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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6월 22일 금요일

또 경찰죽이기 인가?

또 경찰죽이기 인가?



또 경찰만 죽일놈으로 매도된다.



어디서 경찰들이 신고를 받고도 수수방관한 것처럼 떠든다. 자! 사건 알아보지도 않고 경찰들한테만 돌을 던지는데...



경찰 측에서 신고를 접수하고 그에 대한 대응을 했다. 그 근거를 보여주마.






신고를 받고 접수까지 했는데, 처벌을 원치 않는다고 계속 말했다. 그러면 어쩌라고? 경찰들이 무슨 관심법이라도 써서 해결해야 되는건가???


이래도 경찰들은 대응을 안 했다고? 우길 것을 우겨라.



 



































































운석 장면... 국가 승인 노력의 성공자

운석 장면... 국가 승인 노력의 성공자




5.10 총선거로 수립된 남한만의 단독정부에 대한 국제사회의 여론은 사실상 좋지 않았다. 공산권 국가들, 그리고 제3세계의 국가들...(5.10 총선거와 정부 수립을 부정적으로 바라본 제3세계의 국가들 중 대표적인 나라는 인도가 있었는데, 조병옥이 48년 UN총회에서 인도 수상 네루의 주장에 대해 민의에 의해 선출된 총선거임을 예로 들면서 유창한 영어 실력을 구사하여 그를 설득한바 있다.) 이들의 시선은 특히 좋지 않았다.



그러나 5.10 총선거로 세워진 국회와, 그 국회가 선출한 대한민국 정부가 합법정부임을 국제사회를 대상으로 역설한 인사가 있었다. 그가 바로 운석 장면이다.



http://news.donga.com/3//20081211/8669503/1



http://www.segye.com/Articles/NEWS/CULTURE/Article.asp?aid=20090218004231&subctg1=&subctg2=





장면은 UN 총회에서 대한민국 정부가 5월 10일 어떠한 압력도 통제도 없는 순수한 민의에 의해 선출된 국회의원들이 선출한 정부임을 증거를 보여주며 설득했다. 다른 한편으로 바티칸을 방문하고 이탈리아와 프랑스내 가톨릭 신자 정치인들을 비롯, 각국의 가톨릭 정치인들을 만났다.



또한 한국 땅에 종교의 자유가 허용되는 정부가 정착할수 있음을 지지해 달라고 호소하였다. 이는 다른 종교, 프로테스탄트 신자인 정치인들에게도 큰 호응을 불러왔다. 종교의 자유와 사상의 자유가 허용되는 사회가 정착되도록 도와달라는 그의 호소는 각국의 정치인들에게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쉽게 대한민국 정부의 승인을 이끌어냈다.





운석 장면의 공로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1950년 6.25 전쟁 직후에는 미국 정부와 조야를 찾아다니며 한국을 도와줄 것을 설득... UN 총회때는 남한의 북침설을 주장하는 소련대표 말리크와 중공, 동유럽 대표들의 주장을 사진 자료들로 논파한 것도 장면이고, 전쟁 중 입수한 소련제 카빈총을 보여주어 UN이 대한민국을 선택하게 한 것도 그였다.



http://images.google.com/hosted/life/l?imgurl=d0bb76f8c4c2c2a4&q=Korean%20delegate%20John%20Myun%20Chang&prev=/images%3Fq%3DKorean%2Bdelegate%2BJohn%2BMyun%2BChang%26hl%3Dko%26tbm%3Disch



가정집 마당에 녹슬어가는 이승만 동상

가정집 마당에 녹슬어가는 이승만 동상












서울 명륜동 한 가정집 마당 구석에는 이승만 초대(初代) 대통령의 동상 두 개가 몸뚱이가 잘린 채 녹슬어가고 있다. 이승만 정권기인 1950년대 후반 세워졌다가 4·19혁명 때 끌어내려진 것들이다. 서울 남산에 있던 동상은 머리만 남은 채 푸른 노끈에 감겨 있고, 상반신만 있는 탑골공원 동상은 그 옆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다. 고철상을 전전하던 동상들이 그나마 이 집 마당이라도 차지하게 된 것은 이승만 정부 때 노총 최고위원을 지낸 어느 인사가 1960년대 후반에 이것을 챙겼던 덕분이다. 지금 집주인은 그 사람이 이민을 떠나자 동상도 함께 넘겨받았다고 한다.



지구상에 웬만큼 나라 모습을 갖춘 나라치고 건국 초대 대통령 동상이 이런 꼴로 굴러다니는 나라가 있을까. 올해가 대한민국 건국(建國) 60년이라는데 건국 주역 이승만을 기리는 제대로 된 동상 하나, 기념관 하나 없다. 26일 탄생 133주년 추모행사도 이승만이 다니던 정동제일교회에서 신도와 기념사업회원들만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우리 역사에서 이승만처럼 훼예포폄(毁譽褒貶)이 극단적으로 갈리는 인물도 드물다. 한쪽에서는 오늘의 번영된 대한민국의 진로를 잡았던 국부(國父)로 받들지만 좌파 쪽에서는 독재자로 깎아내리고 분단의 책임마저 그에게 떠밀고 있다. 6·25를 통일전쟁이라고 우기는 북한과 한 배를 탄 사람들의 이야기다. 역사 교육을 둘러싼 좌·우파 사상 대립에서도 박정희 대통령과 함께 첨예한 대립의 중심에 놓인다.



이승만 집권 말기에 본체만 높이 7m, 기단(基壇)까지 합쳐 25m나 되는 초대형 동상이 남산에 세워졌다는 것이 당시 비정상적인 정치·사회 상황을 말해준다. 그래서 그의 동상마저 이런 수모와 곡절을 겪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승만이 아니었다면 대한민국이 자유주의와 공산주의의 갈림길에서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길을 선택하고 그 선택을 전쟁으로부터 지켜 나가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공산주의가 유라시아 대륙 대부분을 장악했던 상황에서 국제정세를 정확히 읽고 미국과 손잡았던 그가 없었다면 오늘의 대한민국은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어느 정치지도자에게나 공과(功過)는 있게 마련이다. 유난히 파란만장했던 한국 현대사에선 빛과 그늘이 더 심하게 교차한다. 이승만 시대에서 50년 가까이 흐른 지금, 이제는 그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그에게 역사의 제자리를 찾아주어야 한다. 장독과 철사와 나뭇가지가 뒤엉켜 있는 마당 구석에서 초라하게 녹슬어가는 초대 대통령의 동상 얼굴과 몸뚱이를 바라보며 착잡했을 국민이 적지 않았을 것이다.

70년대 까지만 해도 인육 먹는 일이 있었다.

70년대 까지만 해도 인육 먹는 일이 있었다.




"혹시 한국에 인육 시장이…" 공포감 엄습



대충 70년대 초반, 유신 선포 전후... 그 무렵까지는 K도나 C도, G도의 산골지역 같은 곳에서는 사람고기를 먹는 일도 있었던 모양이다.



1970년대 초, 대충 72, 73년 이전 무렵까지는 산간 벽지 같은데는 인육이 조직적으로 유통되는 수준까지는 아니고...



거짓말 보태면 그정도이겠지만 대량 유통까지는 아니다.



근데 실제로 정신나갔거나 약간 미쳤거나, 정말 먹을게 없어서 혹은 굶주림에 정신이 이상해져서 사람 고기를 먹는 일, 심지어는 자기가 낳은 아기나 다른 집 아기를 짐승으로 본건지 아니면 고의로 그런 건지는 몰라도, 어린이나 아기, 혹은 다른 사람을 죽여서 고기로 먹는 일이 있긴 있었다.



어떤 사람은 자기가 차마 죽이지 못해서 동물들이 아기를 채가게 하기도 했다고도 하고.



이건 실제 돌아다니면서 나이드신 분들에게 들은 얘기임...



6.25 전쟁 때는 사람 죽여서 고기 먹거나, 혹은 근처 죽은 사람의 시체를 뜯어먹고 연명했다는 얘기들이야 흔했고... 단순 괴담으로 치부하기엔 그런 일이 실제로 많았던 모양이다. 6.25 때나 6.25 직후에 사람고기 먹고 연명했다는 얘기는 의외로 많이 들었다.



우리나라가 불과 인육, 사람 고기를 노골적으로 먹지 않던게 유신시대 이후의 얘기이니까... 어쩌면 지금도 암암리에 인육이 유통될 수도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중국에서 들여온 태아나 아기 시체로 만든 약물을 잘 먹는건지도 모르겠다.







ps : 아기나 갓난아기, 탯줄이 정력에 좋다던가, 미용에 좋다는 설은 사실여부가 확인이 안된 소문인데도 이런 소문이 꽤 오래전부터 돌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언제 누가 처음 날조했는지는 모르지만 이 유언비어는 한국사회에 의외로 오랫동안, 아마 최소 조선시대 때나 그 이전부터는 광범위하게 유통되던 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