을 미측이 만들어 가지고 우리한테 가는데...그거 지금 못 한다...이렇게 해서 없애버리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개념계획이란 수준으로 타협을 해가지고 있는데 이제 그거 없어진 겁니다.
우리 국민들 사이에서 그 흐름을 돌이킬 수 없는 것으로 굳혀나가는 것은 남북관계에 성과있는 진전이 있어야 된다는 것이죠...
40∼41 쪽
노무현 : NLL 문제 의제로 넣어라. 넣어서 타협해야 할 것 아니다. 그것이 국제법적인 근거도 없고 논리적 근거도 분명치 않은 것인데... 그러나 현실로서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북측 인민으로서도 그건 아마 자존심이 걸린 것이고, 남측에서는 이걸 영토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혼동이라는 것을 풀어가면서 풀어야되는 것인데...이 풀자는 의지를 군사회담 넣어 놓으니까 싸움질만 하고요...풀자는 의지를…두 가지...의지가 부족하고 자기들 안보만 생각했지 풀자는 의지가 부족하고...뭐 아무리 설명을 해도 자꾸 딴소리를 하는 겁니다. 그거 안됩니다 하고... 그 다음에 이런 여러 가지 위원장께서 제기하신 서해 공동어로 평화의 바다…내가 봐도 숨통이 막히는데 그거 남쪽에다 그냥 확 해서 해결해 버리면 좋겠는데...
42 쪽
노무현 : 위원장이 지금 구상하신 공동어로 수역을 이렇게 군사 서로 철수하고 공동어로하고 평화수역 이 말씀에 대해서 똑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거든요... 단지 딱 가서 NLL 말만 나오면 전부다 막 벌떼처럼 들고 일어나는 것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인데 위원장하고 나하고 이 문제를 깊이 논의해볼 가치가 있는 게 아니냐...
47 쪽
노무현 : 우리는 위원장하고 김대중 대통령하고 6·15 때 악수 한번 했는데, 그게 우리 남쪽 경제에 수 조원, 수 십 조원 번 거 거든요. 어제 사진도, 어제 내가 분계선을 넘어선 사진으로 남측이 아마 수 조원 벌었습니다.
50 쪽
노무현 : 남측은 데모가 너무 자유로운 나라라서 모시기도 그렇게... 우리도 좀 어려움이 있습니다.
57 쪽
노무현 : 그런데 NLL이라는 것이 이상하게 생겨 가지고, 무슨 괴물처럼 함부로 못 건드리는 물건이 돼 있거든요.
그래서 거기에 대해 말하자면 서해 평화지대를 만들어서 공동어로도 하고, 한강하구에 공동개발도 하고, 나아가서는 인천, 해주 전체를 엮어서 공동경제구역도 만들어서 통항도 맘대로 하게하고, 그렇게 되면, 그 통항을 위해서 말하자면 그림을 새로 그려야 하거든요. 여기는 자유통항구역이고, 여기는 공동어로구역이고, 그럼 거기에는 군대를 못 들어가게 하고, 양측이 경찰이 관리를 하는 평화지대를 하나 만드는, 그런 개념들을 설정하는 것이 가장 시급한 문제이지요.
63 쪽
노무현 : 자주적으로 문제를 풀어나갈 수 있는 환경의 변화라고 생각합니다. 또 남측의 지도자들도 그러한 환경의 변화를 지켜만 보고 있지는 않을 것입니다. 오전에 내가 말씀드렸듯이 여러가지 노력을 통해 자주적인 역량을 강화해 나가고 있습니다.
68 쪽
노무현 : 개혁 개방을 유도하기 위해 온 것이 결코 아닙니다. 경제의 성과를 생각하는 것이죠.
우린 북측 체제를 존중하는 것이 약속일 뿐만 아니라, 도리일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이익이 됩니다.
69∼70 쪽
노무현: 우리는 북측이 굳건하게 체제를 유지하고 안정을 유지한 토대 위에서 경제적으로 발전하는 것이 우리에게 이익이라고 다들 생각하고 있습니다. 조선공업 같은 것은 우리 남측을 위해서 돌파구를 열어 주셔야 합니다.
NLL 문제가 남북문제에 있어서 나는 제일 큰 문제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난 번에 장관급 회담을 여느냐 안 여느냐 했을 때, 장성급 회담을 열어서 서해평화문제 얘기 진전이 안 되면 우리는 장관급회담도 안 할란다 이렇게 억지를 부려본 적도 있습니다. 서해에서 1차적으로 상호 교신하고 상호 알려주고 했는데, 이행은 좀 잘 안되고 있지만, 문제는 인제 북측에서 NLL이란 본질적인 문제를 장성급회담에 들고 나온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의제로 다뤄라 지시를 했는데 …반대를 합니다. 우선 회담에 나갈 장소부터 만들어야죠.
단호하게 다뤄라 했는데 그 뒤에 그러한 기회가 무시되고 말았지만…이 문제에 대해서 나는 위원장님하고 인식을 같이 하고 있습니다. NLL은 바꿔야 합니다.
그러나 이게 현실적으로 자세한 내용도 모르는 사람들이 민감하게, 시끄럽긴 되게 시끄러워요. 그래서 우리가 제안하고 싶은 것이 안보군사 지도 위에다가 평화 경제지도를 크게 위에다 덮어서 그려 보자는 것입니다.
전체를 평화체제로 만들어 쌍방의 경찰들만이 관리하자는 겁니다.
72 쪽
김정일 : 서해 북방 군사분계선 경계선을 쌍방이 다 포기하는 법률적인 이런거 하면 해상에서는 군대는 다 철수하고 그 담에 경찰이 하자고 하는 경찰 순시…
73 쪽
노무현 : 서해 평화협력지대를 설치하기로 하고 그것을 가지고 평화문제, 공동번영의 문제를 다 일거에 해결하기로 합의하고 거기에 필요한 실무 협의 계속해 나가면 내가(내) 임기동안에 NLL 문제는 다 치유가 됩니다.
74 쪽
노무현 : 그건 뭐 그런 평화협력지대가 만들어지면 그 부분은 다 좋아할 것입니다. 또 뭐 시끄러우면 우리가 설명해서 평화문제와 경제문제를 일거에 해결하는 포괄적 해결을 일괄 타결하는 포괄적 해결방식인데 얼마나 이게 좋은 것입니까?
나는 뭐 자신감을 갖습니다. 헌법문제라고 자꾸 나오고 있는데 헌법문제 절대 아닙니다. 얼마든지 내가 맞서 나갈 수 있습니다. 더 큰 비전이 있는데 큰 비전이 없으면 작은 시련을 못이겨 내지만 큰 비전을 가지고 하면 나갈 수 있습니다. 아주 내가 가장 핵심적으로 가장 큰 목표로 삼았던 문제를 위원장님께서 지금 승인해 주신거죠.
김정일 : 협력지대로 평화협력지대로 하니까 서부지대인데 서부지대는 바다문제가 해결되지 않고서는 그건 해결되지 않습니다. 그래 바다문제까지 포함해서 그카면 이제 실무적인 협상에 들어가서는 쌍방이 다 법을 포기한다, 과거에 정해져 있는 것. 그것은 그때 가서 할 문제이고 그러나 이 구상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이렇게 발표해도 되지 않겠습니까?
노무현 : 예 좋습니다.
85 쪽
김정일 : 남측의 반응은 어떻게 예상됩니까?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지요?
노무현 : 서해 평화협력지대를 만든다는 데에서 아무도 없습니다. 반대를 하면 하루아침에 인터넷에서 반대하는 사람은 바보되는 겁니다.
87 쪽
노무현 : 항상 남쪽에서도 군부가 뭘 자꾸 안할라구 합니다. 뒤로 빼고 하는데 이번에 군부가 개편이 돼서 사고방식이 달라지고, 평화 협력에 대해 전향적인 태도를 갖고 있습니다만.
88 쪽
노무현 : 군부가 이 사업에 적극 참여해서 그래서 군비를 강화하는 필요있는 곳을 강화해나가는 방안을 모색해가는 방법이 있지 않겠습니까?
97 쪽
노무현 : 임기 마치고 난 다음에 위원장께 꼭 와서 뵙자는 소리는 못하겠습니다만, 평양 좀 자주 들락날락 할 수 있게 좀... 특별한 대접은 안 받아도...
102 쪽
노무현 : 내가 받은 보고서인데 위원장님께서 심심할 때 보시도록 드리고 가면 안되겠습니까?
김정일 : 여기 우리 합의한 것에 대해 의문점은...? 우리는 뭐...
노무현 : 없습니다. 아주 좋습니다.
김정일 : 김대중 대통령께서는 6.15 선언, 큰 선언을 하나 만드시고 돌아가셨는데...이번 노대통령께서는 실무적으로 선언보다...선언도 중요하지만...보다 해야될 짐을 많이 지고 가는 것이 됐습니다.
노무현 : 내가 원하는 것은 시간을 늦추지 말자는 것이고...또 다음 대통령이 누가 될지 모르니까...뒷걸음질 치지 않게...쐐기를 좀 박아 놓자...
<주한 미군>
36 쪽
노무현 : 작전통제권 환수하고 있지 않습니까. 많은 사람들은 2사단 후방배치를 미국이...또 이런 저런 전략이라고 얘기하지만...그건 후보때부터 얘기하던 나의 방침이기도 합니다. 왜 미국 군대가 거기가 있냐. 인계철선 얘기하는데 미국이 인계철선이 되면 우린 자주권을 가질 수가 없는 것 아니냐...국방을 거기다 맡겨놓고 어떻게 우리가 자주를 얘기할 수 있느냐...그래서 2사단 철수한다는 것이 방침이었는데 마침 미국도 재배치계획을 가지고 있어서 일치해서 용산 기지를 이전하는 데 우리가 60억달러라는 돈이 듭니다.
그런데 60억달러가 들어도 100억달러가 들어도 대한민국 수도 한복판에 외국군대가 있는 것은 나라 체면이 아니다...보내지 않습니까...보냈고...나갑니다. 2011년 되면...그래서 자꾸 이제 너희들 뭐하냐...이렇게만 보지 마시구요 점진적으로 달라지고 있구나...이렇게 보시면 달라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전략적 유연성...전략적 유연성 문제에 있어서 우리가 현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지만...동북아시아에서 군대를 움직일 때에는 우리 정부의 승인을 반드시 받아야 된다...합의했지 않았습니까...
<북핵·경수로>
39 쪽
노무현 : 지난번에 경수로 못한다...그 이종석(통일장관)씨 잘 아실 겁니다. 기존 이종석이 보고 우리가 경수로 짓자...미국 제끼고...몇 번 말로 하니까 안 된다 그래서 그럼 안 되는 이유를 보고서로 글로 써내라...분석보고서를 써내라...한번 올라왔는데 뭐 좀 자세하지 않아서 한번 더 이거 이거 이거 다시 보고서를 내보라 지적해서 다시 보고서를 받았는데 할 수 없는 것입니다.
42 쪽
노무현 : 6자회담에 관해서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는데 조금 전에 보고를 그렇게 상세하게 보고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남측에서 이번에 가서 핵문제 확실하게 이야기하고 와라...주문이 많죠...근데 그것은 나는 되도록이면 가서 판 깨고...판 깨지기를 바라는 사람들의 주장 아니겠습니까...
46 쪽
노무현 : 그래서 지금 경수로 하나 하는 것도요, 정치적 상황 때문에 그렇겠지만, 94년에 합의 돼가지고 98년에 첫 삽 뜨고 2003년 초에 중단이 됐는데, 그 중단될 때까지 35% 공정 밖에 안됐습니다. 그 투자한 돈 13억 달러 안고 있습니다만, 우리는 경수로 꼭 지어야 합니다.
그래서 나는 지난 5년 동안 내내 북핵문제를 둘러싼 북측의 6자회담에서의 입장을 가지고 미국하고 싸워 왔고, 국제무대에 나가서 북측 입장을 변호해 왔습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내가 행동하면서 미국하고 딱 끊고 당신 잘못했다고 하지 못한 것은 미국이 회담장을 박차고 떠나 버리면, 북측도 좋은 일이 아니겠지만, 우리 남측으로봐서도 좋지 않습니다.
75 쪽
노무현 : 궁극적으로는 경수로문제 뭐 그것은 우리가 적극적으로 주장하고 협력할 것입니다.
<대미관계·BDA>
38 쪽
노무현 : 지난 번에 BDA 때...BDA는 뭐..그건 미국의 실책입니다. 분명히 얘기를 하는데...실책인데...그러나 어쨌든 미국의 실책임에도 불구하고 북측의 돈을 받으라하니까 어느 은행도 하는 것 아닙니까.
46 쪽
노무현 : BDA 문제는 미국이 잘못한 것인데, 북측을 보고 손가락질하고 북측보고 풀어라 하고, 부당하다는 거 다 알고 있습니다.
61 쪽
노무현 : 뭐 제일 큰 문제가 미국입니다. 나도 역사적으로 제국주의 역사가 사실 세계, 세계 인민들에게 반성도 하지 않았고, 오늘날도 패권적 야망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는 인식을 갖고 있습니다.
63 쪽
노무현 : 우리 남측 국민들에게 여론조사를 해 봤는데 제일 미운 나라가 어디냐고 했을 때 그 중에 미국이 상당 숫자가 나옵니다. 또 동북아시아에서 앞으로 평화를 해롭게 할 국가가 어디냐, 평화를 깰 수 있는 국가가 어디냐 했을 때 미국이 일번으로 나오고 제일 많이 나오고 많은 사람들이 미국을 지목하고, 그 다음은 일본을 지목하고 다음은 북측을 지목했습니다.
<대일관계>
93 쪽
노무현 : 지난번에 일본 대사가 이임하면서 찾아왔길래...당신들 요구가 뭐냐 물었더니, 사람 돌려달라, 다 돌아갔잖냐 했더니, 더 있다는 겁니다. 어떻게 증거가 있냐 이랬더니, 하여튼 못 믿겠다 이런 얘기만 하는 겁니다.
납치문제에 있어 구체적으로 내가 무슨 말씀을 드릴 수 없고 나도 일본측의 주장을 들어봤지만 잘 못 알아듣겠구요. 이상하다 그것만...호주 사람이 쓴 아주 잘 분석된 책을 봐도 일본이 생트집 잡고 있다고 써놓은 책도 있고 한데...
광주폭동 당시 어느 해병의 수첩
광주폭동 당시 어느 해병의 수첩
광주폭동에 대한 김대중 본인의 소감과 전두환의 의견이다.
그런데 김대중의 주장을 입증할 만한 자료랄까, 그 비슷한 것이 있었다. 당시 한 해병대원의 일기이다.
1980년 5월 22일자 어느 해병의 수첩에 적힌 내용이다.

김대중이 사주한 폭동이었다 라...
5.18 폭동 당시의 실황을 알수 있는 중요한 자료다. 이것도 정권이 바뀌고 5.18의 진실을 요구하는 목소리들이 나타났기에 공개된 것이리라.
무기고를 털고 MBC 방송국을 약탈했다 한다.
과연 이런 상황인데도 정부와 군은 진압하지 말고 가만히 있었어야 했던 것일까?
광주폭동에 대한 김대중 본인의 소감과 전두환의 의견이다.
그런데 김대중의 주장을 입증할 만한 자료랄까, 그 비슷한 것이 있었다. 당시 한 해병대원의 일기이다.
1980년 5월 22일자 어느 해병의 수첩에 적힌 내용이다.

김대중이 사주한 폭동이었다 라...
5.18 폭동 당시의 실황을 알수 있는 중요한 자료다. 이것도 정권이 바뀌고 5.18의 진실을 요구하는 목소리들이 나타났기에 공개된 것이리라.
무기고를 털고 MBC 방송국을 약탈했다 한다.
과연 이런 상황인데도 정부와 군은 진압하지 말고 가만히 있었어야 했던 것일까?
2013년 6월 5일 수요일
한국남자는 돈벌어 오는 개새끼, 노예였다.
한국남자는 돈벌어 오는 개새끼, 노예였다.
일부 과장된 수치는 있겠지만, 대부분의 한국여자들이 실제 이렇게 생각한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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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을 2차발의하는데 있어 중요한 연구자료가될 spss
5월한달간 전국 대학.시도.구 모바일과 설문지
온라인을 통해 총 7천여명의 결혼적령기 여성..
(23~39세까지)을 조사해서 도출해낸 표입니다.
1.배우자(남편)이 결혼시 충족할 조건에 대한 항목
1-1. 주거) 신혼집 최소한의 기준
1위-인서울 10년이하의 24평아파트 전세 (1억8천만원)48%
2위-인서울경기 신축 브랜드 30평대 전세 (2억7천이상)13%
3위-인서울경기 20년이하의 20평대 아파트자가 (3~4억)9%
기타- 강남(서초.송파.강남)쪽에 아파트 전세 (5~8억)3%
1-2. 배우자의 연봉 최소한의 기준
1위-5천만원 39%
2위-6천만원 23%
3위-4500만원 9%
4위-7500만원 7%
5위- 1억 4%
배우자 연봉이 최소 5천만원? 놀고 있네... 월 100~200만원 버는데 연봉 5천은 커녕 3천만원도 힘든데 뭐? 연봉 5천???
1-2(1) 내 연봉(신부)은 얼마인가
1위-2500만원 25%
2위-2000만원 23%
3위-3000만원 17%
4위-3500만원 9%
5위-1700만원 7%
<--나는 연봉 3천만원도 안되지만 남자는 연봉 1억이 넘어야 된다고? 와우 씨발...
1-3. 결혼상대(남자)의 결혼전 자산 조건 최소의 기준은
1위-3억5천 30%
2위-3억 25%
3위-2억 9%
4위-4억 7%
5위-5억 6%
1항목은 최소한의 기준 즉 이정도가 커트라인이면 싫진않다라는 측면이구요
2항목에서 권장..즉 요구하는 측정값은 따로 잡았습니다.
1-9. 최소한의 기준에 못 미치는 결혼은 할것인가
1위- 하지 않고 나타날때까지 기다린다. 66%
2위- 적당히 타협해서 결혼한다 23%
3위- 나이 압박이 들어오면 하향기준으로 낮춘다. 15%
영원히, 평생 혼자 살기를 바란다. 남의 집 죄없는 아들들 괴롭히지 말고 혼자살아라.
2-1.결혼시 (여자)혼수의 비용은 얼마나 생각
1위-3천만원 49%
2위-2천만원 24%
3위-4천만원 11%
4위-2500만원 8%
5위-5천만원 3%
2-2. 결혼준비 비용분배문제는 어떻게 생각?
1위-남자(집) 전세포함,여자(혼수) 85%
2위-남자여자 반반 9%
3위-여자가 더해가야한다 0.5%
아예 남자더러 집을 사오라고 해라. 와...
3-1.남자(배우자)가 실직상태이면 얼마까지 기다려 줄수있나..
(그 이후에는 이혼고려)
1위-1년 71%
2위-1년반 9%
3위-6개월 8%
4위-3개월 7%
<--1년도 안되는 여자들 뭐냐?
3-2. 결혼후 여자에게 맞벌이를 할것인가?
1위- 결혼후 육아에 전념하고 싶으므로 no (49%)
2위- 할것이다 (28%)
3위-남편이 능력이 없으면 생각해보겠다 (11%)
4위-절대 하지 않을것이다.(10%)
4.1- 현재의 남자친구가 있지만 능력남이 대쉬해온다면?
1위-흔들린다 (59%)
2위-양다리후 결정(20%)
3위-거절한다(11%)
4위-무조건 능력남에게 간다(9%)
남편이 있고 애가 있어도 능력있는 남자가 오면 59%가 흔들리고, 양다리는 20%, 간다가 9%? 에라이 썩을 것들...
4.2 - 현재의 남친이 신혼집을 원룸이나 다세대..빌라등에서 시작하자고 한다면?
1위-결혼을 고민할것 같다 (63%)
2위-헤어진다(30%)
3위-힘들어도 믿고 시작한다 (7%)
5-1.결혼생활이 경제적으로 힘든 상황에서 능력남이 대쉬해온다면?
1위-흔들릴것같다.(34%)
2위-가정을 그래도 지킨다(29%)
3위-현 남편과 정리하고 이혼후 재혼(11%)
4위 26%의 의견은 뭘까?
6-1.친엄마가 아빠의 무능력으로 이혼을 원할때 딸인 나의 선택은?
1위-엄마의 인생을 위해 새로운 시작을 권유한다(재혼) 35%
2위-가정을 지키게끔 도와준다 28%
3위-두분이서 알아서할 문제다 18%
7-1. 결혼할때 제일 중요하게 보는 남자의 조건은?
1위- 경제력 60%
2위-현재의 직장 11%
3위-인성.성격 9%
4위- 외모 8%
5위- 종교 4%
6위- 키 4%
7위-시댁의 배경 0.5%
8-1. 여자가 생각하는 남자의 결혼적령기
1위 34세 25%
2위 33세 21%
3위 32세 18%
4위 35세 9%
5위 31세 8%
8-2. 여자가 생각하는 여자의 결혼적령기는?
1위 31세 19%
2위 32세 17%
3위 29세 15%
4위 33세 14%
5위 28세 11%
9-1. 결혼 조건항목중 남자의 이게 충족이 못되면 절대 결혼할수없는것은 무엇?
1위 돈(자산) 64%
2위 직장레벨 9%
3위 신혼집수준 7%
4위 차 레벨 5%
5위 인성 2%
9-2. 결혼시 시댁에서 지원해 줬으면 하는 금액은
1위 1억 35%
2위 2억 21%
3위 3억 18%
4위 4억 11%
5위 1억5천 7%
9-2. 결혼시 친정에서 해줄수있는 예단 금액 한도는
1위 500만원 32%
2위 300만원 28%
3위 200만원 10%
4위 100만원 7%
5위 천만원 4%
<-- 와. 욕나오게 만드네... 친정에서는 5백만원도 해주지 못하지만 시댁은 1억 이상 해줘야 된다고?
10-1. 남녀가 가정을 꾸리고 결혼 생활을 함에있서 가장 중요하게 여겨야하는 항목은
1위-경제적인부분 19%
2위-부부간에 믿음 14%
3위-성격.다툼,화해의기술 11%
4위-속궁합 9%
5위-취미공유 5%
<-- 부부간의 믿음??? 놀고들 있네... 차라리 화해의 기술하고 속궁합, 그보다 돈이 더 우선일텐데?
10-2. 남편과 아내의 역할을 바꿀 의향이 있겠는가?
즉 남자가 살림하고 애보고 여자가 밖에서 돈버는것
1위-용납할수없다.90%
2위-누가벌어도 상관없다.여자가 벌어먹일수있다.2%
3위-반반씩 나누어 할수있다 1%
10-3. 결혼후 남편이 바람을 피거나 업소에 드나든 사실을 알았을경우
나의 행동은?(주관식)
1위.바로 이혼 39%
2위.남편을 돈버는 기계로 생각하고 뒤로 이혼할 준비를한다.(재산몰수,재혼상대물색) 28%
3위. 참고 이해하고 산다 9%
4위. 너죽고 나죽고 치고박고 싸운다,하지만 이혼은 보류 7%
5위.남편과 진지한 얘기후 이혼 고민 6%
11-1. 나는 현재 결혼전까지 몇명의 이성을 사겨보았나?
(중고등학창시절부터 결혼전까지)
1위-5명 30%
2위-4명 21%
3위-3명 11%
4위-6명 9%
5위-7명 8%
6위-2명 6%
7위-10명 4%
<-- 제대로 사귀어 본 이성이겠냐? 그냥 멍청하고 어리숙해서 공짜로 몸 대준 것이겠지...
11-2. 연애하면서 평균 잠자리까지 도달한 시간은
1위-한달 29%
2위-2주 22%
3위-보름 21%
4위-3주 18%
5위-일주일 8%
12-1. 다음 항목중 인생에 가장 중요하게 추구하는 목표는 무엇인가
(돈,행복,건강)
1위 - 돈 78%
2위 - 행복 17%
3위- 건강 5%
13-1. 결혼후에 재산분할 관리는 어떻게 할 예정 (주관)
1위-집 공동 명의 35%
2위-통장 금액 공통 분배 21%
3위-아내가 전적으로 관리한다 18%
4위-남편에게 맡긴다. 5%
14-1. 신랑이 경차를 타고 좁은 다세대주택에 기거하자 했을때 싫은 이유는?
1위-남들의 시선이 싫어서 61%
2위-행복감이 낮아지는듯해서 19%
3위-챙피해서 8%
4위-보안.생활시설등 불편해서 5%
5위-상관없다 1%
15-1. 남성이 집.여성이 혼수를 해오는 현 결혼제도의 이유는 뭐라 생각
1위-조선시대때부터 그렇게 했으므로 (전통적 결혼관습)58%
2위-남자가 사회적으로 돈 벌기 유리하므로 20%
3위-여자는 사회적 약자이므로 10%
16-1. 이혼의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1위-부부간 성격차 26%
2위- 경제적인 문제 24%
3위 -남성의 권위적,가부장적 태도 11%
4위 - 속궁합 9%
5위- 대화단절 6%
성격차가 아니라 돈 문제겠지. 돈...
17-1.소개팅에 나온 남성이 외모는 최하였으나 외제차를 몰고 있단걸 알았다면
1위-호감도가 다시 증가한다. 35%
2위-갈등할것 같다.24%
3위-무조건 잡으려 노력할것 같다.13%
4위 -처음 이미지와 별반 차이없다.6%
q-1.본인(여성)의 현 직업은 무엇인가
1위-직장인 43%
2위-대학생 12%
3위-아르바이트4%
4위-무직 4%
5위- 사업 2%
q-2.본인(여성)의 나이는 얼마인가
1위-30~31세 25%
2위-32~33세 17%
3위-28~29세 15%
4위-34~35세 11%
5위-26~27세 10%
q-3.본인(여성)의 학력은 어떠한가
1위-4년제대졸 (인서울) 39%
2위-4년제대졸(지방) 11%
3위-2년제초대졸 10%
4위-고졸 7%
5위-석사졸 6%
6위-박사졸 3%
7위-그외 학사(방통.학은제.독학사) 2%
q-4.결혼에 대한 가치관 형성은 주로 어디서 피드백되나
1위-친구.지인,직장들과의 소통을 통해 38%
2위-대중매체(드라마).인터넷을 통해 23%
3위-부모님(모계위주)의 조언을 통해 19%
a-1.현 결혼제도처럼 남자가 여자에 비해 많은 비용을 대는것이 합리적이라 생각하는가
1위-매우 합리적이라 생각한다 61%
2위-적당한 수준이라고 생각한다 26%
3위-비합리적이다.남자가 부담이 될수있다 생각한다 2%
4위-매우 비합리적이며 바껴야한다고 느낀다 1%
남자들에게 집도 사오고 돈도 마련하라면서 그게 합리적이냐?
b-1. 결혼생활을 함에 있어 나는 어디까지 희생해야하는 존재인가
1위-시대가 변했으므로 최우선 가치를 나의 행복으로둔다 29%
2위-나와 자식의 연계가 가장 중요하다. 19%
3위-자식을 위해 희생하며 산다 3%
4위-남편에게 내조하며 자식을 위해 희생하며 산다 1%
c-1.결혼후 남편에게 받는 생활비론 얼마가 적당하다 느끼는가
1위-500만원 41%
2위-600만원 20%
3위-400만원 11%
4위-700만원 8%
5위-300만원 4%
정말 남자들 한달에 얼마 버는지 모르나? 30대 직장인 여자들이라면서 생각하는게 그정도면, 정말 미친것이라고 밖에 할 말이 없다.
c-3. 결혼후 가사가 기울어져 생활고에 시달린다면
1위-이혼후 장기적으로 새가정을 꾸린다 31%
2위-시댁에게 금전적 지원을 부탁한다 29%
3위-직업전선에 나서 생활고 타계를 위해 노력한다.17%
4위-이혼을 고려한다. 12%
c-4. 이혼에 대한 나의 생각은
1위-이혼은 언제든지 할수있고, 요즘 시대에 흠이 아니라 생각 36%
2위-어쩔수 없이 이혼은 할수 있지만 최대한 고려 18%
3위-새출발을 위한 시작선 11%
4위-내 인생에 절대 이혼은 없다 8%
b2- 성형을 한 횟수는
1위- 2회 35%
2위- 1회 20%
3위- 자연미인 19%
4위- 3회 11%
5위- 5회 9%
b3- 좋은 배우자를 만나기 위해 내가 하고 있는 노력은
1위- 성형 61%
2위-몸매관리 (요가,운동)11%
3위-좋은직장등 능력 업그레이드 3%
4위-학력업그레이드 2%
<-- 좋은 사람 만나기 위해 하는 노력이 겨우 성형 하고, 몸매관리냐??? 돈 1,2백만원에 가능한게 그게, 그게 노력이라니...
b4-요즘 가장 관심있는 항목은
1위-미용.성형 41%
2위-다이어트 몸매관리 29%
3위-드라마.TV.연예인 13%
4위- 남자 .이성 11%
4위-재태크 경제 1%
5위-능력.공부업그레이드 0.1%
n-1 소개팅시 남녀 데이트 비용의 적정선의 비율은
1위-남자가 전액 부담 65%
2위-남자 9 :1 여자 23%
3위-남자 8: 2 여자 8%
4위-남자 여자 반반 1%
남자가 전액을 부담해야 된다고? 남자는 돈이 아깝지 않나?
n-2 데이트 비용을 안내거나 적게내는 이유는
1위-남자가 알아서 다 내주기 때문 39%
2위-여성은 소개팅시 옷.헤어.구두등 준비 비용이 많기에 28%
3위-남자가 벌이가 더 많기 때문에 18%
4위-사귀는것도 아닌데 내 돈 내기 아까워서 15%
5위 -남녀 만남에서 남자가 돈내는것은 당연하기 때문에 9%
30대 직장인이고 세상물정을 안다는 여자들 사고방식이 이정도다. 그러니 20대 여자들은 어떻겠냐??? 지금껏 한국남자는 돈벌어 오는 개새끼였다. 남자는 인간이 아니라 여자를 위해 돈물어오는 노예, 개였던 것이다.
결론 : 대한민국 사내들 호구 맞다.
동남아 아가씨 데려와라. 연봉 5천만원이 뉘집 애 이름이며, 1억 모으기가 쉽냐? 국제결혼 해라.그편이 낫겠다.
연애 하고도 결혼에 골인 못하면 그 돈은 그냥 공짜로 날려버린 것이잖아...
일부 과장된 수치는 있겠지만, 대부분의 한국여자들이 실제 이렇게 생각한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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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을 2차발의하는데 있어 중요한 연구자료가될 spss
5월한달간 전국 대학.시도.구 모바일과 설문지
온라인을 통해 총 7천여명의 결혼적령기 여성..
(23~39세까지)을 조사해서 도출해낸 표입니다.
1.배우자(남편)이 결혼시 충족할 조건에 대한 항목
1-1. 주거) 신혼집 최소한의 기준
1위-인서울 10년이하의 24평아파트 전세 (1억8천만원)48%
2위-인서울경기 신축 브랜드 30평대 전세 (2억7천이상)13%
3위-인서울경기 20년이하의 20평대 아파트자가 (3~4억)9%
기타- 강남(서초.송파.강남)쪽에 아파트 전세 (5~8억)3%
1-2. 배우자의 연봉 최소한의 기준
1위-5천만원 39%
2위-6천만원 23%
3위-4500만원 9%
4위-7500만원 7%
5위- 1억 4%
배우자 연봉이 최소 5천만원? 놀고 있네... 월 100~200만원 버는데 연봉 5천은 커녕 3천만원도 힘든데 뭐? 연봉 5천???
1-2(1) 내 연봉(신부)은 얼마인가
1위-2500만원 25%
2위-2000만원 23%
3위-3000만원 17%
4위-3500만원 9%
5위-1700만원 7%
<--나는 연봉 3천만원도 안되지만 남자는 연봉 1억이 넘어야 된다고? 와우 씨발...
1-3. 결혼상대(남자)의 결혼전 자산 조건 최소의 기준은
1위-3억5천 30%
2위-3억 25%
3위-2억 9%
4위-4억 7%
5위-5억 6%
1항목은 최소한의 기준 즉 이정도가 커트라인이면 싫진않다라는 측면이구요
2항목에서 권장..즉 요구하는 측정값은 따로 잡았습니다.
1-9. 최소한의 기준에 못 미치는 결혼은 할것인가
1위- 하지 않고 나타날때까지 기다린다. 66%
2위- 적당히 타협해서 결혼한다 23%
3위- 나이 압박이 들어오면 하향기준으로 낮춘다. 15%
영원히, 평생 혼자 살기를 바란다. 남의 집 죄없는 아들들 괴롭히지 말고 혼자살아라.
2-1.결혼시 (여자)혼수의 비용은 얼마나 생각
1위-3천만원 49%
2위-2천만원 24%
3위-4천만원 11%
4위-2500만원 8%
5위-5천만원 3%
2-2. 결혼준비 비용분배문제는 어떻게 생각?
1위-남자(집) 전세포함,여자(혼수) 85%
2위-남자여자 반반 9%
3위-여자가 더해가야한다 0.5%
아예 남자더러 집을 사오라고 해라. 와...
3-1.남자(배우자)가 실직상태이면 얼마까지 기다려 줄수있나..
(그 이후에는 이혼고려)
1위-1년 71%
2위-1년반 9%
3위-6개월 8%
4위-3개월 7%
<--1년도 안되는 여자들 뭐냐?
3-2. 결혼후 여자에게 맞벌이를 할것인가?
1위- 결혼후 육아에 전념하고 싶으므로 no (49%)
2위- 할것이다 (28%)
3위-남편이 능력이 없으면 생각해보겠다 (11%)
4위-절대 하지 않을것이다.(10%)
4.1- 현재의 남자친구가 있지만 능력남이 대쉬해온다면?
1위-흔들린다 (59%)
2위-양다리후 결정(20%)
3위-거절한다(11%)
4위-무조건 능력남에게 간다(9%)
남편이 있고 애가 있어도 능력있는 남자가 오면 59%가 흔들리고, 양다리는 20%, 간다가 9%? 에라이 썩을 것들...
4.2 - 현재의 남친이 신혼집을 원룸이나 다세대..빌라등에서 시작하자고 한다면?
1위-결혼을 고민할것 같다 (63%)
2위-헤어진다(30%)
3위-힘들어도 믿고 시작한다 (7%)
5-1.결혼생활이 경제적으로 힘든 상황에서 능력남이 대쉬해온다면?
1위-흔들릴것같다.(34%)
2위-가정을 그래도 지킨다(29%)
3위-현 남편과 정리하고 이혼후 재혼(11%)
4위 26%의 의견은 뭘까?
6-1.친엄마가 아빠의 무능력으로 이혼을 원할때 딸인 나의 선택은?
1위-엄마의 인생을 위해 새로운 시작을 권유한다(재혼) 35%
2위-가정을 지키게끔 도와준다 28%
3위-두분이서 알아서할 문제다 18%
7-1. 결혼할때 제일 중요하게 보는 남자의 조건은?
1위- 경제력 60%
2위-현재의 직장 11%
3위-인성.성격 9%
4위- 외모 8%
5위- 종교 4%
6위- 키 4%
7위-시댁의 배경 0.5%
8-1. 여자가 생각하는 남자의 결혼적령기
1위 34세 25%
2위 33세 21%
3위 32세 18%
4위 35세 9%
5위 31세 8%
8-2. 여자가 생각하는 여자의 결혼적령기는?
1위 31세 19%
2위 32세 17%
3위 29세 15%
4위 33세 14%
5위 28세 11%
9-1. 결혼 조건항목중 남자의 이게 충족이 못되면 절대 결혼할수없는것은 무엇?
1위 돈(자산) 64%
2위 직장레벨 9%
3위 신혼집수준 7%
4위 차 레벨 5%
5위 인성 2%
9-2. 결혼시 시댁에서 지원해 줬으면 하는 금액은
1위 1억 35%
2위 2억 21%
3위 3억 18%
4위 4억 11%
5위 1억5천 7%
9-2. 결혼시 친정에서 해줄수있는 예단 금액 한도는
1위 500만원 32%
2위 300만원 28%
3위 200만원 10%
4위 100만원 7%
5위 천만원 4%
<-- 와. 욕나오게 만드네... 친정에서는 5백만원도 해주지 못하지만 시댁은 1억 이상 해줘야 된다고?
10-1. 남녀가 가정을 꾸리고 결혼 생활을 함에있서 가장 중요하게 여겨야하는 항목은
1위-경제적인부분 19%
2위-부부간에 믿음 14%
3위-성격.다툼,화해의기술 11%
4위-속궁합 9%
5위-취미공유 5%
<-- 부부간의 믿음??? 놀고들 있네... 차라리 화해의 기술하고 속궁합, 그보다 돈이 더 우선일텐데?
10-2. 남편과 아내의 역할을 바꿀 의향이 있겠는가?
즉 남자가 살림하고 애보고 여자가 밖에서 돈버는것
1위-용납할수없다.90%
2위-누가벌어도 상관없다.여자가 벌어먹일수있다.2%
3위-반반씩 나누어 할수있다 1%
10-3. 결혼후 남편이 바람을 피거나 업소에 드나든 사실을 알았을경우
나의 행동은?(주관식)
1위.바로 이혼 39%
2위.남편을 돈버는 기계로 생각하고 뒤로 이혼할 준비를한다.(재산몰수,재혼상대물색) 28%
3위. 참고 이해하고 산다 9%
4위. 너죽고 나죽고 치고박고 싸운다,하지만 이혼은 보류 7%
5위.남편과 진지한 얘기후 이혼 고민 6%
11-1. 나는 현재 결혼전까지 몇명의 이성을 사겨보았나?
(중고등학창시절부터 결혼전까지)
1위-5명 30%
2위-4명 21%
3위-3명 11%
4위-6명 9%
5위-7명 8%
6위-2명 6%
7위-10명 4%
<-- 제대로 사귀어 본 이성이겠냐? 그냥 멍청하고 어리숙해서 공짜로 몸 대준 것이겠지...
11-2. 연애하면서 평균 잠자리까지 도달한 시간은
1위-한달 29%
2위-2주 22%
3위-보름 21%
4위-3주 18%
5위-일주일 8%
12-1. 다음 항목중 인생에 가장 중요하게 추구하는 목표는 무엇인가
(돈,행복,건강)
1위 - 돈 78%
2위 - 행복 17%
3위- 건강 5%
13-1. 결혼후에 재산분할 관리는 어떻게 할 예정 (주관)
1위-집 공동 명의 35%
2위-통장 금액 공통 분배 21%
3위-아내가 전적으로 관리한다 18%
4위-남편에게 맡긴다. 5%
14-1. 신랑이 경차를 타고 좁은 다세대주택에 기거하자 했을때 싫은 이유는?
1위-남들의 시선이 싫어서 61%
2위-행복감이 낮아지는듯해서 19%
3위-챙피해서 8%
4위-보안.생활시설등 불편해서 5%
5위-상관없다 1%
15-1. 남성이 집.여성이 혼수를 해오는 현 결혼제도의 이유는 뭐라 생각
1위-조선시대때부터 그렇게 했으므로 (전통적 결혼관습)58%
2위-남자가 사회적으로 돈 벌기 유리하므로 20%
3위-여자는 사회적 약자이므로 10%
16-1. 이혼의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1위-부부간 성격차 26%
2위- 경제적인 문제 24%
3위 -남성의 권위적,가부장적 태도 11%
4위 - 속궁합 9%
5위- 대화단절 6%
성격차가 아니라 돈 문제겠지. 돈...
17-1.소개팅에 나온 남성이 외모는 최하였으나 외제차를 몰고 있단걸 알았다면
1위-호감도가 다시 증가한다. 35%
2위-갈등할것 같다.24%
3위-무조건 잡으려 노력할것 같다.13%
4위 -처음 이미지와 별반 차이없다.6%
q-1.본인(여성)의 현 직업은 무엇인가
1위-직장인 43%
2위-대학생 12%
3위-아르바이트4%
4위-무직 4%
5위- 사업 2%
q-2.본인(여성)의 나이는 얼마인가
1위-30~31세 25%
2위-32~33세 17%
3위-28~29세 15%
4위-34~35세 11%
5위-26~27세 10%
q-3.본인(여성)의 학력은 어떠한가
1위-4년제대졸 (인서울) 39%
2위-4년제대졸(지방) 11%
3위-2년제초대졸 10%
4위-고졸 7%
5위-석사졸 6%
6위-박사졸 3%
7위-그외 학사(방통.학은제.독학사) 2%
q-4.결혼에 대한 가치관 형성은 주로 어디서 피드백되나
1위-친구.지인,직장들과의 소통을 통해 38%
2위-대중매체(드라마).인터넷을 통해 23%
3위-부모님(모계위주)의 조언을 통해 19%
a-1.현 결혼제도처럼 남자가 여자에 비해 많은 비용을 대는것이 합리적이라 생각하는가
1위-매우 합리적이라 생각한다 61%
2위-적당한 수준이라고 생각한다 26%
3위-비합리적이다.남자가 부담이 될수있다 생각한다 2%
4위-매우 비합리적이며 바껴야한다고 느낀다 1%
남자들에게 집도 사오고 돈도 마련하라면서 그게 합리적이냐?
b-1. 결혼생활을 함에 있어 나는 어디까지 희생해야하는 존재인가
1위-시대가 변했으므로 최우선 가치를 나의 행복으로둔다 29%
2위-나와 자식의 연계가 가장 중요하다. 19%
3위-자식을 위해 희생하며 산다 3%
4위-남편에게 내조하며 자식을 위해 희생하며 산다 1%
c-1.결혼후 남편에게 받는 생활비론 얼마가 적당하다 느끼는가
1위-500만원 41%
2위-600만원 20%
3위-400만원 11%
4위-700만원 8%
5위-300만원 4%
정말 남자들 한달에 얼마 버는지 모르나? 30대 직장인 여자들이라면서 생각하는게 그정도면, 정말 미친것이라고 밖에 할 말이 없다.
c-3. 결혼후 가사가 기울어져 생활고에 시달린다면
1위-이혼후 장기적으로 새가정을 꾸린다 31%
2위-시댁에게 금전적 지원을 부탁한다 29%
3위-직업전선에 나서 생활고 타계를 위해 노력한다.17%
4위-이혼을 고려한다. 12%
c-4. 이혼에 대한 나의 생각은
1위-이혼은 언제든지 할수있고, 요즘 시대에 흠이 아니라 생각 36%
2위-어쩔수 없이 이혼은 할수 있지만 최대한 고려 18%
3위-새출발을 위한 시작선 11%
4위-내 인생에 절대 이혼은 없다 8%
b2- 성형을 한 횟수는
1위- 2회 35%
2위- 1회 20%
3위- 자연미인 19%
4위- 3회 11%
5위- 5회 9%
b3- 좋은 배우자를 만나기 위해 내가 하고 있는 노력은
1위- 성형 61%
2위-몸매관리 (요가,운동)11%
3위-좋은직장등 능력 업그레이드 3%
4위-학력업그레이드 2%
<-- 좋은 사람 만나기 위해 하는 노력이 겨우 성형 하고, 몸매관리냐??? 돈 1,2백만원에 가능한게 그게, 그게 노력이라니...
b4-요즘 가장 관심있는 항목은
1위-미용.성형 41%
2위-다이어트 몸매관리 29%
3위-드라마.TV.연예인 13%
4위- 남자 .이성 11%
4위-재태크 경제 1%
5위-능력.공부업그레이드 0.1%
n-1 소개팅시 남녀 데이트 비용의 적정선의 비율은
1위-남자가 전액 부담 65%
2위-남자 9 :1 여자 23%
3위-남자 8: 2 여자 8%
4위-남자 여자 반반 1%
남자가 전액을 부담해야 된다고? 남자는 돈이 아깝지 않나?
n-2 데이트 비용을 안내거나 적게내는 이유는
1위-남자가 알아서 다 내주기 때문 39%
2위-여성은 소개팅시 옷.헤어.구두등 준비 비용이 많기에 28%
3위-남자가 벌이가 더 많기 때문에 18%
4위-사귀는것도 아닌데 내 돈 내기 아까워서 15%
5위 -남녀 만남에서 남자가 돈내는것은 당연하기 때문에 9%
30대 직장인이고 세상물정을 안다는 여자들 사고방식이 이정도다. 그러니 20대 여자들은 어떻겠냐??? 지금껏 한국남자는 돈벌어 오는 개새끼였다. 남자는 인간이 아니라 여자를 위해 돈물어오는 노예, 개였던 것이다.
결론 : 대한민국 사내들 호구 맞다.
동남아 아가씨 데려와라. 연봉 5천만원이 뉘집 애 이름이며, 1억 모으기가 쉽냐? 국제결혼 해라.그편이 낫겠다.
연애 하고도 결혼에 골인 못하면 그 돈은 그냥 공짜로 날려버린 것이잖아...
2013년 6월 2일 일요일
야호기쁜 중력절 자살왕?
야호기쁜 중력절 자살왕?
에스프레소의 노무현 추모 메시지를, 어떻게 하면 이렇게 읽을 수 있을까?
일베충 장난인가 하고 봤더니 일베충 장난이 아니다.
노무현 추모해서 쓴 글을 좌빨 좀비들이 그렇게 해석한 것이다. 세로로 읽으면 야호기뿐중력절자살왕으로 볼 수 있는데 보면 첫번째 문장은 ' 이다. 그리고 중간중간 보면 알겠지만 야호기뿐중력절 로 보기에는 줄도, 문맥도 맞지 않는다.
그저 저희끼리 그렇게 읽고 괜히 죄없는 에스프레소한테 화풀이를 한 것이다.
얼마나 심성이 뒤틀리고 피해의식을 가졌으면... 괜히 죄없는 남의 추도사 조차 그렇게 비딱하게 해석되는 것인가?
인터넷 개티즌들의 망상 때문에 죄없는 업체만 본의 아니게 손해를 봤네.
에스프레소의 노무현 추모 메시지를, 어떻게 하면 이렇게 읽을 수 있을까?
일베충 장난인가 하고 봤더니 일베충 장난이 아니다.
노무현 추모해서 쓴 글을 좌빨 좀비들이 그렇게 해석한 것이다. 세로로 읽으면 야호기뿐중력절자살왕으로 볼 수 있는데 보면 첫번째 문장은 ' 이다. 그리고 중간중간 보면 알겠지만 야호기뿐중력절 로 보기에는 줄도, 문맥도 맞지 않는다.
그저 저희끼리 그렇게 읽고 괜히 죄없는 에스프레소한테 화풀이를 한 것이다.
얼마나 심성이 뒤틀리고 피해의식을 가졌으면... 괜히 죄없는 남의 추도사 조차 그렇게 비딱하게 해석되는 것인가?
인터넷 개티즌들의 망상 때문에 죄없는 업체만 본의 아니게 손해를 봤네.
2013년 5월 30일 목요일
5.18 없으면 대한민국이 없다고?
5.18 없으면 대한민국이 없다고?
5.18 없으면 대한민국이 없다고?
글쎄다. 광주폭동 없으면 대한민국이 없다??? 글쎄... 과연 그럴까?
아가리는 삐뚤어져도 말은 바로하랬다고, 5.18이 없었다면 NL, 민족해방파, 노빠들이 없었다 가 정답 아닌가? 5.18이 없었더라도 대한민국은 있을 것이다. 물론 전두환, 노태우 후계자들의 대한민국일 것이다.
5.18이 없었다면 NL, 민족해방파, 노빠들이 있을 수가 없다. 5.18이 없으면 김대중에 대한 98% 몰표 같은 짓거리가 존재할 수가 없다.
5.18 때문에 운동권 대다수가 NL 주사파가 된 것 아니던가??? 그리고 그들이 그대로 나이 쳐먹고 김대중 광신도, 노빠, 그리고 박빠가 된 것이고... 왜? 내말이 틀렸나?
5.18 없으면 대한민국이 없다고?
글쎄다. 광주폭동 없으면 대한민국이 없다??? 글쎄... 과연 그럴까?
아가리는 삐뚤어져도 말은 바로하랬다고, 5.18이 없었다면 NL, 민족해방파, 노빠들이 없었다 가 정답 아닌가? 5.18이 없었더라도 대한민국은 있을 것이다. 물론 전두환, 노태우 후계자들의 대한민국일 것이다.
5.18이 없었다면 NL, 민족해방파, 노빠들이 있을 수가 없다. 5.18이 없으면 김대중에 대한 98% 몰표 같은 짓거리가 존재할 수가 없다.
5.18 때문에 운동권 대다수가 NL 주사파가 된 것 아니던가??? 그리고 그들이 그대로 나이 쳐먹고 김대중 광신도, 노빠, 그리고 박빠가 된 것이고... 왜? 내말이 틀렸나?
홍준표가 일을 하긴 하는구나
홍준표가 일을 하긴 하는구나
귀족노조도 귀족노조이지만 의사보다 사무직이 더 많은 이상한 의료원. 간호사, 요양보호사보다 사무직이 더 많은 이상한 의료원.
그것이 과연 주민들의 건강을 위해서 존재하는 곳인지 심히 의심스러웠는데...
이번 기회에 다른 도의 다른 의료원들, 그리고 시나 군, 구에서 이런저런 빽과 줄로서 운영하는 각종 특혜기관들을 도려내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귀족노조도 귀족노조이지만 의사보다 사무직이 더 많은 이상한 의료원. 간호사, 요양보호사보다 사무직이 더 많은 이상한 의료원.
그것이 과연 주민들의 건강을 위해서 존재하는 곳인지 심히 의심스러웠는데...
이번 기회에 다른 도의 다른 의료원들, 그리고 시나 군, 구에서 이런저런 빽과 줄로서 운영하는 각종 특혜기관들을 도려내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2013년 5월 29일 수요일
진중권이 일베 폐쇄에 반대하는 참된 이유?
진중권이 일베 폐쇄에 반대하는 참된 이유?
칼날이 나한테로 올 수 있으니까...
전 좌파, 주사파, 진보, 민주당, 통진당, 시민단체, 페미들이 온통 총출동해서 일베를 죽이자고 벼르고 있다. 그런데 진중권 혼자서 반대한다. 왜일까? 진중권이 깨인 사람 or 의식있는 사람이라서? 아니다.
자기가 잘 알거든... 일베가 만약 폐쇄되고 일베충이 처벌받으면 그 다다음 타겟이나 네번째 뒤의 타겟은 바로 진중권 자신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진중권의 많고 많은 망발 중에 몇가지만 언급하자면
남상국, 안상영 죽었을 때 자살세 드립으로 고인 모독한 행위...
잘 알아보지도 않고 문근영 발언 사건 당시 지만원 박사를 조롱, 비방한 행위...
이 두 개만 해도 진중권은 바로 소송감이다. 일베게 폐쇄되거나 일베충이 처벌받을 경우, 남상국, 안상영 유족들이나 지만원 박사가 소송 걸면 된다. 그러나 그들은 소송을 걸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남상국, 안상영 유족들이 소송 걸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진중권은 까이게 되어 있다.
일베가 폐쇄된다면 그 다다음 대표적인 사냥감은 진중권 자신이 될 테니까.
전 좌파, 주사파, 여성계, 진보, 민주당, 통진당, 시민단체, 페미들이 총출동해서 일베 죽이기를 하고 있는데 진중권만 혼자 반대한단 말이다. 그럼 멋있을 것 같지???
진중권은 자기가 한 짓이 있으니 불안한 것 뿐이다.
이래도 진중권이 개념인인가? 진중권이 일베 옹호한다고 개념인이라고 착각하지 마라. 진중권이 그동안 한 말들만 해도 충분히 단죄가 가능하니까...
더구나 진중권은 지만원이 자기 고소한다고 표현의 자유도 보장하지 않는다고 뭐라 해놓고
http://www.mydaily.co.kr/new_yk/html/read.php?newsid=201305061001181118&ext=na
변희재가 누구 고소한다고 이렇게 말하더니 나중에 변희재를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143&aid=0002116582
하하하하하. 진중권...
일베가 폐쇄되고 처벌받으면, 저쪽 진영에서 진중권은 가장 꿀리는게 많은 몇 사람 중의 한 사람이 될 것이다.
야 그냥 일베 폐쇄해라! 광고 끊겨서 많이 타격이 클텐데... 이왕 광고줄 끊겨서 자금난으로 서서히 망해가느니 쿨하게 지금 문닫고, 강렬한 이미지를 남기면 된다.
ps : 오늘 또하나 알게 된 사실... 진중권아. 이건 토론 주제하고 상관없는 발언 아니냐???
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081119500004
http://www.nocutnews.co.kr/show.asp?idx=989680
http://www.nocutnews.co.kr/show.asp?idx=989670
지만원 박사 비판하는데 아들 드립은 왜 쳤어??? 어? 왜 그랬니? ㅋ
칼날이 나한테로 올 수 있으니까...
전 좌파, 주사파, 진보, 민주당, 통진당, 시민단체, 페미들이 온통 총출동해서 일베를 죽이자고 벼르고 있다. 그런데 진중권 혼자서 반대한다. 왜일까? 진중권이 깨인 사람 or 의식있는 사람이라서? 아니다.
자기가 잘 알거든... 일베가 만약 폐쇄되고 일베충이 처벌받으면 그 다다음 타겟이나 네번째 뒤의 타겟은 바로 진중권 자신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진중권의 많고 많은 망발 중에 몇가지만 언급하자면
남상국, 안상영 죽었을 때 자살세 드립으로 고인 모독한 행위...
잘 알아보지도 않고 문근영 발언 사건 당시 지만원 박사를 조롱, 비방한 행위...
이 두 개만 해도 진중권은 바로 소송감이다. 일베게 폐쇄되거나 일베충이 처벌받을 경우, 남상국, 안상영 유족들이나 지만원 박사가 소송 걸면 된다. 그러나 그들은 소송을 걸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남상국, 안상영 유족들이 소송 걸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진중권은 까이게 되어 있다.
일베가 폐쇄된다면 그 다다음 대표적인 사냥감은 진중권 자신이 될 테니까.
전 좌파, 주사파, 여성계, 진보, 민주당, 통진당, 시민단체, 페미들이 총출동해서 일베 죽이기를 하고 있는데 진중권만 혼자 반대한단 말이다. 그럼 멋있을 것 같지???
진중권은 자기가 한 짓이 있으니 불안한 것 뿐이다.
이래도 진중권이 개념인인가? 진중권이 일베 옹호한다고 개념인이라고 착각하지 마라. 진중권이 그동안 한 말들만 해도 충분히 단죄가 가능하니까...
더구나 진중권은 지만원이 자기 고소한다고 표현의 자유도 보장하지 않는다고 뭐라 해놓고
http://www.mydaily.co.kr/new_yk/html/read.php?newsid=201305061001181118&ext=na
변희재가 누구 고소한다고 이렇게 말하더니 나중에 변희재를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143&aid=0002116582
하하하하하. 진중권...
일베가 폐쇄되고 처벌받으면, 저쪽 진영에서 진중권은 가장 꿀리는게 많은 몇 사람 중의 한 사람이 될 것이다.
야 그냥 일베 폐쇄해라! 광고 끊겨서 많이 타격이 클텐데... 이왕 광고줄 끊겨서 자금난으로 서서히 망해가느니 쿨하게 지금 문닫고, 강렬한 이미지를 남기면 된다.
ps : 오늘 또하나 알게 된 사실... 진중권아. 이건 토론 주제하고 상관없는 발언 아니냐???
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081119500004
http://www.nocutnews.co.kr/show.asp?idx=989680
http://www.nocutnews.co.kr/show.asp?idx=989670
지만원 박사 비판하는데 아들 드립은 왜 쳤어??? 어? 왜 그랬니? ㅋ
일베의 택배표현이 과한 표현이라고?
일베의 택배표현이 과한 표현이라고?
일베를 폐쇄시키자는 여론이 확산됐고 공감대를 많이 얻고 있다. 일베 강제 폐쇄 여론에 찬성하는 놈들도 많더만... 과연 대한민국의 표현의 자유는 이렇게 죽는 것일까?
그래, 일베저장소의 표현 수위를 두고 말이 많은 것 같다. 일부 표현이 과격한 것은 충분히 공감한다. 그런데 도를 넘어섰다? 그런데 민주당과 통진당, 운동권, 좌파 폴리페서들이 이런 주장을 할 자격은 되나 모르겠다.







일베의 표현이 지나치다? 그렇다. 일부 과격한 표현이 존재했음은 인정한다. 그런데 일베가 도를 넘어섰다? 개소리다. 일베가 도를 넘어섰다는 민주당과 통진당, 운동권, 좌파 폴리페서들의 개소리에는 동의할 수가 없다.
일베 택배표현이 지나쳤다? 일베가 도를 넘어섰다? 그럼 이건 뭐냐???
박정희 마쯔모토 루머와 오카모토 미노루 루머를 퍼뜨린 문명자의 책 내가 본 박정희와 김대중... 이건 뭐냐?
박정희가 오카모토 미노루와 동일인이라는 설... 박정희의 대구사범 졸업앨범에는 행정실장으로 나온 6급 공무원이 오카모토 미노루다. 이건 어떻게 할까?
박정희가 1974년부터 1979년까지 여자 2백명을 상대하고 기자박치기를 했다는 루머... 그래서 그 여자 2백명이 누구냐고 하니까 한명도 이름을 못 댄 사건... 이건 뭐지? 그뿐이냐, 그때 그 사람들이라는 영화도 있지?
친일파와 무관한 한나라당 자체를 친일파 정당으로 색칠하고 마타도어 날린 게 누구? 그러면서 민주당 간부들의 아버지, 할아버지들의 경력이 화려했지?
남상국, 안상영, 장래찬 투신자살했을 때 자살세 걷자고 비웃은 놈이 누구지???
교수라는 인간이 수업 내용도 제대로 보지 않고 권위만 내세운 자들이 누구더라? 가장 대표적인 사례 하나는 오상방위 사건...
최진실 사채업자 루머 날조한 놈, 장채원 김지후 동성애자라고 협박 악플 메일 보내서 자살하게 한 놈, 안재환 불매운동 한 놈들 누구지?
모든 남자 = 잠재적 성범죄자 라는 루머를 날조해서 남자들의 명예를 훼손한 꼴페미들은 뭐지?
동아일보 기사에 달린 댓글 갖고 지만원 박사가 문근영 헐뜯었다고 허위사실로 마타도어 날린 게 누구지??? 애당초 문제를 유발한 것은 문근영이 5.18 유공자 후손이라며 역시 5.18 유공자 자손 답다고 추켜세운 YTN 여기자하고 MBC 여기자의 발언 아닌가?
어떤 새끼는 1990년대 아고라하고 진보누리인가 어디에 10월 26일 박정희 기일날 포르노 사진에 박정희 얼굴 합성해서 올리고 낄낄댄 것도 있었는데 그건 또 뭘까?
송명호가 쓴 시는 제목이 박가년 x지는 손에 달렸다지? 박가 처녀의 인과 응보 라는 시를 써서 언론에 발표했었지?
금성교과서 내용을 뉴라이트 내용이라 날조하고, 5.18 광주 유공자를 뉴라이트라고 주장하며 뉴라이트가 주장한 것처럼 허위사실 유포한 것은 누구?
개소리다. 민주당과 민노당, 운동권 네놈들이 무슨 자격으로 도를 넘어섰다, 인간을 말하나???
표현의 자유를 법으로 다스리려는 민주당, 통진당의 시대착오적 발상에 한숨만 나온다. 일베를 폐쇄하거나 처벌하려면 이 새끼들도 잡아다가 먼저 처단하던가. 아직 10년도 안 지났으니 공소시효는 충분하다.
네놈들이 한 만큼 되돌려받는 것인데 무슨 인간이 어떻고 저떻고를 따지나? 주제넘게...
일베 폐쇄와 일베충 처벌에 조건부 찬성한다. 저 놈들 아직 10년 안됐으니까, 만약 저놈들 다 갖다 처벌하는데 동의하면, 그때는 나도 조건부로 일베 강제 폐쇄, 일베충 처벌에 동의하마!
일베를 폐쇄시키자는 여론이 확산됐고 공감대를 많이 얻고 있다. 일베 강제 폐쇄 여론에 찬성하는 놈들도 많더만... 과연 대한민국의 표현의 자유는 이렇게 죽는 것일까?
그래, 일베저장소의 표현 수위를 두고 말이 많은 것 같다. 일부 표현이 과격한 것은 충분히 공감한다. 그런데 도를 넘어섰다? 그런데 민주당과 통진당, 운동권, 좌파 폴리페서들이 이런 주장을 할 자격은 되나 모르겠다.







일베의 표현이 지나치다? 그렇다. 일부 과격한 표현이 존재했음은 인정한다. 그런데 일베가 도를 넘어섰다? 개소리다. 일베가 도를 넘어섰다는 민주당과 통진당, 운동권, 좌파 폴리페서들의 개소리에는 동의할 수가 없다.
일베 택배표현이 지나쳤다? 일베가 도를 넘어섰다? 그럼 이건 뭐냐???
박정희 마쯔모토 루머와 오카모토 미노루 루머를 퍼뜨린 문명자의 책 내가 본 박정희와 김대중... 이건 뭐냐?
박정희가 오카모토 미노루와 동일인이라는 설... 박정희의 대구사범 졸업앨범에는 행정실장으로 나온 6급 공무원이 오카모토 미노루다. 이건 어떻게 할까?
박정희가 1974년부터 1979년까지 여자 2백명을 상대하고 기자박치기를 했다는 루머... 그래서 그 여자 2백명이 누구냐고 하니까 한명도 이름을 못 댄 사건... 이건 뭐지? 그뿐이냐, 그때 그 사람들이라는 영화도 있지?
친일파와 무관한 한나라당 자체를 친일파 정당으로 색칠하고 마타도어 날린 게 누구? 그러면서 민주당 간부들의 아버지, 할아버지들의 경력이 화려했지?
남상국, 안상영, 장래찬 투신자살했을 때 자살세 걷자고 비웃은 놈이 누구지???
교수라는 인간이 수업 내용도 제대로 보지 않고 권위만 내세운 자들이 누구더라? 가장 대표적인 사례 하나는 오상방위 사건...
최진실 사채업자 루머 날조한 놈, 장채원 김지후 동성애자라고 협박 악플 메일 보내서 자살하게 한 놈, 안재환 불매운동 한 놈들 누구지?
모든 남자 = 잠재적 성범죄자 라는 루머를 날조해서 남자들의 명예를 훼손한 꼴페미들은 뭐지?
동아일보 기사에 달린 댓글 갖고 지만원 박사가 문근영 헐뜯었다고 허위사실로 마타도어 날린 게 누구지??? 애당초 문제를 유발한 것은 문근영이 5.18 유공자 후손이라며 역시 5.18 유공자 자손 답다고 추켜세운 YTN 여기자하고 MBC 여기자의 발언 아닌가?
어떤 새끼는 1990년대 아고라하고 진보누리인가 어디에 10월 26일 박정희 기일날 포르노 사진에 박정희 얼굴 합성해서 올리고 낄낄댄 것도 있었는데 그건 또 뭘까?
송명호가 쓴 시는 제목이 박가년 x지는 손에 달렸다지? 박가 처녀의 인과 응보 라는 시를 써서 언론에 발표했었지?
금성교과서 내용을 뉴라이트 내용이라 날조하고, 5.18 광주 유공자를 뉴라이트라고 주장하며 뉴라이트가 주장한 것처럼 허위사실 유포한 것은 누구?
개소리다. 민주당과 민노당, 운동권 네놈들이 무슨 자격으로 도를 넘어섰다, 인간을 말하나???
표현의 자유를 법으로 다스리려는 민주당, 통진당의 시대착오적 발상에 한숨만 나온다. 일베를 폐쇄하거나 처벌하려면 이 새끼들도 잡아다가 먼저 처단하던가. 아직 10년도 안 지났으니 공소시효는 충분하다.
네놈들이 한 만큼 되돌려받는 것인데 무슨 인간이 어떻고 저떻고를 따지나? 주제넘게...
일베 폐쇄와 일베충 처벌에 조건부 찬성한다. 저 놈들 아직 10년 안됐으니까, 만약 저놈들 다 갖다 처벌하는데 동의하면, 그때는 나도 조건부로 일베 강제 폐쇄, 일베충 처벌에 동의하마!
2013년 5월 27일 월요일
민주당의 6.15 공동행사 거부 이유?
민주당의 6.15 공동행사 거부 이유?
5.18 기념 공동행사가 아니니까...
5.18 기념 공동행사도 아닌데 민주당이 신경쓸 이유가 없지. 도요타 제갈 윤 김 장 슨상님도 안 계시는 마당에... 만약 북한에서 5.18 공동행사를 제의했어도 민주당이 거부, 거절할 수 있었을까??? ㅋ
5.18 기념 공동행사가 아니니까...
5.18 기념 공동행사도 아닌데 민주당이 신경쓸 이유가 없지. 도요타 제갈 윤 김 장 슨상님도 안 계시는 마당에... 만약 북한에서 5.18 공동행사를 제의했어도 민주당이 거부, 거절할 수 있었을까??? ㅋ
2013년 5월 14일 화요일
연합뉴스 기사도 찌라시가 되어간다.
연합뉴스 기사도 찌라시가 되어간다.
그럼 그럼, 공기업에 남자 합격자 수가 더 많았다고? 그래서 강제 여성의무할당제 해달라고??? 이제는 연합뉴스 기자들까지도 선동을 한다.
http://media.daum.net/economic/newsview?newsid=20130514084807273
야. 멸치잡이 어선에는 여자들 거의 취직 안했다. 그점은 어떻게 생각하느냐?
군대도 남자들이 월등히 많은데, 이를 어떻게 하나? 경찰하고 소방관도 남자들이 너무 많잖아. 자! 이것도 어떻게좀 해봐...
왜 공기업만 물고 늘어지나? 꿀보직이라서???
아이디어 한번 기발하다. 여자들의 피해의식을 자극해서 또 남자몫도 여자몫도 아닌 자리를 강제로 빼앗아가겠다는 것이다. 이런 저질적인 선동으로 공기업 합격자 자리도 강제로 빼앗아가시게???
군 가산점 없애면 됐지 왜 여자들에게 강제로, 여자가 합격할수도 있고 남자가 합격할 수도 있는 자리를 강제로 빼앗아서 할당해주기를 요구하는가? 왜? 왜지??? 여자들은 손가락이 하나 없이 태어나나? 여자들은 태어나면서 눈이 하나 없이 태어나나?
멸치잡이 어선에는 남성이 여성보다 수십배는 많아 어떻게 하지?
군대도 남자들이 월등히 많은데, 이를 어떻게 하나?
경찰하고 소방관도 남자들이 수십배는 많아...
멸치잡이어선의 남자 수는 여자 수의 90배! 이 얼마나 차별적이냐? 선동하려면, 선동도 좀 먹혀들게끔 선동하던가 해라. 유치해...
그럼 그럼, 공기업에 남자 합격자 수가 더 많았다고? 그래서 강제 여성의무할당제 해달라고??? 이제는 연합뉴스 기자들까지도 선동을 한다.
http://media.daum.net/economic/newsview?newsid=20130514084807273
야. 멸치잡이 어선에는 여자들 거의 취직 안했다. 그점은 어떻게 생각하느냐?
군대도 남자들이 월등히 많은데, 이를 어떻게 하나? 경찰하고 소방관도 남자들이 너무 많잖아. 자! 이것도 어떻게좀 해봐...
왜 공기업만 물고 늘어지나? 꿀보직이라서???
아이디어 한번 기발하다. 여자들의 피해의식을 자극해서 또 남자몫도 여자몫도 아닌 자리를 강제로 빼앗아가겠다는 것이다. 이런 저질적인 선동으로 공기업 합격자 자리도 강제로 빼앗아가시게???
군 가산점 없애면 됐지 왜 여자들에게 강제로, 여자가 합격할수도 있고 남자가 합격할 수도 있는 자리를 강제로 빼앗아서 할당해주기를 요구하는가? 왜? 왜지??? 여자들은 손가락이 하나 없이 태어나나? 여자들은 태어나면서 눈이 하나 없이 태어나나?
멸치잡이 어선에는 남성이 여성보다 수십배는 많아 어떻게 하지?
군대도 남자들이 월등히 많은데, 이를 어떻게 하나?
경찰하고 소방관도 남자들이 수십배는 많아...
멸치잡이어선의 남자 수는 여자 수의 90배! 이 얼마나 차별적이냐? 선동하려면, 선동도 좀 먹혀들게끔 선동하던가 해라. 유치해...
5.18 광주폭동 때 침투한 인민군의 증언
2013년 5월 3일 금요일
광주폭동 가산점은 왜 페미들이 안 걸고 넘어지냐?
광주폭동 가산점은 왜 페미들이 안 걸고 넘어지냐?
5.18 광주 가산점이 10%나 된다. 광주폭도 가산점 수혜자는 그 숫자도 압도적이고 점수도 10점이라 7,9급 휩쓰는데 왜 우리 꼴페미들은 이것에 대해선 항의 안 하냐?
군 가산점! 꼴랑 3점이던 군 가산점은 쳐죽일듯이 달려들더니 10점인 광주폭동 가산점엔 아갈묵념인 페미니스트들의 저의가 궁금하다.
게다가 군 가산점은 이거 믿고 공무원 뛰어드는 남자들 극소수였지만 광주폭도 가산점자는 99% 공무원 시험 친다. 여러 번 친다.
공무원 시험 70점 받아도 광주폭동 가산점 있으면 77점이다. 여기에 정보처리기사 자격증 하나만 있어봐라. 어떻게 되나...
5.18 광주 가산점이 10%나 된다. 광주폭도 가산점 수혜자는 그 숫자도 압도적이고 점수도 10점이라 7,9급 휩쓰는데 왜 우리 꼴페미들은 이것에 대해선 항의 안 하냐?
군 가산점! 꼴랑 3점이던 군 가산점은 쳐죽일듯이 달려들더니 10점인 광주폭동 가산점엔 아갈묵념인 페미니스트들의 저의가 궁금하다.
게다가 군 가산점은 이거 믿고 공무원 뛰어드는 남자들 극소수였지만 광주폭도 가산점자는 99% 공무원 시험 친다. 여러 번 친다.
공무원 시험 70점 받아도 광주폭동 가산점 있으면 77점이다. 여기에 정보처리기사 자격증 하나만 있어봐라. 어떻게 되나...
전 국민의 5.18 노예화 광주폭동 유공자 공무원 가산점10점
전 국민의 광주폭동 노예화~~~~
광주518 유공자의 공무원 가산점10점
오씨팔 광주폭동 유공자, 공무원 가산점이 무려 10점.(누구도 넘을 수 없는..)
목숨바쳐 나라구한 6.25 상이용사 연금이 고작 월 12만원(그나마 최근 오른 금액)인데 오씨팔 유공자는 인당 보상금 2~3억에 국가고시 가산점 10점, 공사 입사때도 가산점, 대학입시때도 가산점...
전국 공무원의 전라도화, 전 국민의 전라도 노예화~~~~
오씨팔 광주폭동 유공자, 공무원 가산점이 무려 10점.(누구도 넘을 수 없는..)
목숨바쳐 나라구한 6.25 상이용사 연금이 고작 월 12만원(그나마 최근 오른 금액)인데 오씨팔 유공자는 인당 보상금 2~3억에 국가고시 가산점 10점, 공사 입사때도 가산점, 대학입시때도 가산점...
전국 공무원의 전라도화, 전 국민의 전라도 노예화~~~~
공무원 100만 시대라.... 국민 20명당 전라도 공무원 하나씩 먹여살리고 있구만~
![]() |
| 과천정부청사에 근무하는 공무원들 모습(자료사진) |
올해 복지ㆍ소방 분야 공무원 증원 추진
공무원 연령ㆍ재직 연수 더 높아져
(서울=연합뉴스) 최윤정 기자 = 공무원 숫자가 크게 늘어나며 100만명에 육박한 것으로 나타났다.
행정안전부는 지난해 말 기준 국가와 지방 공무원 현원이 98만7천754명으로 5년만에 7만2천533명(7.9%) 늘어났다고 7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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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국민의 전라도 노예화~~~~
광주518 유공자의 공무원 가산점10점
오씨팔 광주폭동 유공자, 공무원 가산점이 무려 10점.(누구도 넘을 수 없는..)
목숨바쳐 나라구한 6.25 상이용사 연금이 고작 월 12만원(그나마 최근 오른 금액)인데 오씨팔 유공자는 인당 보상금 2~3억에 국가고시 가산점 10점, 공사 입사때도 가산점, 대학입시때도 가산점...
전국 공무원의 전라도화
전 국민의 광주폭동 노예화~~~~
공무원 100만 시대라.... 국민 20명당 전라도 공무원 하나씩 먹여살리고 있구만~
오씨팔 광주폭동 유공자, 공무원 가산점이 무려 10점.(누구도 넘을 수 없는..)
목숨바쳐 나라구한 6.25 상이용사 연금이 고작 월 12만원(그나마 최근 오른 금액)인데 오씨팔 유공자는 인당 보상금 2~3억에 국가고시 가산점 10점, 공사 입사때도 가산점, 대학입시때도 가산점...
전국 공무원의 전라도화
전 국민의 광주폭동 노예화~~~~
공무원 100만 시대라.... 국민 20명당 전라도 공무원 하나씩 먹여살리고 있구만~
하급 공무원중에 전라도애들이 많은 게 점점 이해가 된다!
2013년 4월 30일 화요일
박정희 대통령의 업적 조명 - 부국대통령의 주요 업적 30가지 (펌)
박정희 대통령의 업적 조명 - 부국대통령의 주요 업적 30가지

우리나라 부국 대통령으로 산업화를 통해 '한강의 기적'이라는 유례가 없는 경제발전을 이룩한 박정희 대통령

박정희 대통령이 1974년 5월 20일에 적은 휘호인 ‘내一生 祖國과 民族을 爲하여’

1997년 10월 6일 경향신문이 '전문가 30인이 본 역대대통령 리더십'에 대해 총 전문가 30인이 평가한 목록을 차트로 만들어 썼던 기사의 내용 중
"박정희 대통령은 인물의 발탁과 운용에 두루 능했던 인사전략가로 평가됐다. 군부를 배경으로 한 직계에게 정권안보를 맡기고 전문영역에서는 기술관료들을 대거 등용한 점이 좋은 점수를 받은 이유다. 민정이양시 이른바 '방탄내각'과 경제개발 시기의 '돌격내각'이 대표적 성공사례로 꼽혔다. ······ 박정희 대통령은 집권 초반 당근과 채찍의 완급을 조절하여 권력을 창조적으로 절약한 것으로 평가됐다. 63년 상당수 군부세력의 반대를 무릎쓰고 5대 대선에 출마, 민선 대통령이 됨으로써 법적인 정통성을 추인받은 것이 대표적인 사례로 지적됐다. ······ 역대 대통령 가운데 이승만, 박정희 두 대통령의 지적수준은 상대적으로 높았던 것으로 평가됐다. 특히 박 대통령의 경우 지적 능력을 배경으로 주요 국정현안을 직접 관장함으로써 효율성을 극대화시킨 사례로 꼽혔다. 그는 재임당시 각 수석비서관들에게 교수, 전문관료, 언론인 등으로 구성된 전문가 모임과 토론을 하게 한 뒤 취합된 결론을 습득, 활용했다." - 1997년 10월 6일 경향신문이 '전문가 30인이 본 역대대통령 리더십'에 대해 인천대 김학준 총장, 명지대 송재 총장, 서울대 명예교수인 김홍우(정치학), 최명(정치학), 김광웅(정치학),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인 노화준(행정학), 김준기(행정학), 서울대 법대 교수인 최대도(법학), 이상면(법학), 연세대 교수인 최평길(행정학), 김학은(경제학) 유석춘(사회학), 연세대 명예교수인 송복(정치사회학), 고려대 명예교수인 최장집(정치학), 최상용(인문학), 고려대 교수인 서진영(정치학), 김병국(정치학), 김호진(행정학), 서강대 교수인 손호철(정치학), 이화여대 교수인 진덕규(정치학), 임현백(정치학), 숙명여대 교수인 이남영(정치학), 한국외대 교수인 이정희(정치학), 한양대 행정대학원 교수인 공성진(정치학), 경희대 교수인 신정현(정치학), 전북대 교수인 정재길(법학), 전남대 교수인 김광수(정치학), 경북대 교수인 윤용희(정치학), 부산대 교수인 정용하(정치학), 전 정무장관인 이종률, 총 전문가 30인이 평가한 목록을 차트로 만들어 썼던 기사의 내용 중
박정희 대통령과 관련된 중요한 업적 30가지를 집필한 이유
박정희 대통령과 관련된 주요 업적 30가지를 집필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기본적으로 필자는 역사학도로서 중도이지만 정치적으로는 보수우파에 더 가까운 사람이다. 따라서 보수세력의 대표적인 대통령인 박정희 대통령과 이승만 대통령 중에서 박정희 대통령이 주로 어떤 업적을 남겼는가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단편적으로 알고는 있지만, 그가 구체적으로 어떤 업적을 행했고, 또 그 영향이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는가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 많지 않기에 이렇게 나서게 되었다.
최근에 좌파적 역사단체로 알려진 민족문제연구소에서 '백년전쟁'이라는 동영상의 타이틀로 대한민국의 부국을 이끈 박정희 대통령에 대해 명확히 확인되지 않은 사실도 사실로 둔갑 및 엉뚱한 해석을 하여 십자포화를 쏟아붓고 있는 것을 보고 기본적인 지식과 이해가 없는 대중들이 자칫하면 잘못된 사고를 할 수도 있다고 판단하여 이렇게 글을 쓰게 되었다. 또한 이미 앞서 건국대통령 이승만의 주요 업적 30가지를 여러 자료들을 토대로 집필한 바가 있기 때문에 박정희 대통령 역시 이어서 집필하게 되었다.
따라서 부족하지만 최근에 한국현대사에 관심을 가지게 된 대한민국의 역사학도이자 20대의 청년 보수우파로서, 그 흐름에 맞춰 역사학의 인식을 전환하여 가장 많은 대중들이 찾는 인터넷을 통해 박정희 대통령에 대해 잘못된 선입견에 빠진 사람들의 인식을 바로잡고자 시간을 내어 집필하게 되었다. 본 글은 박정희 대통령의 주요 업적 30가지로 구성되었으며, 보다 정확한 출처를 통해 서술했음을 앞서 밝히는 바이다.
1. 대한민국 최초의 주민등록증 제도 실시

- 1968년 11월 21일에 18세 이상의 모든 국민에게 주민등록증이 발급되었다. 주민등록증 제도가 실시된 계기는 1968년 1월 21일에 있었던 1.21사태, 즉 김신조를 필두로 한 북한의 남파공작원들이 청와대까지 습격해 들어오자 그 뒤부터 실시하게 되었다. 1월 21일 북한 특수부대인 124군부대 소속 무장게릴라 31명이 청와대를 습격을 시도 하는 일이 있었다.
당시 한국군 복장에 수류탄 및 기관단총으로 무장한 이들은 휴전선을 넘어 서울 잠입에 성공하지만 자하문에서 경찰의 불심검문에 걸린다. 이 사건을 겪은 뒤 정부는 전국민에게 단일 형태의 신분증을 나눠주어 필요할 때 신원을 정확히 확인하려는 취지로 만들었다. 주민의 동태를 파악하고, 남파 간첩 등의 불온분자 색출이 용이하도록 하기 위한 차원에서 발급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물론, 그 이전에도 신분증 제도는 존재했었지만 체계적으로 정리를 하여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온 주민등록증 제도의 전통은 박정희 대통령의 시대 때부터 시작된 것이다. 그 이후 이전에 있었던 시민증과 도민증은 폐지되었다. 주민등록증의 첫 발급자는 박정희 대통령이었다. 1968년 10월 말부터 전국민에게 12자리의 주민등록번호를 부여했고, 11월 21일부터 본격적으로 만들어주었다.
2. 친노동계급적인 서민을 위한 최초의 의료보험제도 실시

- 우리는 흔히 박정희 대통령 시대를 노동자들의 인권을 억압한 독재적인 시대로만 기억하고 있다. 하지만 오히려 역설적으로 의료보험, 산재보험과 생활보호 등 소위 친노동계급적 성격을 가진 제도들이 노동운동에 대해 억압적이던 박정희 대통령 시대 때 도입되었다.
특히 1976년 의료보험법 개정을 통해 도입된 강제가입방식의 의료보험제도는 당시 재정적 부담을 우려한 경제기획원 등 정부 내 핵심 부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관철되었는데, 여기에는 박정희 대통령의 정치적 결단이 크게 작용했다. 즉, 1972년 유신개헌 이후 학생, 종교인,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반체제 운동이 격화되면서 사회 안정 대책이 시급히 요청되었던 것이다.
동시에 1973년 북한이 세계보건기구(WHO)에 가입한 이후 국제 사회에서 자국의 무상 의료 시스템을 선전하자 당시에 북한과 경쟁을 벌이던 박정희 대통령이 이에 자극을 받아 의료보험제도를 도입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비슷한 시기에 국민연금은 경제 상황의 악화로 무기한 연기된 대신 의료보험제도가 실시된 배경에는 일정한 기여금 납입 기간이 필요한 연금과 달리 시행 즉시 국민들에게 혜택이 주어졌기 때문이다.
미국은 사(私)보험에 의존하고 있어 보험혜택을 못 받는 이들이 4700만명에 이른다. 맹장수술비가 1만 5000달러나 되고, 안경 맞추려면 안과 시력검사비로만 60달러를 내야 한다. 미국 시벨리우스 보건장관은 한국의 의료보험을 배우고 싶다고 할 정도로 미국은 우리나라의 의료보험제도를 실시하고 싶어한다. 번번이 의료보험 개혁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3. 친환경적인 그린벨트 설치로 산림을 보호하여 세계 4대 조림성공국의 반열에 오름

- 1971년 7월 30일, 건설부 고시로 서울 외곽지역에 그린벨트(개발제한구역)가 처음 지정됐다. 서울 중심부에서 반경 15㎞를 따라 폭 2∼10㎞ 지역의 서울, 경기 땅 454.2㎢(첫 발표 때는 467㎢)의 개발을 묶는다는 내용이었다. 도시의 무분별한 확산과 토지 투기 억제가 목적이었다. 그린벨트는 박정희정권 당시인 1971년부터 시행되어 도시의 무분별한 확장을 막고 난개발을 방지하는 중요한 방어책이 되어 왔다.
그린벨트에 거주하는 주민들은 재산권 행사에 제약을 받게 되었지만, 그들의 희생으로 전 국민이 수혜를 얻는다. 정부는 당시 이를 공식 발표하지 않고 슬그머니 관보에만 실어 밀실행정을 행했다. 불만이 많았던 만큼 박정희 대통령이 직접 챙겼다. 관리근거가 도시계획법 시행규칙에 불과한데도 이를 개정할 때는 반드시 사전 재가를 받도록 해 결과적으로 군사정권 정책 가운데 가장 돋보이는 성공사례로 남았다.
건설부 고시 447호로 발표된 도시계획법 시행규칙에 의거해서울 종로구 세종로 사거리에서 반경 15km 라인을 따라 폭 2~10km 구간이 '영구 녹지대’로 지정되었다. 문제는 그린벨트로 지정된 지역의 80%가 사유지였다는 점이었다. 이후 그린벨트 지역은 모두 8차례에 걸쳐 서울을 비롯 부산, 대구, 광주 등에 이어 1977년 4월 18일 마지막으로 지정된 전남 여수시 일대까지 합쳐 전국적으로 총 5,379㎢가 그린벨트로 묶였다.
전 국토의 5.4%나 되는 엄청난 땅이었다. 심지어 그린벨트 내 군부대 초소의 기왓장 몇 개를 바꾸는 것까지 건설부의 사전허락을 받도록 했다. 이 때문에 그린벨트는 박 대통령 생존시 단 한 번의 구역변경 없이 철저하게 그리고 강압적으로 관리되었다. 그린벨트를 잘못 관리한 공무원은 가차 없이 징계를 받았다. 1972년부터 1979년까지 무려 2,526명의 공직자가 관리부실로 파면, 감봉, 견책, 직위 해제 등의 징계를 받았다.
또한 그린벨트임을 알리는 푯말을 세우고, 경비행기로 항공사진을 주기적으로 촬영하여 과거의 사진과 비교, 무허가로 들어서는 건물이나 용도가 변경된 토지를 적발하여 원상 복귀시키기까지 했다. 이런 노력이 있어 그린벨트는 오늘날 '세계적으로 성공한 자연환경보전 사례의 하나'로 꼽히고 있고 박정희 대통령은 '후세에 찬란한 자연유산을 물려준 지도자'로 세계로부터 극찬을 받고 있다.
4. 학원-과외 전면금지 조치를 통해 계층의 대물림 현상을 완화하여 교육의 평등을 실현

- 보건사회연구원 여유진, 김문길 연구위원과 장수명(교원대), 한치록(고려대) 교수가 공동 발간한 '계층구조 및 사회이동성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상위 직종을 가진 아버지를 둔 아들이 역시 상위직종을 가진 확률은 53%였다. 반면 하위 직종을 가진 아버지를 둔 아들이 상위직종을 가진 확률은 29%였다.
부자(父子)의 직업정보가 있는 한국노동패널 6,466명을 분석한 결과 상위직종은 전문가ㆍ30인 이상 고용주ㆍ준전문가ㆍ공무원ㆍ중간관리자ㆍ화이트칼라(사무원)로 분류했고, 하위 직종은 영세자영업자ㆍ농부ㆍ숙련근로자ㆍ미숙련근로자ㆍ농업근로자로 분류해 직종을 이분화했다.
이런 계층의 대물림 현상은 과외금지 기간에 중ㆍ고교를 다닌 세대(1961~1985년생)에서 대폭 줄어들었다. 과외허용 세대의 경우 상층 출신과 하층 출신이 상층으로 귀착한 확률은 각각 41.9%, 17.9%로 그 차이가 23.9%포인트나 된 반면, 과외금지 세대는 각각 58.3%, 41.7%로 그 차이가 16.6%포인트에 불과했다.
부자(父子)의 직업정보가 있는 한국노동패널 6,466명을 분석한 결과 상위직종은 전문가ㆍ30인 이상 고용주ㆍ준전문가ㆍ공무원ㆍ중간관리자ㆍ화이트칼라(사무원)로 분류했고, 하위 직종은 영세자영업자ㆍ농부ㆍ숙련근로자ㆍ미숙련근로자ㆍ농업근로자로 분류해 직종을 이분화했다.
이런 계층의 대물림 현상은 과외금지 기간에 중ㆍ고교를 다닌 세대(1961~1985년생)에서 대폭 줄어들었다. 과외허용 세대의 경우 상층 출신과 하층 출신이 상층으로 귀착한 확률은 각각 41.9%, 17.9%로 그 차이가 23.9%포인트나 된 반면, 과외금지 세대는 각각 58.3%, 41.7%로 그 차이가 16.6%포인트에 불과했다.
즉 과외금지 세대는 과외허용 세대보다 7.3%포인트 만큼 더 계층간 이동이 활발했다. 과외금지 세대에 상층으로 올라선 비율이 전반적으로 높은 이유는 이 시기에 화이트칼라 직종이 늘어났기 때문이지만, 하층 출신이 상대적으로 더 많이 상층으로 올라간 것은 과외금지로 교육기회의 소득의존도가 낮아진 결과라는 뜻이다.
연령대별로 따지면 1976~80년생의 계층간 이동이 가장 활발했다. 하층 아버지를 뒀을 때 아들이 상층이 된 비율보다 상층 아버지를 뒀을 때 아들이 상층이 된 비율(오즈비ㆍodds ratio)이 1.66배 높았을 뿐이다. 1971~85년생은 줄곧 1점대 배율을 유지해 계층간 이동이 활발했지만, 과외금지가 풀린 1986년생 이후로는 다시 2.44배로 높아졌다.
연령대별로 따지면 1976~80년생의 계층간 이동이 가장 활발했다. 하층 아버지를 뒀을 때 아들이 상층이 된 비율보다 상층 아버지를 뒀을 때 아들이 상층이 된 비율(오즈비ㆍodds ratio)이 1.66배 높았을 뿐이다. 1971~85년생은 줄곧 1점대 배율을 유지해 계층간 이동이 활발했지만, 과외금지가 풀린 1986년생 이후로는 다시 2.44배로 높아졌다.
5. 1979년에 88 올림픽 유치를 위한 계획을 수립 및 구성

- 대부분의 사람들은 88 올림픽 유치가 전두환 대통령에 의해 시행된 것으로 알고 있지만, 그것은 잘못된 사실이다. 사실 88 올림픽은 이미 박정희 대통령이 1977년부터 준비 작업을 해왔던 것이었다. 박정희 정부는 1979년 10월에 올림픽 유치계획을 발표한다. 그런데 그 뒤에 한 달도 되지 않아 박정희 대통령은 서거했다. 그럼에도 그로부터 9년 후 서울올림픽은 성공적으로 개최되어 경제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하며 막대한 경제적 이익을 주었다.
특히나 주목할 것은 이 올림픽 유치를 위해 IOC헌장에 따라 인종 및 종교와 정치상의 이유를 불문하고 전체 IOC 회원국 선수와 임원들에게 자유입국을 허용, 모든 선수들이 아무런 제한이나 차별없이 참가할 수있도록 보장할 것이며 경기종목도 빠짐없이 모두 실시하게 될 것이라고 선언한 것에 있겠다. 즉, 소련과 중공은 물론 북한 등 미수교공산권에 대해서도 입국을 허용한다는 말이었다.
6. 미국 브로드웨이에 인류를 위해 큰 공헌을 한 외국인으로서 환영을 받는 카퍼레이드를 행함

- 1965년 5월 19일, 뉴욕시가 주최한 다운타운 브로드웨이 일대에서 하는 티커테이프 퍼레이드에 박정희 대통령이 참석했다. 이 퍼레이드는 일명 '영웅행진'이라고 불리우는 퍼레이드로 역사적으로 인류를 위해 큰 공헌을 한 인물들을 위해 베풀어지는 영광의 카퍼레이드였다. 이 흔적은 지금도 미국의 브로드웨이 길거리에 남아있는데, 박정희 대통령의 퍼레이드 흔적을 바닥에 문구와 함께 석판으로 새겨놓았다.
아이젠하워 대통령부터 시작해서 맥아더 원수, 드골의 프랑스 대통령을 비롯해 달착륙 우주인들이 이 퍼레이드의 주인공이 되었는데, 한인으로서 이 뉴욕시 영웅행진의 영광을 누린 사람이 바로 박정희 대통령이었다. 첫 번째는 이승만 대통령이었는데, 박정희 대통령은 2번째 한국인으로서 영웅행진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7. 홍수와 가뭄, 환경을 대비해서 4대강 다목적댐 준공

- 박정희 대통령은 4대강 유역 개발사업을 실시했는데, 홍수와 한해(旱害)를 겪으면서, 유사 이래 계속된 이와 같은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한강과 낙동강, 금강, 영산강과 같은 큰 강에 댐을 만들고 작은 강에는 보(洑)를 지어 집중 호우 때에는 물을 가둬 수해를 줄이고 갈수기 때에는 물을 풀어야 한다고 봤다.
어떻게 보면 이명박 대통령이 시행했던 4대강 살리기 사업의 시발점은 박정희 대통령의 4대강 유역 개발사업과 통한다고 볼 수 있다. 박정희 대통령의 4대강 살리기 사업은 지방을 살릴 수 있는 정책이었는데, 당시에는 이명박 대통령 때처럼 반발하는 국민들보다 오히려 반기는 국민들이 더 많았다.
물을 다스려 국민이 살기 좋게 하는 것이 위민(爲民)정치의 시작이라고 봤기 때문이다. 또 지방에 사는 처녀들도 도회지 처녀들처럼 맑은 물이 흐르는 하천변에서 데이트를 하고 물놀이를 할 수 있어야 하고, 농촌지역의 학생들도 도시 어린이와 똑같이 뱃놀이를 하고 안전한 수영장에서 수영을 할 수 있는, 모든 국민이 잘사는 복지국가를 만들고자 했다.
물론, 박정희 대통령의 4대강 유역 개발사업의 중점적인 이유는 계절과 날씨에 따라 홍수와 가뭄에 시달리던 국민들의 고통과 피해를 줄여주고자 했던 것이었다. 이렇듯 홍수와 가뭄, 환경을 대비해서 4대강 다목적댐을 준공했던 것이다. 예컨대 1972년 11월 '동양 최대의 사력(沙礫)댐'으로 소양강댐이 선전되었다.
소양강댐은 1967년 4월 15일 착공되어 1973년 10월 15일 완공되었는데, 이 소양강댐은 경부고속도로, 서울지하철 1호선과 함께 박정희 대통령 시대의 3대 국책사업으로 꼽혔다. 이 사업을 맡은 정주영 회장은 비용을 3분의 1로 낮추면서도 훨씬 튼튼한 사력식 공법을 제안하여 실행에 옮겼다. 소양강댐 이외에도 안동댐, 대청댐 등도 만들어졌다.
8. 제주도의 명물 감귤사업을 조성하고 도로, 항만 등 국제적인 관광지로서의 입지를 구축

- 현재 제주도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관광지임과 동시에 제주도의 특산물로 대표적인 명물은 바로 감귤이다. 우리나라의 여느 지역들과는 달리, 제주도의 귤은 한라봉이라고 매우 크면서도 맛이 일품이다. 이런 제주도의 감귤사업과 관광지 조성은 언제부터 시작된 것일까? 바로 197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제주도 정책은 한마디로 무에서 유를 창조한 것과 같다.
외국인 상대관관산업이 수출보다 외화가득률이 높다는 것을 깨달은 박정희 대통령은 1972년에 제주도에 들려 외국인을 상대로 한 국제 관광지로의 개발할 결심을 하고, 청와대비서실에 제주도관광종합개발 계획의 입안을 지시했다. 그리고는 국내 신혼여행지에 머물러 있던 제주도에 1천억 원의 투자를 지시한다. 그 뒤에도 1976년에 5백억 원을 투자하였고, 80만 평의 중문관광단지가 들어섰다.
이외에도 5·16도로 개설, 어승생 수원지 건설 등 제주발전에 초석을 다졌다. 실제로 박정희 대통령과 제주도의 인연이 깊다. 박정희 대통령은 임기시절 제주도관광종합개발계획을 입안했고, 이를 토대로 서귀포시에 중문관광단지가 들어섰다. 또한 먹는 물이 부족했던 제주에 어승생 수원지를 만들어 '수돗물 혁명'을 불러일으켰다. 이러한 계획들은 1961년 9월 박정희가 최고회의 의장으로 있을 때, 초도순시차 처음으로 제주도를 방문하였을 때 계획되었다.
일정을 연장해가면서 제주도의 실정을 샅샅이 살펴본 후 미개발 자연자원과 민속 등을 자원으로 한 관광개발, 광활한 초원을 활용한 축산, 그리고 따뜻한 기후에 적합한 감귤재배를 진흥시켜 제주도를 개발하고 제주도민의 소득수준을 전국 시 도의 중위권 수준으로 끌어올릴 것을 결심하였기 때문에 이루어졌다.
또한 이어 박정희 의장은 제주북초등학교에서 가진 시국강연회에서 가장 시급한 해상교통의 개선책으로 악천후하에서도 제주해협을 쉽사리 드나들 수 있는 대형 여객선의 필요성을 강조한 후 3만여 명의 도민들에게 제주-부산, 제주-목포 간 대형여객선 투입을 약속하고 제주개발계획을 천명했다.
서울로 돌아오자 마자 내린 박의장의 지시에 따라 조달청은 제주항로에 대형 여객선을 건조, 투입시키기 위해 이를 국제입찰에 붙였다. 입찰 결과 일본의 조선소가 낙찰되고 63년 10월 12일 역사적인 취항을 하게 되었다. 이 배가 바로 제주-부산 간에 취항했던 890톤급의 도라지호이다. 이보다 두 달 앞서 정부는 국고보조로 국내에서 건조된 514톤급의 가야호를 제주-목포 간에 투입, 운항시켰다.
제주와 부산 그리고 목포를 잇는 대형 여객선 취항과 더불어 제주의 관광발전을 위한 획기적인 기반조성사업의 하나는 62년에 기공해서 63년 10월 11일 개통된 제주-서귀포 간의 제1횡단도로(5.16 도로)의 건설이었다. 이 5.16도로는 제주도의 경제발전과 관광개발의 촉진제 역할을 했을 뿐 아니라 4시간 30분이나 걸리던 제주-서귀포 간 자동차 운행시간을 1시간으로 단축시켜 제주도를 1일 생활권으로 만들었다.
해상운송에 있어서는 77년 4월, 3천 톤급의 카페리 1호가 취항했다. 두 달 뒤인 같은 해 6월 3천 톤급 카페리 2호가 같은 노선에 취항해 바야흐로 여객선의 대형화, 수송의 대량화, 여객의 대중화 시대가 열렸다. 제주항의 건설은 1962년에 시작된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 67년부터의 제2차 5개년계획 그리고 72년부터 시작된 제3차 5개년계획에 지속적으로 책정되어 꾸준히 추진되고 있었다.
육상교통과 수송을 위한 도로건설에 있어서는 5.16도로(제1횡단도로) 이외에도 일주도로 중산간도로 및 1,100도로 등 총 4개 국도가 박대통령의 지시로 건설되고 재임 중에 개통되어 전국 15개 시 도 중에서 교통망이 가장 잘 발달된 지방자치단체가 되었다. 제주도의 관광지 조성은 바로 박정희 대통령에 의해 시작된 것이었다.
1964년 2월 연두순시차 제주도에 들린 박대통령은 제주도는 농업여건이 타 지방과 다른 만큼 전국 공통사업인 식량증산은 염두에 두지 말고 수익성이 높은 감귤을 적극적으로 장려하라는 특별지시를 내렸다. 이 특별지시에 따라 1965년부터 감귤 식재붐이 일기 시작하였으며 1968년부터 제주도는 감귤재배를 농어민소득증대사업으로 책정하여 장기저리자금으로 감귤과수원 조성자금을 지원하게 됨에 따라 1969년부터 획기적인 증식이 이루어졌다.
그 당시 우리 나라 과수 중 재배면적이 5천ha를 상회하는 5대 과수는 사과, 복숭아, 배, 포도, 감 등이었는데 감귤이 재배면적에 있어 사과 다음인 2위로 껑충 뛰었으며 1975년부터는 생산량에 있어서도 2위를 차지하게 되었다. 감귤재배 덕택에 1995년도 농가당 소득은 전국 9개 도 가운데 1위인 경기도보다 5만 5천원이 적은 2,721만 5천원으로 2위였고 농업소득만을 보면 전국 1위였다.
즉, 이 제주도 경제의 밑바탕이 된 감귤산업은 박정희 대통령이 일본에서 감귤나무를 들여오라고 명령을 하면서 시작된 것이다. 그 결과, 1978년에 드디어 제주도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관광지로 조성이 되면서 관광객 100만 명이 돌파했다. 그리고 그 명맥은 지금까지도 계속 유지가 되고 있다. 그 덕인지 제주도에는 50~60대 이상의 장년층에서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엄청나다.
9. 전국 일일생활권이 가능해진 사회, 경제 발전의 획기적인 계기가 된 고속도로 건설 프로젝트

- 이미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모두가 안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알려진 박정희 대통령의 대표적인 프로젝트인 고속도로 건설계획. 1970년 7월 7일, 박정희 대통령에 의해 경부고속도로가 개통되었다. 이 사업은 '단군 이래 최대의 토목 공사'라고 불렸고, 근대화의 성공적 진전을 상징하는 사례로 비춰졌다.
현재 경부고속도로 개통은 박정희 정권의 최대 업적으로 평가되고 있다. 경부고속도로가 개통됨으로써 비로소 '전국 일일생활권'이 가능하게 되었다는 점에서 사회, 경제적 발전의 획기적인 계기가 되었다. 경부고속도로는 총연장 대비 공사기간을 따져보면 세계에서 가장 빠른 시간 안에 완공되었다고 한다.
1964년 12월 독일을 방문했던 박정희 대통령은 연장 20킬로미터였던 본-쾰른 간의 아우토반을 달리게 되었는데, 고속도로의 수송능력에 놀람을 감추지 못하였고, 경제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고속도로 건설이 필수적이라는 판단을 내렸다. 고속도로 건설에 필요한 자금은 외국에서 빌리고, 도로 건설 이후 수익자부담 원칙에 따라 고속도로 이용자에게 거두어들인 통행료로 빌린 돈을 갚기로 했다.
박정희는 "이 공사는 민족의 피와 땀과 의지의 결정이며 민족적인 대예술작품"이라고 했고, 그의 경제 브레인이었던 오원철은 "경부고속도로는 박정희 대통령의 작품이다. 구상부터 계획, 감독, 검사를 혼자서 해냈다. 박 대통령은 우리나라 고속도로의 창시자요 대부이다. 경부고속도로는 역사상 박정희 고속도로로 남을 것이다"라고 평가했다.
이 공사는 단순한 건설 공사가 아닌, 군사 작전과 같이 군대식 총력 체제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공사였다. 오원철은 "고속도로 건설 동기, 추진 방법, 공사 방식이 모두 군대식이었다"고 평가했다. 경부고속도로 건설은 원래 1971년에 개통 예정이었으나, 무려 1년을 앞당겼다.
1961년 1인당 국민소득은 82달러에 불과했지만 1979년에는 1,636달러를 기록해 연평균 18퍼센트 증가했고, 수출은 연평균 38퍼센트 증가라는 경이적 기록을 세웠다. 절대 빈곤국이 세계 10대 경제대국으로 발전한 것은 행운이나 우연이 아니라, 현명한 지도자의 선견지명 덕분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경제발전에 고속도로 건설계획이 큰 역할을 했다.
경부고속도로 계획이 발표된 직후 월간 <세대> 1968년 1월호가 각계 인사 100명에게 찬반 여부를 조사한 결과, 68%가 무조건 찬성, 27%가 조건부 찬성, 5%가 반대를 표했다. 하지만 야당을 비롯한 운동권 학생들은 박정희 대통령의 고속도로 계획에 극심한 반대를 했다. 당장 먹고 살기도 어렵고 차도 별로 없는 나라에 고속도로를 건설한다니 정신이 나간 것 아니냐는 논리였다.
경부고속도로는 우리나라 2대 경제권의 중심인 서울과 부산을 연결하여 경제발전의 첩경이 되도록 하기 위한 이유에서 건설하였다. 박정희 대통령은 이미 1967년 초에 경부고속도로 건설에 대한 방대한 구상을 끝내고 몇몇 구간의 노선까지 손수 결정해놓은 상태였다고 한다. 이처럼 고속도로는 박정희에게 근대화의 상징이자 경제개발의 꿈을 실현시킬 신앙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 결과, 1968년 12월 21일 우리나라 첫 고속도로인 서울-인천 간 경인고속도로가 개통되었고, 1970년 7월 7일에는 연장 428킬로미터, 4차선인 경부고속도로가 개통되었다. 1973년에는 연장 251.8킬로미터, 2차선인 대전-순천 간 호남고속도로와 연장 176.5킬로미터, 2차선인 남해고속도로가 개통되어 영남지방과 호남지방을 연결하게 되었다.
또한 1975년에는 연장 201킬로미터, 2차선인 수원-강릉 간 영동고속도로가 완공되어 수도권과 영동지방을 연결하게 되었다. 고속도로가 만들어진 후 철도 위주의 수송 구조가 도로로 바뀌었고, 전국이 일일 생활권으로 연결되었다. 공업 단지도 전국 방방곡곡에 건설되었고, 산업 발전과 산업 생산성도 높아졌다. 고속도로 건설은 '한강의 기적'이라는 신화 창조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헀다.
10. 농촌의 진흥과 국민의 근면, 자조, 협동정신을 일깨운 농촌혁명인 새마을운동 실시

- 박정희 대통령의 여러 공업화를 통한 급속한 경제발전은 도시의 엄청난 발전을 가져왔지만, 반대로 농촌의 쇠퇴를 가져왔다. 그래서 박정희 대통령은 이러한 농촌을 다시 부흥시킬 방법을 찾아냈는데, 그것이 바로 새마을운동이다. 새마을운동은 박정희 대통령이 1970년 4월 22일 수해대책을 숙의하기 위한 지방장관회의에서 수재민 복구대책과 아울러 농촌재건운동에 착수하기 위하여 마을가꾸기 사업을 제창한 것에서 비롯된다.
이는 하나의 농촌혁명과도 같았다. 박정희 대통령은 1969년 8월 4일에 경남북 수해지구를 시찰하면서 마을사람들의 자발적인 자조정신과 협동심에 큰 감동을 받았고, 이를 통해 그는 농민들의 근면, 자조, 협동정신을 일깨워 농촌을 개발해보자는 기발한 아이디어를 착안해낸다.
그리하여 박정희 정부는 1971년 전국 3만 3,267개 마을에 시멘트 335포대씩을 무상지원하여 각 마을마다 하고 싶은 사업을 자율적으로 하도록 조성하였다. 이 결과는 2가지로 나타났는데, 한쪽은 정부가 무상공급한 시멘트로 부락민들이 자제 노력과 자체 자금을 투입하여 마을이 필요로 하는 숙원사업을 해냈다.
반면, 다른 한쪽은 시멘트의 무상공급을 받았음에도 뚜렷한 사업을 하지 못했다. 이러한 경과를 지켜보고 박정희 정부는 성과가 있는 1만 6,600개 마을에 대하여 또다시 시멘트 500포대와 철근 1t씩을 무상공급하면서 자발적인 협동노력을 장려하였다. 이러한 정책은 정부의 절대적인 지원으로 전국으로 확대되면서 공장, 도시, 직장 등 한국사회 전체의 근대화운동으로 확대 및 발전되었다.
새마을운동은 박정희 대통령의 탁월한 리더십과 우수한 새마을지도자 양성, 그리고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시너지효과를 나타내면서 근대화와 경제성장이라는 성과를 이룬 것이었다. 덕분에 우리나라는 보릿고개를 청산하면서 산업혁명과 농업혁명을 단시일에, 그리고 동시에 성공시켰다. 이 새마을운동이 범국민적 근대화운동으로 조직되어 1970년대의 경이적인 경제성장을 가능케 한 원동력이 되었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자동차가 드나들 수 있는 마을은 30%에 불과해 나머지는 비좁고 꼬불꼬불한 고샅길에 가난이 엉켜 있는 형상이었는데, 새마을운동 덕분에 이런 농촌의 인프라를 획기적으로 바꾸어 놓았고, 농가소득 증가라는 눈부신 성과를 가져왔다. 1967년의 경우 농가소득이 도시가구의 60%에 불과하던 것이 70년에 평균 25만 6천원, 75년 87만 3천원, 78년 160만원으로 8년 사이 6배 이상 증가하며 도시 노동자의 소득을 상회하기 시작했다.
이 새마을운동은 이후 세계 각지로 퍼져 세계 약 100여개 나라에서 우리나라의 새마을운동을 배우고 있고, 또 배우려 하고 있다. 사실, 이러한 새마을운동은 우리 한류의 첫 물결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만큼 해외에서는 우리나라의 새마을운동에 주목하고 있으며, 이러한 운동을 주도한 박정희 대통령을 칭송하고 있다.
11. 자동차 산업을 육성하여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효자산업으로 성장시킴

- 1968년에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이 준공된 이후 현재 1공장부터 5공장까지 5개의 단일공장으로 구성되어져 있다. 1990년 6개의 차종에 56만대 생산능력에 불과했던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은 2010년 기준 13개 차종을 시간당 330대, 하루 6,600대를 생산한다. 연간 최대 150만대까지 가능하다. 설립 이후 2009년까지 차량 누계대수는 2,580만대에 이른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수출선적부두가 공장 내 위치해 수출기지로서도 최고의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다. 이와 같이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산업으로 일컬어지는 자동차 산업 역시 박정희 대통령 시대 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어 발전하기 시작했다. 1961년 5.16을 일으킨 직후 박정희 정권은 <자동차공업발전법>을 만들어 완성차 수입 금지, 국산화 정책, 수출 산업화 정책 등과 함께 자동차 산업을 활성화시켰다.
1962년 세워진 새나라자동차는 일본 닛산의 부품을 수입해 '새나라자동차'를 조립생산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새나라는 관세면제 등의 특혜를 받아 5.16 군사정권 초기 이른바 '4대 의혹사건'의 하나로 물의를 일으켰고, 수요 감소로 설립 다음해인 63년 5월 생산이 중단된 뒤 65년 이어 신진자동차가 설립돼 새나라자동차를 인수했다.
신진자동차는 도요타와 기술제휴로 '코로나'를 선보였다. 60년대 말에는 현대자동차가 미국 포드와 손잡고 '코티나'를 양산하기 시작했다. 70년대초에는 현대, 신진, 아시아, 기아산업 등이 4륜트럭 생산을 시작해 자동차 공업발전의 촉매역할을 했다. 이후 1975년 현대의 '포니'는 한국을 세계 15번째 자동차생산국가로 부상시켰으며, 1976년에 포니 6대를 에콰도르에 첫 수출했다.
그리고 1986년 소형자동차 '포니엑셀'을 처음 미국에 수출했다. 현대차는 포니를 만들고 약 10년간 적자에 시달렸는데, 국가가 나서서 해결해 주었다. 박정희 정권이 앞서 언급한 것처럼 국내에서 외국차를 못 팔게 하고 독점가격을 보장해주면서 자동차 산업을 육성시킨 것이다. 이런 배경에서 한국 자동차 산업은 세계 5위권에 진입할 정도로 급성장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 결과, 지금과 같은 성장을 이루어낼 수 있었다. 1960년대 후반, 이웃나라 중국 대륙에 고속도로가 한뼘도 없을 때 산지가 7할인 이 작은 나라에 가당치도 않다는 고속도로를 닦으면서 박정희 대통령은 자동차를 만들자고 했다. 박정희 대통령의 자동차 생산계획 발표에 업계는 놀랐고, 교수와 지식층에선 후진국이 무슨 자동차냐고 반대했다.
국회의원이나 장관들도 자가용을 마련하기가 수월치 않았던 그 시절에 국내에서 자동차를 개발한다는 것은 상상하기도 어려웠다. 그러나 자동차 산업은 국가경제를 일으키는 효자산업으로 급성장을 했다. 먹고 살기도 힘든 시기에 이미 앞날을 내다보고 고속도로에 이어 자동차 산업을 육성하여 대표적인 산업으로 만든 것이다.
12. 화교 억제정책을 통해 서민들의 골목상권을 지키고 경제적인 자립과 자주성을 수호

- 현재 우리나라는 아시아 국가에서 거의 유일하게 화교가 제대로 정착하지 못한 나라에 속한다. 그 이유는 박정희 정권 아래에서 화교들은 큰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이었다. 통화개혁이 그것이다. 화교들이 현금 소지를 선호하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는데, 통화개혁을 통하여 화교들의 현금이 하루아침에 휴지조각으로 변하고 말았던 것이다.
이로 인해서 화교의 생존이 박정희 정권 하에서 직접적으로 위협받았다. 또한 1961년 외국인 토지 소유 금지법의 시행에 따라 토지를 소유한 외국인은 정부의 승인을 받아야 했다. 그러나 많은 화교들은 그 승인을 얻지 못했고, 그들의 토지를 시세에도 못 미치는 가격으로 매도해야 했다. 1970년에는 외국인 토지 취득 및 관리에 관한 법이 제정되었다.
이에 따라 한국 화교는 1가구에 1주택 1점포만 허용되었고, 그것도 주택면적은 200평 이하, 점포는 50평 이하로 제한되었다. 또한 취득한 토지의 건물은 자신만이 사용 가능했고 타인에게 임대할 수 없었다. 논밭이나 임야의 취득도 불가능하였다. 한국 화교는 요식업에서도 여러 제한과 차별 대우를 겪어야 했다.
중국과 가장 가까운 곳에 있으면서도 유독 차이나타운이 존재하지 않는 나라가 바로 한국이다. 최근 한국을 방문하는 중국인 관광객들의 수가 부쩍 늘어남에 따라 이들을 대상으로 상업활동을 벌이기 위해 인천과 부산 등에 자연스럽게 차이나타운이 형성되고 있다고는 하지만, 중국인 이주 100년의 역사가 지난 지금까지 차이나타운이 건설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 의미하는 바는 실로 크다.
이 같은 어려운 상황으로 한국 화교의 인구는 점차 감소해갔다. 이들은 1970년대 초부터 미국을 비롯하여 호주, 대만 등지로 이주하였다. 1960년대 말까지 4만 명을 헤아렸던 화교들 가운데 2만 명 이상이 외국으로 이주하였으며, 미국의 캘리포니아 주 지역에만 현재 8천여 명의 한국 화교 출신자들이 거주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박정희 대통령 시절의 부동산 취득제한, 거주자격 심사강화, 세무조사 등의 화교정책으로 한국의 화교들이 성장하지 못하도록 발목을 잡은 것이었다. 이와 같이 70~80년대에 화교들은 부동산 취득 등 부의 축적 수단이 원천적으로 봉쇄되어 한국에 자리를 잡지 못하게 되었다.
13. 베트남전 파병을 통해 막대한 군사적, 경제적 이익을 통한 '베트남 특수'를 누림

- 베트남 파병으로 인한 특수는 한일국교정상화 청구비용과 함께 박정희 대통령의 1960년대 경제개발 신화를 이끈 쌍두마차로 불리운다. 이 베트남 파병을 통한 베트남 특수는 '한강의 기적'이라는 경제적 신화를 만드는 데에 충분했다. 베트남 파병은 박정희 대통령이 정치와 경제 이익을 노리고 미국이 생각하기도 전에 이미 먼저 시행착오를 내부에서 논의하고 제안했다.
박정희 대통령은 안보와 경제적 실리라는 두 마리 토끼를 이 기회에 잡으려고 했던 것이다. 베트남 파병은 결과적으로 박정희 대통령이 의도한 거의 모두가 달성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는데, 한국 국방부 공개 자료에 따르면 군사 원조 증가분이 10억 달러, 미국의 한국군 파월 경비 10억 달러, 베트남 특수 10억 달러, 기술 이전 및 수출 진흥지원이 총 50억 달러의 외화 수입 효과가 발생했다고 한다.
미국의 일반회계국이 1973년에 작성한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군의 베트남 파병과 관련해 미국 정부가 한국에 지불한 돈은 모두 10억 3000만 달러로 추정했다. 미국 국제개발처(AID)도 1966년부터 1972년 사이 한국이 베트남에서 벌어들인 외화 소득을 총 9억 2500만 달러 정도로 추산했다.
이러한 경제적 실리 이외에도 1950년 6월 25일에 일어난 6.25전쟁에서 막대한 비용과 군사를 지원한 미국이 사상 처음으로 지원을 받은 한국 정부를 외교적 동반자로 생각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당시 베트남 전쟁에 대한 명분이 없었기에 미국의 편에 서서 참전하기를 국제사회는 꺼렸기 때문에 우리나라가 미국에게 은혜를 갚았던 격이 되었기 때문이다.
특히나 중요한 것은 당시 베트남 전쟁에 대한 일반적인 국제사회의 시각이 인종전쟁, 즉 프랑스와 미국의 백인계와 베트남, 중국의 황인계의 인종전쟁이라는 불명예를 받았던 것인데, 이러한 인식을 깨기 위해서는 동양의 국가가 미국의 편에 서서 참전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국가는 바로 우리나라가 되었다.
이후 우리나라가 본격적인 베트남 파병을 통해 미국으로부터 전쟁물자 및 용역을 제공받았고, 또 한국군의 장비 현대화와 차관 제공 등의 경제 및 군사지원을 미국으로부터 약속을 받아냈다. 그 결과 1968년 말 박정희 정부가 미국에 M-16 소총 10만 정 제공 및 공장 건설, 전폭기 17개 대대, 전략 공군 기지 건설 지원 등을 요청하여 요구 장비의 85% 수준을 약속했다.
베트남 파병은 이와 같이 베트남 특수를 통한 한국 경제의 도약을 가져왔던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으며, 동시에 한국과 미국의 안보 체제가 더욱 강화되는 시너지 효과를 냈다. 뿐만이 아니라, 6.25전쟁 이후 군사훈련을 통해서 이론적으로만 학습하던 것을 베트남 전쟁을 통해 실질적인 전쟁경험 기회를 전투병들이 체험하여 안보의 중요한 역할을 했다.
14. 식량자급으로 가난을 해결하고자 다수확품종인 통일벼를 재배하여 녹색혁명을 이뤄냄

- 박정희 대통령은 식량자급이야말로 가난 추방의 첫걸음이자 국가안보의 요체라고 여기고 1960년대 중반 벼 신종품 개발을 지시했다. 1971년에 농촌진흥청이 개발한 다수확품종인 통일벼 재배가 시작되어 1974년에는 쌀 생산량이 3000만석을 돌파, 쌀 수입을 끝냈으며, 1975년에는 마침내 쌀 자급이 달성되었다.
또한 1976년에는 단군 이래의 최고 수확량을 기록했고, 드디어 쌀을 비축하기에 이르렀다. 즉, 5천년 역사상 처음으로 전국민이 쌀밥을 먹는, 우리 역사의 기념비적인 해가 된 것이었다. 기아를 몰아내려는 박정희 대통령의 의지와 정부와 농업공무원, 농민의 의지가 녹색혁명, 쌀 기적을 이뤄내고 보릿고개라는 비참한 시대에 살던 국민들을 굶주림에서 해방시킨 것이다.
개발도상국에서 식량의 자급자족을 이루면 '녹색혁명'이라고 일컫는다. 이 녹색혁명의 성공은 박정희라는 국가지도자의 완고한 집념과 공직자, 그리고 농민의 삼위일체가 이루어낸 결과물이었다. 박정희 대통령 시대에는 청와대에 농업 담당과 새마을 담당 특보, 그리고 농업 담당 비서까지 3명의 참모가 있었는데, 그 다음 정권부터는 농업 관계 참모가 단 한명도 없었다.
한이 많은 보릿고개로부터 해방을 맞은 1976년의 쌀 생산량은 521만톤(3621만석), 10년 전인 1966년의 392만톤에 비하면 100만톤을 훨씬 뛰어넘는 수확이었다. 그런 뒤 1977년부터는 4천만석을 돌파해 세계 최고의 다수확국가로 탈바꿈했다. 그 과정에서 절미운동을 강력히 추진하며 매주 수요일과 토요일 주2회 혼분식을 실시했고, 1972년 12월부터는 주5회 정도로 늘려 단속을 했다.
식당에 수시로 암행단속반이 들이닥쳐 솥뚜껑을 열어보고 절미운동 위반은 중대한 범죄행위로 규정했다. 학교에서는 선생이 점심시간마다 도시락을 검사했다. 이와 같은 국민의 뜻에 반하는 행동을 했지만, 그 결과 식량증산과 절미운동은 1976년에 식량의 자급자족을 이루어냈고, 그 결과 비로소 외국쌀의 수입 중단을 공식적으로 선언하게 된 것이다.
1976년이라는 시기는 우리나라가 보릿고개라는 찢어지게 가난한 굶주림에서 벗어나는 것을 의미했으며, 동시에 우리나라가 이제는 굶주림이 없이 어느 정도 자급자족을 통해 먹고 살 수 있는 기반이 조성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녹색혁명은 식량자급이야말로 가난 추방의 첫걸음이자 국가안보의 요체라고 여겼던 박정희 대통령의 특별한 관심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었다.
15. 훗날 2차례 남북정상회담의 기반을 닦은 남북적십자회담, 7.4남북공동성명 등의 대북정책

- 박정희 대통령은 경제적인 자립과 자주 국방 이외에도 조국통일, 나아가 세계평화를 이루려는 현실적이고 단계적인 청사진을 구상하여 국정을 이끌었다. 흔히 북한과의 평화적인 시기로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 때를 꼽지만, 그 시기에 행해진 남북정상회담과 같은 일들은 어디까지나 그 이전에 박정희 대통령이 기반을 닦아놓은 대북정책에서 비롯된 것이다.
예컨대 박정희 대통령은 북한과의 체제경쟁 속에서도 남북한의 선의의 경쟁을 촉구한 1970년의 8.15평화통일구상선언, 인도적 차원의 남북적십자회담과 이산가족 찾기 운동, 1972년의 7.4남북공동성명과 이에 따른 남북조절위원회 회담, 그리고 1973년 평화통일외교정책선언과 6.23선언, 1974년 남북불가침협정 체결을 제의했다.
뿐만이 아니라, 평화통일 3대 기본원칙 제의, 1977년 대북한식량원조 제의, 1978년 남북경제협력협의기구 설치 제의, 1979년 무조건적인 대화재개 제의 등 조국의 평화와 통일을 위한 준비도 착실하게 추진하였다. 이러한 박정희 대통령에 의해 주도된 남북한간의 체제 경쟁을 승리로 이끌고, 또 경제성장과 자주국방을 통해 부국강병을 이룩하고, 통일에 대비한 착실한 준비가 오늘날 우리가 통일을 대비하는 가장 중요한 기반이 되었던 것이다.
특히나 주목할 것은 1972년 7.4남북공동성명인데, 이 선언으로 남북조절위원회가 구성되는 등 분단 27년만에 처음으로 남북대화의 통로가 마련된 것이다. 이 성명에서 자주와 평화, 민족대단결의 3대원칙이 공식 천명되었는데, 이 3대원칙이 1991년에 합의된 남북기본합의서에도, 그리고 90년 시작된 남북 고위급회담에도 적용되어 그 이후까지 유지되었다는 점에서 박정희 대통령의 대북정책은 큰 의의가 있겠다.
1971년의 7.4남북공동성명은 무력통일에서 평화통일로 통일 방식이 변경되었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들이, 그러니까 서로 끊임없이 다투던 그 시기에도 북한과의 직접적인 대화의 창구를 마련하고자 노력했고, 또 이 노력의 성과들이 존재했었기 때문에 2000년 김대중 정권의 남북정상회담이 존재했던 것이며, 2007년 남북정상회담이 존재했던 것이라고 볼 수 있다.
16. 한일협정 체결을 통해 얻어낸 막대한 청구비용으로 1960년대 경제발전의 토대를 닦음

- 박정희 대통령은 일본과의 국교 정상화가 한국의 국익에 부합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한국과 일본의 국교정상화를 통해 한국의 경제 발전뿐만 아니라 미래지향적인 관계 정립에 필수 요건임을 확신하고 밀어붙였는데, 일본을 이용해 발전하는 것 말고는 길이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1963년 말부터 야당은 '대일 굴욕 외교 반대 범국민투위'를 구성해 투쟁에 나섰고, 이듬해 6월 3일에는 서울의 18개 대학생과 시민 등이 시위를 벌였다. 이는 6.3 사태라는 이름으로 역사에 기록되었는데, 한일회담 막후 주역으로 공화당 의장을 맡고 있던 김종필이 사표를 내고 외유를 떠날 정도로 엄청난 반대에 부딪쳤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한민국과 일본국 간의 기본 관계에 관한 조약'과 이에 부속된 협정 4개 및 문서 25개에 서명함으로써 한일협정은 타결되었다. 이로 인해 청구권 및 경제협력협정에 따라 무상 공여 3억 달러, 유상 재정 2억 달러를 각각 10년에 걸쳐 분할해서 제공받기로 했으며, 양해 사항으로 민간 차관 3억 달러가 제공되었다.
이러한 한일협정은 경제 회생을 위한 의도도 있었지만 집권당인 공화당의 정치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36년간 '일제 식민통치의 한'까지 팔아먹은 전형적인 매국 외교라며 격렬한 비난이 그치지 않았다. 하지만 2005년 8월 26일 노무현 정부는 156권, 총 3만 5354쪽의 한일회담 전 과정이 담긴 외교 문서를 모두 공개했는데, 당시 민간위원으로 문서 공개에 참여해 샅샅이 문서를 살피고 정리한 전현수 경북대 교수는 2005년 8월 26일에 다음과 같이 문서공개관련 회견을 가졌다.
"나도 한때는 한일협정이 굴욕 회담이라고 생각했는데, 3만 6000장을 일일이 검토하면서 우리 정부가 국익을 대변하기 위해 비교적 최선을 다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물론 굴욕적인 36년 식민 지배를 통한 물질적이고 정신적인 손해에 상당하는 보상은 부족하지만, 협상은 상대가 있는 것이다. 일본은 당초 8000만~1억 5000만 달러만 주려 했는데 우리 대표단이 최대한 액수를 끌어올렸다. 과거 청산이나 국익 유지와 옹호를 위해 당시 대표단이 최선을 다해 노력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사실, 이미 한국은 1951년 8월 13일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서 서명국 자격을 얻지 못해 일본을 상대로 배상 요구를 할 수 없는 입장이었다. 지금의 시점으로 봤을 때, 일본의 이러한 행태들을 본다면 한일협정에서 우리가 제대로 된 보상을 받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오히려 시간을 더 끌어 시일이 지난 뒤에 협정을 가졌다면 아예 한 푼도 받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졌을 가능성도 매우 크다. 이원덕 국민대 교수도 지적을 했듯이 말이다.
분명 당시 한국과 일본의 국교정상화는 1960년대 한국 경제를 경이적으로 발전하도록 이끈 견인차였다. 당시 한국의 총 외환 보유고가 2억~3억 달러에 불과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일본에서 유입될 자본은 엄청난 금액이었고, 덕분에 수교 이듬해인 1966년에 무려 12.4%라는 놀라운 경제 성장률을 달성한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바로 한일 국교 정상화의 결과물이었다. 이를 통해 제1차 5개년 계획을 연평균 8.5%로 초과 달성했고, 제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목표를 2년 앞당겨 1969년에 초과 달성한 것이다.
17. 경제적 자립위해 '산업의 쌀'인 철강산업을 육성시켜 세계적 규모의 철강업체 기반을 다짐


- 1968년에 포항제철이 설립되어 1973년부터 조업을 시작한 이후, 한국 경제 발전과 중화학공업의 근간을 이루며 포스코는 세계적 규모의 철강업체로 발전했다. 포항제철이 건설되기 이전, 우리의 철강 산업은 거의 전무한 상태였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자립 경제를 달성하기 위해 제일 먼저 '산업의 쌀'인 철강산업의 육성에 강한 의욕을 보였다.
이는 1965년 존슨 미국 대통령과 정상 회담을 위해 미국을 방문하면서 피츠버그 철강공업지대를 시찰하고, 미국의 제철소 건설 기술 용역회사인 코퍼스의 포어 회장을 만나 사업 실현에 필요한 외자를 조달하기 위해 국제 제철차관단을 구성할 것을 제의하면서 시작되었다.
그리하여 1966년 12월, 미국의 코퍼스를 중심으로 5개국 8개사가 참여하는 대한국제제철차관단(KISA : Korea International Steel Associates)이 정식으로 발족했다. 그러나 1968년 세계은행(IBRD)은 한국의 종합제철 사업이 시기상조라는 보고서를 발표하면서 한국의 제철소 건설 계획에 찬물을 끼얹었고, KISA도 차관도입에 난색을 표함으로써 자금 조달이 불가능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정희 대통령은 포항제철을 강하게 추진하면서 결국에는 지금과 같은 세계적인 규모의 철강업체를 만드는 데에 기반을 닦았다. 이 세계적인 포항제철은 박정희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서 시작됐다. 박정희 대통령은 제철산업의 적임자를 찾던 중 박태준을 떠올렸고, 즉시 그를 청와대에 불러 포항제철소 건설을 부탁했다.
박태준도 부담이 되서 여러 차례 거부를 했지만, 박정희 대통령은 포기하지 않고 끝내 박태준이 포항제철을 건설하도록 설득했다. 그리고는 원래 KISA가 한국에 조강 능력 60만 톤 규모의 제철소를 1972년 9월까지 완공하며 300만 톤까지 철강을 생산할 수 있도록 설계하기로 했다.
또한 건설 자금은 총 1억 3,070만 2,000달러이며, 그중 외자는 무려 9,570만 2,000달러, 내자는 3,500만 달러였는데 외자 지급이 거부된 것이다. 하지만 이 자금은 바로 한일협정 청구비용에서 충당하게 되었고, 포항제철 건설은 국제적인 반대에도 불구하고 실행에 옮기게 되었다. 경제기획원은 전담반까지 설치하면서 포항제철 건설을 지원했다.
이렇게 1970년 4월 1일 착공식이 거행되었고, 드디어 포항종합제철의 1기 용광로 공사가 완공되어 점화로에 불을 붙였다. 쇳물이 나오기까지 21시간이 걸렸고, 마침내 나오기 시작했다. 이것이 대한민국 한반도 포항에서 최초의 쇳물이 쏟아진 것이었다. 이 포항제철은 일관제철소 설비를 가동시킨 지 단 1년 만에 그동안 투입된 외국자본을 모조리 갚고도 남는 40억 원의 흑자를 기록했다.
박정희의 전적인 지원과 격려, 그리고 박태준의 강력한 리더십에 의해 포항제철은 선진국들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무사히 준공되어 전 세계를 놀라게 했던 것이다. 이후 포항제철은 지금까지 한 번도 적자를 낸 적 없는 국가의 중요 수출산업으로 성장했다. 조강 생산능력은 세계 1, 2위를 다투는 등 국가 발전의 최고 핵심산업으로 발전했다.
이것은 그야말로 박정희 대통령과 박태준이라는 포항제철을 건설한 CEO의 위대한 합작품이었던 것이다. 박정희 대통령의 강한 결단력과 포항제철 창업단의 불도저와 같은 리더십, 포항제철은 이러한 긍정적인 사고가 밑바탕이 되어 이제는 세계 굴지의 제철공장이 되었다. 포항제철의 성공은 단순하게 포항제철의 성공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다. 포항제철은 국내의 철강산업을 선도하면서 한국경제를 선두에 이끄는 견인차 역할을 한 것이다.
18. 2001년~2012년까지 세계 1위를 놓치지 않았던 대표적인 조선산업의 기반을 다짐

- 1970년대 중화학공업의 성패를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핵심 사업이 조선소 건설이었다. 조선소 건설은 돈도 기술도 없이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하는 격이었다. 외국에 나가 손을 벌리니 돈을 빌려주겠다는 곳이 없었고, 정주영을 박정희가 거의 강제적으로 해외로 보냈다. 그 이후 청와대로 다시 돌아와 박정희 대통령과 의논을 한 뒤 조선사업은 시작되었다.
영국, 미국, 일본, 러시아 등 이들 국가들은 한결같이 군사강국인데다가 일자리 걱정을 하지 않았다. 특히 해양산업이 발달한 나라들이었다. 그에 비해서 우리나라는 울산 단지가 들어서고 일자리와 국민 총소득은 조금씩 늘어났지만 여전히 농사를 짓는 인구가 대부분이었고 거지는 넘쳐났다.
박정희 대통령은 이러한 대한민국의 현실을 보고 조선산업을 결심했다. 그는 이 산업만 성공한다면 자주국방도, 일자리 창출도 모두 해결될 것이라고 봤다. 그리고 이 조선산업을 통해 자연히 기계와 자연산업이 발달할 것이라고 보았다. 이런 대규모 산업은 정부 관료의 힘만으로는 부족했는데, 경제기획원 장관인 김학렬이 박정희 대통령에게 정주영을 추천했다.
정주영은 조선산업을 위해 해외로 나가 기술 제휴와 차관 도입에 나섰으나 미국, 일본, 캐나다 등의 회사는 냉담하게 그를 돌려보냈고, 이에 포기하려고 했다. 하지만 박정희 대통령은 포기한다면 국가사업에 있어 현대건설에게 도움을 주지 않겠다는 배수진을 치게 하여 정주영은 계속 시도하였고, 드디어 영국에서 차관을 빌려왔다.
4,300만 달러의 어마어마한 차관을 빌려 한국으로 돌아가 박정희 대통령과 함께 조선산업을 시작하기에 이른다. 그 결과, 조선소를 완공했고 리바노스가 발주한 26만 톤급 유조선 두 척을 건조했다. 한국 땅에서는 처음으로 세계적인 대형 유조선을 만든 것이었다. 오늘날 세계 1위 조선국이 된 것도 모두 박정희 대통령의 집념과 정주영의 추진력이 결합되었기에 가능했던 것이었다. 즉, 2001년부터 2012년까지 무려 11년을 대한민국이 조선산업에서 세계 1위를 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
19. '공업입국' 신호탄인 공업단지를 조성, 경공업·중화학공업을 통한 경제개발의 기틀을 다짐

- 1962년 2월 3일, 울산에 공업단지 기공식이 열렸다. 이 공업단지 기공식은 '공업입국'의 신호탄이었다. 군복을 입은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은 울산공업단지를 혁명공약(경제개발)의 아이콘으로 내세웠다. 이 울산공업단지의 조성은 박정희에게는 경제개발의 거의 최초의 시도이자 계획이었다.
박정희 대통령은 울산공업지구 설정 및 기공식을 가지기 이전에 이미 1962년 1월 27일에 울산을 중화학공업 우수 자연적 입지조건으로 결정하여 공포한 바가 있었다. 그리고 이후에 이 울산에는 여러 화학, 석유와 관련된 중화학공업이 실제로 시행되었다. 1960년대 초반에는 고작 생사 270만 달러를 수출했던 데 비해, 1970년에는 섬유류 수출이 3억 4,110만 달러나 되었다.
1960년대에는 노동집약적인 경공업 수출이 섬유류, 합판, 가발 등에 집중하고 있었는데, 수출을 증진하기 위해 대규모 공단이 조성되었다. 그 이후 1965년 3월 12일에는 구로공업단지의 기공식이 있었다. 또한 1967년 4월 20일에는 요소비료를 연간 33만 톤 규모로 생산하는 한국비료가 준공되었고, 1964년 5월 7일에는 울산정유공장 준공식이 있었다.
울산공업단지는 급속하게 성장했고 한국산업화의 중심지로 변모해갔다. 이후 이 울산공업단지에는 중화학공업에 속하는 현대자동차 공장이 1968년부터 가동에 들어갔고, 1972년에는 현대미포조선소가 준공됐다. 울산이 공업단지로 선정되면서 변변한 항만시설도 없는 곳에 기계와 시설자재를 실은 대형선박들의 왕래가 부쩍 잦아졌다.
당시 울산은 인구 8만 5000명 정도의 전형적인 농어촌에 불과했다. 하지만 1962년 1월 15일에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이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발표했고, 울산이라는 농어촌을 대한민국 최초의 공업도시로 만든 것이었다. 이후 우리 나라에서 석유화학제품이 생산되기 시작한 것은 1966년 카바이드법에 의하여 폴리염화비닐(PVC)을 생산해 낸 것을 그 효시로 한다.
우리 나라에서 본격적으로 석유화학공업이 시작된 것은 제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일환으로 정부가 석유화학공업단지 건설을 추진하기 시작한 이후부터이다. 1964년 대한석유공사의 정유공장 가동으로 원료인 나프타의 국내 공급이 가능하게 되었으며,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 기간중 섬유·플라스틱·타이어·세제 등 석유화학산업으로부터 원료를 제공받는 산업들이 개발됨에 따라 석유화학단지 건설의 필요성이 높아지게 되었던 것이다.
이리하여 업스트림 부문은 대한석유공사를, 다운스트림 부문은 충주비료를 주축으로 하여 1968년 3월 울산석유화학단지 건설이 추진되었다. 1970년에 대한석유공사가 울산정유공장 내에 석유화학의 방향족계 원료인 BTX(벤젠·톨루엔·크실렌)공장을 건설·가동하기 시작하였고, 1972년 10월에는 에틸렌 기준 연간 10만 톤 생산규모의 나프타 분해공장 및 9개 계열공장이 완전 가동되었다.
이로써 국내 석유화학공업은 대량생산으로 본격적인 자립의 터전을 마련하게 되었으며, 기초 유분에서 최종 제품에 이르기까지 일관된 생산체제를 갖추게 되었다. 공업단지의 신호탄으로 경공업을 하던 공업단지에서 이제는 더 나아가 중화학공업이라는 한층 성장된 공업단지가 되어 경제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하게 된 것이었다.
20. 서민들의 원활한 도로교통을 위해 서울지하철 1호선 개통

예전에 철도청장을 지냈었던 양택식이 김현옥 후임으로 부임하면서 재임중에 지하철을 건설하겠다고 하였으나 김학렬 당시 경제부총리의 반대에 부딪혔다. 하지만 박정희 대통령은 결국 지하철을 건설하겠다는 양택식의 편을 들어주었고, 일본과의 기술 제휴를 통해 지하철을 건설하겠다고 하였다.
이렇게 시작된 서울지하철은 1호선이 1971년 4월 12일 착공해 3년 4개월 만인 1974년 광복절에 개통했다. 거리는 서울역~청량리로 7.8km 길이였다. 당시에는 서울역이 서울역앞역으로, 시청역은 시청앞역으로 불렸으며, 동묘앞역은 만들어지지도 않았던 때였다. 1971년에 일본에서 들여온 외자 94억원과 국내자금 240억원을 투입하였다.
대한민국 최초의 지하철이지만 일본의 기술협력과 엔 차관이 결합하여 논란이 되기는 했지만, 이 지하철 개통은 새로운 주거지역이 개발되고, 또 대단위 주택단지가 건설되고, 또 도시기능이 분산이라는 막대한 경제적 효과를 창출하고 있다.
21. 세계에서 1위를 지키고 있는 대한민국의 효자산업인 반도체 전자공업의 기반을 다짐

- 역사적으로 농경시대에는 농사를 짓는 기술이, 산업사회에서는 기계기술과 전자기술이 생존 수단이었다. 그리고 박정희 대통령 시대가 바로 우리나라가 최초로 산업사회로 들어서는 시기였다. 바로 그 시기에, 박정희 대통령은 철강, 조선, 자동차, 반도체 등의 기간산업을 정부 주도형으로 기획하고 육성하였다.
중화학공업이 박정희 대통령에 의해 육성되던 시기인 1974년 1월에 한국반도체는 설립되었다. 국내 유수의 오퍼상인 켐코(KEMCO)가 기술집약적인 웨이퍼 가공 생산을 하려고 했던 것이다. 이 회사가 바로 이건희 눈에 띄었다. 1973년에는 오일 쇼크가 닥쳐 큰 폭풍에 휩싸였는데, 이건희는 한국은 부가가치가 높은 첨단 하이테크산업으로 진출해야 한다는 확신을 가졌다.
이러한 상황에서 1974년에 한국반도체라는 회사가 파산에 직면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던 것이다. 30대 초반이었던 이건희는 아버지에게 한국반도체를 인수하자고 건의했지만 이병철 회장은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이건희는 물러서지 않았고, 결국 아버지의 도움을 받지 않고 뛰어들었다.
하지만 이병철도 반도체에 관심이 없던 것은 아니었다. 1977년에 한국반도체를 인수했는데, 언젠가는 반도체사업을 해야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이병철은 이후 박정희 대통령을 찾아가 만났는데, 그는 "전자산업이 앞으로 한국을 먹여 살릴 산업이니 국가적으로 키워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자 박정희 대통령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곧바로 전자산업의 문을 열라는 지시를 내렸고, 일은 수월하게 진행되었다.
1970년대 중화학 공업 정책을 육성할 때 반도체는 당시에 최초로 국내에 도입되어서 연구가 시작되었다. 시제품을 만들고 본격적으로 제품을 내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였지만, 연구개발은 1970년대에 박정희 대통령의 승인과 적극적인 지원을 통해 기업체에서 시작되었다. 메모리형 반도체 산업육성정책을 연탄을 찍어내는 일, 또는 쌀농사를 짓는 것과 같다라고 보았던 것이다.
1980년~1990년대 반도체, 휴대전화기로 옮겨가게 된 것은 바로 1960~1970년대 수출드라이브 정책과 수출지향산업화 전략이 결실을 거둔 것이었다. 박정희 대통령은 처음에는 수출을 확대했고, 이후 중공업, 선박, 화학, 자동차, 반도체, 소비재 전자제품에 집중적으로 투자를 하여 경공업과 중화학공업을 동시에 이룬 것이었다.
그 결과, 현재 삼성그룹 전자계열사 제품을 국내 외 유통, 국내 반도체 유통부문에서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세계 반도체 시장에서 1위의 공급자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우리나라의 반도체 분야 1위는 1992년에 삼성전자가 메모리 반도체 세계 1위에 오르고 나서 지속되고 있다.
22. 외세에 의존하지 않고 자주국방을 통한 철통같은 국가안보를 계획하여 실현시킴

- 박정희 대통령의 자주국방에 대한 뜻은 1968년 2월 7일 경남 하동에서 열린 경전선 개통식장에서 처음 직접적으로 강조되었다. 박정희는 자주국방을 내세우면서 대미외교를 강화하여 월남전 파병을 결단하고 국군현대화 지원을 얻어내면서 방위산업을 육성했다. 박정희 정부의 자주국방 노력은 중화학공업화 추진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중화학공업 육성계획은 1971년 말 구상되어 1973년 1월부터 공식적으로 개시되었다.
이 계획은 한국의 산업구조를 고도화시키려는 경제적 동기도 있었다. 하지만 박정희가 당시 한국의 경제력에 걸맞지 않게 때 이른 중화학공업화를 추진한 데에는 정치, 군사적 동기, 즉 한편으로는 북한의 군사적 위협에 대처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닉슨 정부의 주한미군 감축에 대응해야 한다는 목적이 더 컸다.
다시 말해 박정희는 중화학공업화를 통해 방위산업을 육성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한국군의 현대화와 자주국방을 달성해 북한의 위협과 주한미군 감축에 대비하고자 했던 것이다. 이러한 자주국방 추진의 관건은 국방비 확보였다. 그 당시까지 한국의 국방비는 대개 경상비를 충당할 정도의 수준이었으며, 한국군의 전력강화는 미국의 군사원조에 주로 의존했다.
그런데 미국의 군사원조는 1973년을 기점으로 급속히 줄기 시작해 1977년경에는 거의 없어지게 되었다. 이에 박정희 정부는 미국이 주한미군 감축 대가로 1971년부터 5년 동안 한국군 현대화를 위해 제공하기로 한 15억 달러의 군사원주와 1975년부터 걷기 시작한 방위세를 재원으로 하여 강력한 자주국방 노력을 전개했다.
국방부에서는 1974년에 '전력 증강 8개년 계획'을 입안하였으며, 박정희 대통령은 이를 율곡계획이라고 이름을 지었다. 율곡계획은 남북 간의 전력 비교가 50대 100이라는 열세를 극복하기 위해 전차, 야포, 함정, 잠수함, 전투기 등의 국산화와 외부 조달을 계획하고 있었다. 박정희 대통령의 전력증강 8개년 계획으로 소총, 미사일, 전차 등이 국산화 되었고 해상, 해중 전력을 강화했다. 획기적인 자주국방태세를 구축할 수 있었던 것이다.
특히 한국 정부는 1976년 예산부터 국방비를 배증하기 시작해 이후 3년 동안 해마다 크게 증가시켰다. 그 결과 1979년 국방비는 국민총생산(GNP)에서 차지하는 비중 면에서는 북한보다 작지만 액수로는 북한을 앞지르게 되었다. 한국은 이러한 국방비를 가지고 미국으로부터 현대식 무기, 예컨대 미사일과 전투기, 군함 등을 사들이는 한편 중화학공업화를 통해 육성된 방위산업을 토대로 하여 무기의 국산화에도 박차를 가했다.
박정희의 자주국방 프로젝트에서 가장 야심에 찬 것은 핵무기 개발 시도였다. 1971년 닉슨이 주한미군을 감축하고, 중국과 관계를 개선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박정희의 안보에 대한 불안감은 고조되었다. 그는 사태의 진전에 따라 남한이 홀로 북한과 대결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고, 이러한 안보적 불안감은 그로 하여금 핵무기 개발에 대한 유혹을 느끼게 했다.
그에게 있어 군사적 자립은 핵무기 자립을 포함하는 것이었다. 그는 미국의 핵우산을 신뢰하지 못하게 되었고, 남한 내에 수 백 개의 미국 핵무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의 핵폭탄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이를 위해 박정희는 대통령 직속기관으로 '국방과학연구소'를 설립했고, 산하에 '무기개발위원회'라는 비밀기관도 두었다.
그는 우선 프랑스와 접촉하여 핵무기의 원료인 플루토늄 제조용 재처리 시설 확보에 주력했다. 그는 미국과 캐나다에서 활동 중인 한국인 핵과학자들을 은밀히 포섭하는 한편 핵무기 개발에 필요한 장비와 소재들을 몰래 구입하기 시작했다. 1971년 주한미군 철수 이후 박정희는 핵개발을 포함하여 적극적인 자주국방정책을 추진했는데, 이 역시 미국의 정책과 배치되는 것이었다.
6.25전쟁 이후로 북한군 전차보다 뛰어난 성능을 지닌 전차의 보유는 우리 육군의 숙원이었다. 1976년 초 박정희 대통령은 청와대를 방문한 현대그룹 정주영 회장에게 ‘국산 전차 개발’에 매진해 줄 것을 당부했다. 이것을 계기로 현대중공업이 미제 M-48A1 전차 개량사업에 착수했고, 이후 현대로템(당시 현대정공)이 1987년 7월부터 K-1 전차(88전차)를 본격 생산하게 된다. 이어 1996년 미국과 기술협력을 통해 120mm 활강포를 장착하고 특수장갑을 채용한 K-1A1 전차를 개발하기에 이른다.
K-1A1 전차 개발을 계기로 우리나라는 독자모델의 전차를 생산할 수 있는 전기를 마련하게 되었다. 그리고 2008년, 국방과학연구소(ADD)와 함께 현대로템은 독일의 레오파드, 프랑스의 르끌레르, 미국의 에이브람스 전차와 동급 또는 그 이상으로 평가받고 있는 K-2 전차 개발에 성공했다.
이외에도 1974년 12월, 1단 무유도(無誘導)로켓 '홍릉1호'가 창공을 갈랐다. 1978년 9월 26일엔 '백곰'이 충남 서산군 안흥 앞바다 목표에 명중했다. '백곰'뿐 아니라 대전차로켓 6발, 다연장로켓 구룡 56발, 중거리 무유도로켓 황룡 4발 등도 이어 실험에 성공하고 헬기, 대포, 탄약, 장갑차, 함정, 레이다, 미사일을 생산 및 항공기산업과 특수전차개발에 착수하여 자주국방의 효시를 놓는다.
23. 독립한 140여개 국가들 중 유일하게 과학진흥계획을 수립, 세계적인 과학국가 기반을 조성

- 박정희 대통령의 과학에 대한 관심은 유별났다. 1962년 1월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에 착수한 데 이어 4개월 뒤인 그해 5월 제1차 과학기술진흥 5개년 계획을 수립했다. 또 박 정희 대통령의 과학기술 육성 정책은 1966년의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설립, 1967년의 과학기술처 발족, 과학기술진흥법 제정, 1971년의 한국과학기술원(KAIST) 설립 등으로 이어졌다.
KIST의 파격적인 인사제도는 고급 두뇌를 영입해 한국 과학기술사에 분기점이 되는 굵직굵직한 연구성과를 내놓았다. 특히 한국의 근대화를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키워드가 바로 박정희 대통령이 수립, 시행한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다. 경제개발 계획과 함께 시작된 국가적 차원의 과학기술 개발 로드맵인 과학기술진흥 5개년 계획은 경제개발 계획의 뿌리로서 기획된 것이다.
박정희 대통령은 과학적 지식을 요하는 포병장교에 있었기 때문에 먹고 살기도 힘들었던 그 시절에 과학의 중요성을 이미 파악했다. 그리고는 과학을 발전시키기 위해 과학입국에 열을 올렸다. 박정희 대통령의 간곡한 요청에 따라 해외에서 혁혁한 성과를 내던 유능한 과학 인재들이 한국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박정희 대통령은 과학의 중요성을 일찍히 깨닫고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을 설립했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이 없었다면 이후에 대덕연구소, 전자통신연구소, 국방과학연구소 등도 없었다.
당시 KIST 박사들의 대우는 박정희 대통령보다 월급을 더 많이 받았을 정도였다.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기술이 필요하고 산업화가 필요하단 걸 절실히 느꼈었던 것이다. 그만큼 박정희 대통령의 직접적인 대우와 격려에 과학을 발전시키고자 많은 박사들은 자신들을 희생했다. 3~4년 사이에 귀국한 18명 중 4명이 스트레스 때문에 암으로 사망하기도 했다.
박정희 대통령은 그 시절 이미 과학과 기술이야말로 경제 발전의 근간이 될 것이라 예견하고 있었다. 총 4회에 걸쳐 1981년까지 진행된 기술진흥 계획 속에서 우리나라 과학기술의 수많은 근간들이 탄생하고 꽃을 피웠다. 1945년 2차 대전 후에 독립한 140여개 국가들 중 기술진흥 5개년 계획을 수립, 시행한 것은 대한민국이 최초라고 할 수 있다.
박정희 대통령은 과학기술을 발전시키기 위해 필요한 확고한 리더십 원칙이 있었다. 첫째, 나라의 발전을 견인하기 위한 과학기술은 기능, 기술, 과학이 모두 필요하다는 것을 이해했고 둘째, 이들을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필요한 자본과 시설이 마련되어야 함을 알았으며 셋째, 이들을 이끌고 나갈 인재를 양성하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필요함을 알았다.
1961년 대한민국의 국민소득은 79달러로 세계 최빈국 중 하나였다. 하지만 박정희 대통령의 과학과 경제 개발이 초석이 돼 대한민국은 과학경쟁력 세계 3위, 기술경쟁력 세계 14위, 과학 인프라 세계 3위(2009년 기준)로 성장했다. 이러한 박정희 대통령의 공헌에 과학기술계 원로들은 박정희과학기술기념관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기념관 건립 사업을 주도하고 있는 박원훈 KIST 연우회장(한국과학기술한림원 총괄부원장)은 "기념관 건립은 단지 박 전 대통령에 대한 향수 때문이 아니다. 과학기술의 중요성에 대한 한 국가지도자의 정확한 인식이 얼마나 국가발전에 기여했는지, 이공계를 기피하는 현 세태에서 살아있는 교육 현장으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며 설립의도를 밝혔다.
24. 지금의 대한민국을 위해 헌신한 역사적 인물들에 대한 숭고한 기념사업을 정부주도로 추진

- 박정희 대통령은 조국에 대한 헌신을 했던 위인들을 기리고자 과거에 애국을 했던 분들과 관련된 많은 투자를 하여 사업을 진행시켰다. 아산시 백암리 일대는 이순신 장군의 옛집, 사당 등이 있는 곳인데, 1966년부터 1974년까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지시로 성역화사업이 행해졌다. 충무공 현충사 관리소는 성역화 작업이 진행 중이던 1968년 12월 31일 설립됐다.
소장 1명 아래에 서무과와 관리과를 두고 있으며, 이순신 묘계를 관할하기 위해 음봉분소를 두고 있다. 이렇게 박정희 대통령은 1974년에 이곳을 성역화하고 종합적인 조경공사를 하여 오늘의 경관을 갖추도록 하였다. 또한 충무공인 이순신 장군의 동상이 광화문에 지금까지도 굳건히 자리를 잡고 있다.
이 이순신 장군의 동상은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로 만들어졌는데, 이순신 장군 성역화작업과 함께 추진되었다. 동상은 1968년 4월 27일에 착공 7개월만에 제막식이 거행되었다. 박정희 대통령의 금일봉으로 건립된 20M에 달하는 국내 최대규모의 동상이다. 일본의 기운이 너비 100m나 되는 뻥 뚫린 길을 타고 밀려 들어올 것을 걱정한다는 여론을 보고 받은 박정희 대통령이 "일본인들이 가장 무서워할 인물의 동상을 세우라!"고 지시한 것이다.
강감찬 장군도 역시 민족의 영웅으로 추앙되면서 1971년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애국조상건립위원회'를 만들어 전국 각 시, 군마다 위인의 동상을 세워 정신을 본받도록 지시하면서 수원의 팔달산에 자리를 잡게 됐다. 또한 임진왜란 당시 동래성에서 왜구 20만에 맞서 싸우다 장렬히 전사한 송상현부사의 사당도 만들었다.
또한 안중근 의사 기념관도 박정희 대통령에 의해 1970년에 만들어졌다. 특히나 재정이 어려워 기념관을 준공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박정희 대통령의 귀에 들어가면서 정부 지원을 지시해 기념관을 준공하게 했다. 박정희 대통령은 안 의사를 위해 남산 주변을 성역화하라고 지시해 추진위까지 만들어졌는데, 갑자기 김재규에 의해 시해를 당하면서 무산됐다.
박정희 대통령은 '안중근기념관'을 정부 지원으로 준공케 한 뒤 숭모회로 하여금 지난 79년 9월 안중근 의사 탄생 100돌을 기념해 안중근 기념관 정문 앞에 자신이 쓴 '민족정기(民族正氣)의 전당(殿堂)'이란 친필 기념비를 세우게 했다. 1979년 당시 숭모회 회장으로 있던 이은상과 박정희는 "안중근 의사의 위격(位格)을 이 충무공과 동격으로 높이는 성역화 사업"을 추진하기로 했었다.
이를 위해 청와대 정무수석 고건, 문공부장관 김성진, 서울시장 정상천 등으로 '안중근 의사 성역화 사업추진위원회'를 구성했다. 정부와 숭모회는 성역화 장소를 두고 이견을 보이기도 했다. 정부는 강남지역의 국유지 10만평에 성역화를 건설하기로 한 반면, 숭모회는 남산공원 부지 1만평에 성역화 건설을 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이는 등 입장 차이를 보이다가 10.26 사태로 인해 성역화 추진이 무산됐다.
이외에도 미국에서 서거한 이승만 박사를 모셔다가 국립묘지에 안장하고 그를 기렸으며, 조선의 고종의 아들 영친왕이 일본에서 고생하자 모셔다가 이방자 여사와 덕헤옹주와 함께 창덕궁에서 지낼 수 있도록 배려를 해주었다. 또한 독립유공자들 유해를 동작동 국립묘지에 안장했는데, 대표적으로 이봉창 의사가 있다. 1963년 10월 7일에는 동학혁명 기념탑 제막식도 가졌다.
25. 국민에게 '우리도 할 수 있다', '하면 된다'라는 긍정적인 리더십을 통해 자신감을 심어줌

- 박정희 대통령의 주요 슬로건은 3개로 요약할 수 있다. '우리도 한번 잘살아 보세'와 '하면 된다', '우리도 할 수 있다'가 바로 그것이다. 박정희 대통령은 이러한 슬로건을 통해 경제적 리더십을 내세워 수천 년을 이어온 후진국의 사슬을 끊고 '한강의 기적'이라는 세계 역사상 유례가 없는 성장을 이룩해냈다.
사회, 경제적인 기반 없이 민주주의의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을 감안하면 박정희 대통령의 노력과 업적은 역사적 안목에서 보았을 때 민주주의 발전의 초석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의 '하면 된다'라는 슬로건이 지금까지도 한국군대의 슬로건이기도 하다.
이러한 슬로건은 전체적인 영역, 즉 당시의 사회와 경제, 정치적인 측면 등 모든 측면에 그대로 적용이 되어 일종의 윤활유와 같은 중요한 역할을 해냈다. 한국에서는 사업이라든가 프로젝트를 만들 때 해서는 안 되는 말이 '못한다'라는 부정적인 말이다. 한국인들은 빈말이라도 '할 수 있다', 혹은 '문제없다', 혹은 '괜찮다' 등 긍정적인 말을 습관적으로 하게 된다.
바로 이러한 정신이 바로 박정희 대통령 시절부터 머리에 박혔던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일본인은 확실한 것이 아니면 '모르겠다'라거나 '잘 못할지도 모른다'라는 소극적인 대답을 하는 것에 반해서 말이다. 박정희 대통령의 창학 정신이 어떻게 보면 30~4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대한민국 국민의 정신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며 박혀있는 것이다.
50여 년 전 세계 최빈국에 희망이 없던 시절, 그 누구도 감히 꿈꾸지 못하였던 선진 조국의 비전을 가지고 '하면 된다', '할 수 있다', '우리도 한번 잘 살아 보자'라는 굳은 신념을 가진 박정희라는 한 가난한 나라의 뜻있는 지도자가 대한민국에 지금까지도 그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심리학에서도 '플라시보 효과'라고 의학 성분이 전혀 없는 약이라도 환자의 심리적인 믿음을 통해 치료 효과가 나타나는 현상이 이미 증명된 바가 있다. 즉, 실제로는 그렇지 않아도 그렇다고 믿거나 굳은 신념을 가지고 나아간다면 실제로 그렇게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그 효과를 박정희 대통령은 이미 30~40년 이전에 알고 있었고, 그 효과를 국민에게 전달했던 것이다.
26. 현재 세계적인 강남스타일의 중심지인 한강이남 개발, 즉 강남일대를 개발하는 사업을 실시

- 현재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지역인 강남, 현재 싸이의 '강남스타일'로 비단 우리나라에서만이 아니라, 세계적인 지역으로 우뚝 솟았다. 하지만 1970년대에 사람들은 그곳을 강남보다는 '영동'이라고 더 많이 불렀다. 영동은 영등포의 동쪽이라 붙여진 이름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명칭은 차츰 사라져 자취를 감췄다.
박정희 정부는 저곡가 정책을 통해 도시화를 진행시키고, 산업 용지를 적극적으로 개발 및 공급하였다. 1960년대의 강남 개발은 이러한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1963년 지금의 강남 지역이 서울에 편입됐다. 1966년 김현옥 당시 서울시장은 서울 기본도시계획을 통해 강남권 개발을 추진했다.
1967년 11월에는 경부고속도로 건설 계획이 완료됐고 강남 일대 900만 평이 토지계획지구(영동지구)로 지정됐다. 그러나 당시 북한보다 1인당 국민생산이 뒤쳐진 상태여서 개발자금이 부족했고, 정부는 체비지(개발 비용 충당을 위한 판매용 토지) 사업을 통해 자금을 충당했다.
강병기 전 국토계획학회 회장에 따르면, 당시 강남의 사유지 소유자들은 부가가치를 위해 당시 허허벌판이었던 강남 땅에 학교, 공원 등의 시설을 짓고, 그 대금으로 토지를 공공용지로 바쳤다. 이들 중 일부는 체비지로 설정되어 재산가들에게 팔렸고, 이렇게 모인 자금으로 경부고속도로 등 도시기반시설 사업이 진행됐다.
체비지가 매각되지 않으면 개발자금이 모이지 않고 개발이 진행되지 않기에, 정부는 적극적으로 체비지 매각에 힘썼다. 그 결과 경부고속도로로 수용된 토지를 중심으로 집값이 가파르게 상승했다. 말을 먹이고 쉬어가던 거리라는 뜻의 말죽거리가 그 대명사다. 1966년 초 평당 200원에 불과했던 말죽거리의 가격은 순식간에 2~3천원으로 수직상승했고, 68년 말에는 평당 6천 원에 이르렀다.
박정희 정부는 강남 개발을 촉진하기 위해 1973년 영동지구를 개발촉진지구로 지정했다. 이 과정인 72년에 제정된 <특별지구 개발에 관한 임시조치법>에 따르면, 개발촉진지구에 땅을 구입해 주택 등을 지으면 이후 부동산 판매시 1967년에 제정한 투기억제세를 면제해 주었으며, 기타 재산세, 면허세, 도시계획세 등을 면제해 줬다.
강북 지역의 신규 유흥 시설 등의 설립을 금지하는 반면, 영동지구에는 허용했다. 당시 인구 희소지역이었던 강남을 관통하는 지하철 2호선을 개통하였고, 경기고, 경기여고, 휘문고, 서울고 등 전통의 명문 고등학교를 강남 지역으로 옮겼다. 1976년에는 고속버스터미널을 강남으로 이전했다. 또한 1974년에는 330만 평 부지에 25만 인구를 수용한다는 잠실 뉴타운 계획을 수립했다.
이러한 정책에 따라 1973년 5만 명에 불과했던 영동지구의 인구는 1978년 21만 명으로 급성장할 수 있었다. 강남구 학동(현 논현동)의 경우, 1970년 평당 2천 원에 불과했던 지가가 1~2년 사이에 10배가 뛰었다. 1974년에는 8만원까지 뛰었고, 이는 3년 만에 다시 두 배가 됐다. 79년에는 평당 40만원에 이르게 된다. 1963~1979년 동안 압구정동의 지가는 875배, 신사동의 지가는 1000배 상승했다. 이렇게 강남은 급속도로 발전을 했으며, 이후에 '강남스타일' 노래로 인해 한반도는 물론이고 세계의 중심이 되었다.
27. 전국에 있는 호국문화유산과 같은 우리나라의 중요한 문화재들을 발굴하고 정비

- 박정희 대통령은 우리나라의 역사적으로 중요한 문화유산에 대한 관리에 신경을 썼는데, 1970년대 초에 사적 제502호인 불국사 청운교 및 백운교도 복원공사를 하면서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또한박정희 대통령은 1971년 7월 정소영 경제 제1수석비서관을 단장으로 하는 경주관광개발계획단을 구성였다.
이는 신라의 수도였던 경주를 세계적인 관광지로 개발하도록 한 것이었고, 이 시기에 석굴암을 재보수하고 광화문을 재건했다. 1973년 7월 3일에 불국사 복원불사 회향식이 열렸는데, 이날 준공 행사에 참여하여 30여분간 새로 단장된 불이문, 대웅전, 회량, 무설전, 다보탑, 석가탑 등 경내를 둘러보았다.
또한 이외에도 화성을 복원했는데, 박정희 대통령은 화성 복원 의지로 1975년부터 시작한 수원 화성복원 공사에 예산 32억원(현재가치 1조원)을 들여서 수원시와 경기도가 중심이 되어 5년이라는 긴 시간의 노력 끝에 화성의 본래 모습으로 복원시켰다. 또한
이외에도 남대문 중수 공사를 준공했으며, 동대문 개축도 준공하였다. 문화재보수 5개년 계획을 수립했으며, 팔의사 창의탑을 준공했다.
또한 해인사 팔만대장경 판고 신축 및 보수를 했으며, 무형문화재와 기능 및 예능보유자 인정 전승사업을 시작했다. 석가탑 사리함에서 세계 최고 목판 인쇄 다라니경문이 발견되기도 했으며, 국립중앙박물관을 착공하고, 밀양 영남루를 보수, 서울 문묘 보수, 부여 정림사지 정비, 법주사 대웅전 보수, 종합민족문화센터를 기공했으며, 국립묘지정화사업 현충탄 건립과 문화재보호법 제정을 공포하는 등 무수히 많은 일들이 진행되었다.
사실, 당시의 모든 구호와 정책의 초점은 식량증산에 맞추어져 있었다. 먹고 살기도 바빴던 시대였기 때문이다. 즉, 문화는 정책 추진의 고려의 대상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정희 대통령은 우리나라의 호국문화유산에 관심을 가지고 당시 수원성이라 불렀던 우리 역사의 자랑을 완벽하게 복원시켰다. 이외에도 현재 존재하는 대다수의 문화재가 박정희 대통령 때 복원되었다.
1970년대 초반에 박정희 대통령이 전국의 모든 문화유산을 조사하고, 그것을 가지고 문화재 관리행정의 체계를 잡으라는 지시를 통해 우리나라의 모든 문화유적을 조사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러한 일련의 과정을 거쳐 지금 문화재관리청의 모든 관리행정의 기본을 이루고 있는 것이 바로 '전국 유적 총람(全國遺蹟總覽)'이다.
28. 야간중학 개설, 중학입시시험 폐지, 고교평준화와 같은 현대식 교육체계의 기반을 조성

- 1963년 8월 8일 국사교육 통일방안을 선포하였다. 1968년에 학자들을 초빙하여 국민교육헌장을 제정 반포하게 하여 새로운 시대를 여는 바람직한 한국인상, 국적 있는 교육의 전개를 강조하였고 이는 국민교육화되었다. 박정희 대통령은 정치의 최우선 과제를 교육에 두었으며, 과학기술교육의 진흥을 목적으로 실업계학교 장려와 1973년부터 대덕연구단지 조성사업을 추진하였다.
1978년에는 한국정신문화 연구원을 설립하여 한국학 및 한국문화 연구의 본산을 조성하였다. 그런가 하면 1964년 1월 4일 시도 단위 교육자치제를 실시하여 시도 교육청에 교육행정권을 위임하기도 했다. 1968년 7월 15일 71년까지 중학입시시험을 폐지하는 등 입시개혁안을 발표한 반면, 10월 14일 대학교 입시 예비고사제를 69년부터 실시하게 하였다.
또한 국공립중학교증설 7개년 계획과 고등학교기관확충계획을 추진하였고, 1969년 11월에는 공장 근로자들을 위한 금성사 등 7개 대기업체에 회사 내에 이공계 실업학교 부설을 지시하였다. 1976년 5월 20일에는 국비 장학생을 선발하여 유학보내는 제도를 신설하였고, 1976년 7월에는 일반 영세 기업체들이 산집해 있는 공단 근로자를 위해 야간중학 개설을 지시하였다.
이외에도 1969년 장기종합교육계획시안을 마련했고, 1971년 2월 19일에는 국민윤리도 교과로 신설되었다. 또한 종합교육센터도 기공되었으며, 교육용 한자 1,781자를 선정하여 발표했다. 체육고를 신설하기로 결정했으며, 고교평준화 작업과 산업체 근로청소년의 교육을 위한 특별학급 설치를 기준령으로 의결했다.
29. 오일쇼크가 발생하자 이를 타개하기 위해 실리적으로 중동국가와 교류, '중동 특수'를 누림

- 1970년대에 접어들면서 박정희 정권은 정치적으로는 고전을 면치 못했지만 경제적으로는 그때그때 나타난 기회들을 잘 활용하여 극복해냈다. 예컨대 베트남 특수에 이어 1970년대에는 '중동 특수'가 경제개발 개혁의 성공에 큰 기여를 했다. 이러한 중동에 대한 진출은 3번째 외환위기인 1973년 10월에 발생한 제1차 오일쇼크의 영향으로 적자규모가 1974년에는 최초로 두 자리 수인 20억 달러를 넘어서며 일어나기 시작하면서 진행된 것이었다.
1973년은 한국과 중동사이의 본격적인 경제교류에 있어서 역사적인 전환점이 되었는데, 한국정부는 중동 각 산유국들로부터 석유를 수입하는 동시에 경제개발에 필요한 자본조달을 하기위해 중동의 건설시장으로 진출하지 않을 수 없었다. 1973년 10월 제4차 아랍-이스라엘 전쟁은 무엇보다도 처음으로 오일쇼크를 일으켰고, 그에 따라 유가가 4배로 급등하면서 이들 아랍 산유국들은 엄청난 '오일달러'를 축척하게 되었다.
이러한 막대한 오일달러와 구매력을 가진 중동시장은 한국의 가장 매력적인 상품 및 건설시장의 대상이 되면서 이슬람세계에 대한 지역연구도 활발히 진행되었다. 이후 박정희 대통령은 이 위기를 극복하고자 기존에 친미, 친이스라엘 정책에서 전환하여 실이익을 추구하고자 이스라엘과 적대적인 중동의 아랍국과들과 교류를 하며 적극적으로 중동의 특수를 위한 계획을 추진했다. 즉, 1973년 12월15일에 이스라엘의 점령지 철수 등 4개항의 친 아랍성명을 발표했던 것이다.
그리고 박정희 대통령은 국내기업들의 중동 진출을 적극 지원하고 또 권장했다. 이러한 배경에서 1973년 6월에 삼환기업이 사우디아라비아의 카이바, 알울라 간 고속도로 공사를 수주한 것을 비롯해서 토목, 건축 분야를 중심으로 중동 진출이 시작되었다. 특히 현대건설의 중동 진출은 괄목할 만했다. 현대건설은 1975년에 바레인의 아랍수리조선소 건설 수주를 시작으로, 1976년에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주베일 산업항 공사를 9억 3,000만 달러에 수주하는 개가를 올렸다.
현대건설은 1975년부터 1979년까지 중동에서 51억 달러가 넘는 외화를 벌어들였는데, 현대의 총매출 이익누계에서 해외건설이 60%를 차지할 정도였다. 또한 국가적 지원 속에서 중동 건설의 총 수주액은 1974년의 8,900만 달러에서 1975년에는 7억 5,100만 달러로 급격히 증가했고, 1977년에는 33억 8,700만 달러에 달했다.
이는 1975년에는 전체 건설 수출액의 93%, 1977년에는 96%를 차지하는 규모였다. 1975~1979년 사이에 중동 건설을 통해 벌어들인 외화 수입은 총 205억 700만 달러였는데, 이는 총 수출액의 40%에 해당하는 금액이었다. 이를 발판으로 삼아 그동안 외화 보유에 어려움을 겪던 한국경제는 상당한 힘이 생기게 되었다.
30. 외국에 대한 적극적인 외교를 통해 한국의 존재를 세계에 각인시켜 동반자로서 입지를 구축

-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는 먹고 살기도 힘든 그 시절에 외국에 대한 적극적인 외교정책을 펼쳐 아군을 형성하고자 했다. 북한도 역시 그 시절에 아군을 만들고자 외교에 신경을 썼는데, 북한은 아프리카와 같은 곳에 막대한 자본을 투입하여 동반자로 만들고자 했다. 하지만 박정희 대통령은 현명한 방법을 통해 외교를 진행해 한국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박정희 대통령의 외교는 일본에서부터 시작하는데, 일본 이케다 수상과 1차 회담을 1961년 11월 11일 가져 한일 관계 전반에 대해 토의를 하고 이후 재산청구권과 평화선문제를 토의하기에 이른다. 또한 케네디 대통령과 공동성명을 발표하며 회담을 가졌고, 후임인 존슨 대통령과도 정상회담을 가졌다. 국제의회연맹(IPU)에도 가입했으며, 서독도 방문하여 뤼브게 대통령과 에르하르트 수상과 회담을 가지기도 했다.
독일을 통해서는 박정희 대통령이 막대한 차관을 들여와 재정 1,350만 달러와 상업 2,625만 달러를 얻어냈다. 말레시이아와 월남, 동남아순방을 통한 태국과 말레이시아, 자유중국과도 교류했다. 또한 공산권과도 교류를 추진했으며, 서울에서는 제1차 아시아 태평양지구 각료회의를 개최하기도 했다. 아시아민족반공연맹 제12차 총회가 서울에서 개막하기도 했으며, 국제통신위성기구에 56번째로 가입했다. 이외에도 에티오피아와 교류했다.
주목할 것은 1973년 12월 15일에 이스라엘 점령지 철수 등 4개항의 친 아랍성명을 발표하여 국익을 우선시하며 위기를 타개하고자 새롭고도 파격적인 외교를 시도했다는 것이며, 제3세계에 대한 외교활동도 역시 강화했다. 또한 아시아의원연맹 총회를 서울에서 개최하기도 했고, 이러한 결과로 1979년 11월 30일에는 수교 국가가 무려 117개국으로 증가하는 쾌거를 거두었다.
<참고자료>
<경제개발의 길목에서>, 남덕우(국민대학교에서 정치학,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경제학 석사로 졸업하고 미국 오클라호마 주립대학교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국민대학교를 거쳐 서강대학교에서 강의하다 1969년 재무부 장관에 임명되면서 경제관료로서의 삶을 시작했다. 이후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 대통령 경제담당 특별보좌관을 지내며 1970년대 개발경제의 주역으로 일했다. 제14대 국무총리로서 14여 년의 공직 생활을 마감하고 1983년부터는 한국무역협회 회장, 산학협동재단 이사장을 지내며 한국무역센터를 건설하는 등 ‘무역 한국’을 위해 고군분투해왔다. 한미경제협의회 회장, 태평양경제협력회의(PECC) 상임위원, 한국태평양경제협력위원회(KOPEC) 회장, 동아시아경제연구원(API) 회장, 동북아경제포럼 한국위원회 위원장, 동서문화센터(EWC) 이사, 세계무역센터협회(WTCA) 이사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 한일협력위원회 회장, 한국선진화포럼 이사장으로서 대한민국 경제의 영원한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장에서 본 한국경제 30년>, 강만수(서울대 법학을 전공했으며, 미국의 뉴욕대에서 경제학석사를 받았다. 1970년 행정고시를 통해 공직에 발을 디딘 후 재무부 보험국장, 이재국장, 국제금융국장, 세제실장, 주미대사관 재무관, 국회 재무전문위원, 관세청장, 통상산업부 차관, 재정경제부 차관으로 일했으며, 이후 한국무역협회 상근부회장을 역임했다. 주요 경제부처를 거치면서 때론 정책입안자로, 때론 정책결정자로 부가가치세부터 금융ㆍ부동산실명제, 보험ㆍ금융시장 개방에 이르기까지 한국경제의 중요 정책들이 도입, 시행되는 현장에 참여했고, 1997년 외환위기 때는 재정경제부 차관으로서 IMF지원자금 협상과 금융감독ㆍ중앙은행제도 개편 등 금융구조개혁을 위해 노력했다. 현재 디지털경제연구소 이사장으로, 연구와 함께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과학대통령 박정희와 리더십>, 김기형(초대 과학기술처 장관), 김상선(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사무총장), 김석준(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 원장), 김영섭(서울대 공과대학 객원교수), 금동화(전 KIST 원장), 나도선(한국엔지니어클럽 부회장, 전 한국과학문화재단 이사장), 노석균(영남대 교수, 과실련 공동대표), 박원훈(과학기술한림원 총괄부원장), 서정만(전 국립중앙과학관장), 임기철(대통령실 과학기술비서관), 전상근(전 경제기획원 기술관리국장, 전 과학기술처 종합기획실장), 정근모(전 과학기술처 장관), 정윤(한국과학창의재단 이사장, 전 과학기술부 차관), 최영환(전 한국과학문화재단, 과학기술처 장관), 최외출(영남대 교수, 박정희리더십연구원장), 홍재학(전 국방과학연구소 연구부장, 전 한국항공우주연구소장)
<스티브 잡스와 26인의 부자들(세계를 뒤흔든 27인의 부자들에게 배우는 돈 버는 기술)>, 이수광(대한민국 팩션의 대가로 1983년 <중앙일보>에 「바람이여 넋이여」가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다. 제14회 삼성문학상 소설 부문, 미스터리클럽 제2회 독자상, 제10회 한국추리문학 대상을 수상했다. 이수광은 오랫동안 조선시대 살인사건 기록에 남다른 관심을 기울여왔으며, 냄새가 물씬 풍기는 생생한 역사서를 집필해왔다. 오랫동안 방대한 자료를 섭렵하고 수많은 인터뷰를 하면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역사의 지혜를 책으로 보여주는 저술가로 유명하다. 우리나라에서 팩션형 역사서를 개척했다는 평가를 받는 베스트셀러 작가이다)
<궁극의 문화기행(박물관을 통해 본 우리 문화사, 이색박물관 편)>, 이용재(명지대학교 건축과 대학원에서 건축평론을 전공했고 건축전문출판사를 설립했다. 이후 건축 잡지사 편집장, 건축 현장의 감리를 역임했다. 이후 인터넷에 건축 이야기를 연재하기 시작해 인터넷에 연재한 글을 모아『좋은 물은 향기가 없다』를 출간하였다. 두 번째 저서로『왜 이렇게 살기가 힘든거예요』를 출간, 공중파 방송을 비롯한 수십 개 언론에 조명을 받는다. 또『딸과 함께 떠나는 건축 여행』을 출간하여 6개월 만에 1만 권을 판매하고 교보문고에서 팬 사인회도 열었으며, ‘KBS TV 책을 말하다’에도 출연하였다)
<박정희>, 김성진(서울중학, 고려대학교 등에서 수학했다. 이후 한국일보와 동양통신에서 기자로 사회생활을 시작하여 동양통신 워싱턴 특파원 때 박정희 대통령의 방미를 현지 취재했으며 정치부장 겸 편집부국장을 거쳐 청와대 대변인, 문화공보부장관 등 요직에서 박 대통령을 9년 넘게 보좌했다. 유신시대에는 전통적 한미우호관계를 계속 돈독히 유지하고자 ‘한국미술 5천년 전시회’를 미국 전역의 주요 도시에서 순회·개최했다. 뉴욕 전시 때에는 특히 한미정상회담을 아울러 개최하려고 비밀리에 기획하고 있었으나 10.26유고사태로 결실을 보지 못했다)
<인문학 콘서트3>, 이어령(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및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1956년 「한국일보」에 『우상의 파괴』를 발표, 문단에 커다란 반향을 일으키며 등장한 그는, 문학이 저항적 기능을 수행해야 함을 역설함으로써 '저항의 문학'을 기치로 한 전후 세대의 이론적 기수가 되었다. 20대의 젊은 나이에 파격적으로 「한국일보」 논설위원이 된 이래, 1972년부터 월간 「문학사상」의 주간을 맡을 때까지 「조선일보」 「한국일보」 「중앙일보」 「경향신문」 등 여러 신문의 논설위원을 역임하며 우리 시대의 논객으로 활약했다)
<박정희와 개발독재시대(5ㆍ16에서 10ㆍ26까지)>, 조희연(서울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연세대학교 사회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 남가주대학교(USC)에서 한국학 객원교수와 영국 랑카스터대학교,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학교(UBC)에서 교환교수를 지냈고, 비판사회학회장을 역임했다. 현재는 학술단체협의회 공동대표이며 성공회대학교 사회과학부 겸 NGO대학원 교수로 재직 중이다. 또한 성공회대학교 통합대학원장과 민주주의연구소장을 맡고 있다)
<20 100="">, 김정형(성균관대 도서관학과를 졸업했다. 조선일보 편집국 조사부로 입사해 현재는 독자센터에 근무하고 있다. '역사 속의 오늘'이란 제목으로 조선일보(2002.12~2003.11)에 1년, 주간조선(2004.9~2006.8)에 2년 연재하고, CBS 라디오의 한 프로그램에서도 같은 이름으로 방송전파(2006.6~7)를 탔다. 월간지 뉴스메이커에 '100년의 기록, 100년의 교훈'(2010.1~2011.12) 제목으로 2년 동안 연재했다)20>
<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한국현대사>, 서중석(서울대학교 국사학과를 졸업하고 연세대학교에서 석사학위를, 서울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79년부터 1988년까지 동아일보사 기자로 재직했다. 역사문제연구소 소장, 일본교과서바로잡기운동본부 공동대표,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위원회 위원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 올바른 역사 정립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현재 성균관대학교 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경제상식 충전소>, 최진기(고려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한림대학교 사회학과 대학원에서 수학했으며, 동부증권에서 근무했다. 입시학원인 메가스터디에서 사회탐구 영역을 강의하면서 전국 사회탐구 영역 점유율 1위를 기록했으며, 현재는 비타에듀 학원에서 그 명성과 기록을 이어가고 있다. 중앙대학교 행정대학원 외래 객원 교수, 한영회고·김포외고·명덕외고 논술특강 강사로 활동했다)
<지리 블로그(지구 환경 그리고 우리의 터전)>, 이민부(현 한국교원대학교 지리교육과 교수로 서울대학교 지리교육학과와 환경대학원을 졸업하고 미 유타대학교 지리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지형학회 편집위원장, 한국지역지리학회 부회장, 대한지리학회 홍보부장, 지리올림피아드 특별위원장, 대한지리학회 회장 및 육군사관학고 환경학과 교수를 역임했다)
<상생의 경제학(더불어 성장하는 따뜻한 시장경제)>, 김선빈(공공정책실 수석연구원), 강성원(공공정책실 수석연구원), 김창욱(경영전략실 수석연구원), 박 준(공공정책실 수석연구원), 김갑수(공공정책실 수석연구원), 이동원(공공정책실 수석연구원), 채승병(경영전략실 수석연구원), 최희갑(아주대학교 사회과학부 교수), 한 준(연세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대한민국 리더십을 말한다(한국형 리더십의 미래)>, 최익용(중동고등학교와 국민대학교 행정학과를 졸업했다. 경희대학교 행정대학원에서 석사학위, 세종대학교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기무부대장, 연대장, 학군단장, 부사단장 등을 역임하고 육군 대령으로 전역했다. 군에 있는 동안 육군대학과 국방대학원을 졸업했다)
<박정희 일화에서 신화까지>, 김인만(동화작가로 지은책으로는 제3회 동쪽나라문학상 수상작인 장편동화 <날개없는 천사의 노래>(1995)와, 박정희 테마에세이집 <임자, 막걸리 한잔 하세>(2007) 등이 있다. 1946년 인천에서 태어나 건국대 축산과를 중퇴했고, 출판사에서 오랜 세월 책을 만들다가 전업작가의 길을 고행하고 있다)
<이병철 거대한 신화를 꿈꾸다(삼성 이병철 회장 탄생 100주년 기념작)>, 김찬웅(동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영화 시나리오 작가와 홍보 업무 등을 거쳐 대기업 사보와 출판사 편집장으로 근무했다. 소설 쓰기를 좋아해 젊은 시절 몇 편의 소설을 발표한 바 있다. 현재는 출판기획자 겸 작가로 활동 중이다)
<한국기업을 살리는 9인의 경영학>, 이채윤(세계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어 문단에 데뷔했다. 문학과 창작 잡지에 소설이 당선된 뒤부터 전업 작가의 길을 걷고 있다. 시민문학사 주간과 인터넷서점 BOOK365의 CEO를 역임했다. 다수의 저서와 역서를 출간했다)
<일본에게 절대 당하지 마라>, 호사카 유우지(동경대학 공학부를 졸업하고 1995년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석사를 졸업, 또 동대학원에서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 박사를 졸업(정치학 박사)을 했다. 현재 세종대학교 일어일문학과 교수로 있다.)
<이야기로 읽는 대한민국 경제사>, 석혜원(서울대학교 소비자 아동학과를 졸업하고 연세대학교 경영대학원에서 경제학을 전공했다. 현재 메트로은행 서울지점 부지점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한국외교사와 국제정치학>, 하영선(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외교학과 교수이고 한국평화학회장이다. 서울대학교 국제문제연구소장과 미국학연구소장 등을 역임했다)
<이건희 스토리(생애와 리더십)>, 이경식(서울대 경영학과와 경희대 대학원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전문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논쟁으로 읽는 한국사2(근현대)>, 역사비평 편집위원회
<지역학의 현황과 과제>, 한국외대대학원지역학연구회
<“박정희 前 대통령도 4대강 유역 개발사업 추진”>, 동훈 전 비서관 위클리공감 인터뷰 기사, 대한민국 정책포털 공감코리아
<<한일협정 문서공개>“굴욕회담 아닌 치열한 외교戰 결과”>, 최형두 기자, 문화일보 기사
<[정치] 박정희 vs 김대중·노무현 향수, 누가 더 진한가?>, 좌용철 기자, 제주의 소리 기사
<[시사토크 판] 안영옥 "KIST 설립은 박정희 대통령의 선견지명">, TV조선 인터뷰 영상
<[정치] 40년 전 박정희 향수가 김대중-노무현 눌렀다>, 김정호 기자, 제주의 소리 기사
<"안중근기념관의 박정희 친필은 역사의 수치">, 조호진 기자, 오마이뉴스 기사
<과외금지 세대 '계층 사다리' 많이 탔다>, 이진희 기자, 한국일보 기사
<참고하면 좋은 자료>
http://cafe.naver.com/nazzis/26841 -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국내외 저명인사들의 긍정적 평가(100인)
http://cafe.naver.com/nazzis/27656 - '5.16 군사혁명' 평가(15인) vs '5.16 군사쿠데타' 평가(15인)
http://cafe.naver.com/nazzis/27664 - [세계사광의 역사논평]<11>5.16은 쿠데타인가, 혁명인가?11>
http://cafe.naver.com/nazzis/28076 - [세계사광의 역사논평]<13>박정희의 5.16은 정당화를 할 수 없다? 그럼 이순신,13>
안중근, 김구도 살인자다
http://cafe.naver.com/nazzis/28151 - [세계사광의 역사논평]<14>'독재'와 '대중독재'의 용어를 구분해서 사용하자14>
http://cafe.naver.com/nazzis/28417 - [세계사광의 역사논평]<24>역사학을 다루는데 있어서 '비교사적' 관점은 꼭 필요24>
한 덕목이다
http://cafe.naver.com/nazzis/29136 - [세계사광의 역사논평]<45>좌파와 우파간의 역사전쟁 서막을 알린 민족문제연구45>
소의 다큐멘터리인 '백년전쟁 번외편1-프레이저 보고서, 누가 한국 경제를 성장시
켰는가' 비평문
http://cafe.naver.com/nazzis/29176 - [세계사광의 역사논평]<47>박정희와 나폴레옹, 워싱턴, 크롬웰, 그리고 레닌의47>
공통점
http://cafe.naver.com/nazzis/29615 - [세계사광의 역사논평]<62>역사는 영웅들의 역사인가, 민중들의 역사인가?62>
http://cafe.naver.com/nazzis/29795 - [세계사광의 역사논평]<70>박정희 정권이 이룩한 '한강의 기적'을 이뤄낸 주역인70>
서강학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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