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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1월 5일 화요일

노인 방임, 방치가 학대라면

노인 방임, 방치가 학대라면

노인 문제에 대해 말들이 많다만, 어쩔 수 없이 노인들을 방치, 방관하는 것까지 노인학대의 범위에 집어넣는 것은 억지같다. 지나친 오버다.

노인들을 방관, 방치하는게 노인 학대라면, 그럼 지금의 중고령자들이 과거 자기 먹고살기 바쁘다고, 자식들을 방임, 방치한 것은 아동 학대가 아닐까?

부모가 출근한 사이에 자식들은 담배도 피우고, 술도 마시고, 본드도 흡입하고, 패싸움도 하고, 불량한 청소년들에게 구타도 당해보고, 돈도 빼앗기고 온갖 폭력과 협박에 시달릴 수도 있다. 그럴 때 부모라는 사람들은, 자식들을 위해서 뭘 했나???

자식들이 그런 환경에 놓이도록 부모라는 자들은 뭐했나? 더구나 그런 처지에 놓이는 자기 자식들과 진지하게 대화해 보고 탈선, 방황 앞에서 자식의 바람막이가 되어주는 부모들... 극히 드물었다. 그리고 한때의 실수로 대부분의 자식들은 어려운 처지에 놓이게 됐다. 그렇게 방치당하고 자란 자식들 중, 몇 명이나 성공하고, 좋은 직장들을 구하면서 살까???

단순히 돈이나 벌어서 넉넉하게 먹이고 입히고 재워만 주면 그게 다인가??? 설령 그것을 무슨 대단한 혜택으로 여기는 자라면, 그런 자들은 자식들에게 버림받아도 싸다. 짐승도 자기 새끼들에게 그정도는 해 준다. 먹여주고, 입혀주고, 재워주는 것...

짐승도 하는 일을 갖다가, 무슨 대단한 혜택으로 여기는 그 피해의식! 그런게 자식들로 하여금 자기 부모에 대해 거부감과 염증과 학을 떼게 만드는 것이다.

여건이 안돼서 노인을 모시지 못하는 것, 어린시절에 겪었던 부모의 부당한 대우에 대한 반감으로 부모를 멀리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노인 방임이나 학대로 봐서는 안된다. 노인이라고, 어른이라고 해서 자식, 아랫사람이 무조건 존경하고, 무조건 복종하는 시대는 지났다.

Give and Take라는 영미식 속담도 있고, 일찍이 맹자의 역성혁명론(=임금답고 어른답지 못한 자는 임금, 어른으로 대접할 이유 없다) 처럼 주는 것만큼 대우를 받게 마련이다.

여기서 유교에서도 무조건 어른, 윗사람에게 복종만 하지 말라고 가르쳤다는 점을 우리는 주목해 보자. 일찍이 고대 원시 유교에서는 임금답지 못한 임금, 지도자 답지 못한 지도자, 어른 답지 못한 어른에게 저항하는 방벌 이라는 개념을 세워 뒀었다.

다만 송나라 때 주자 중심의 성리학, 예학으로 이어지면서 무조건 어른, 윗사람, 노인에 대한 맹목적인 복종, 존경을 강요하도록 경직되었지...

여건이 되지 않아서, 돈 문제나 재정적 조건이 되지 않아서 못 모시는 것, 어린 시절에 당한 부모의 부당한 대우와 폭력에 대한 반감 등으로 노인을 모시지 않는 것이라면, 그것은 노인 학대는... 아니다. 해 주는 만큼 대우를 받게 마련이다. 무조건 나이로 깔아뭉개고, 무조건 아랫사람에게만 복종을 요구하는 것은 잘못이다. 그렇게 해서는 억지로 복종시킬 수는 있어도 속으로는 불평 불만과 반감, 적개심만을 생산할 뿐이다.




자식들에게 얹혀살지 않기, 적당히 사람들과 거리를 두기, 그리고 자식들에 대한 헛된 믿음, 기대감 버리기... 이 것부터 연습해야 될 것 같다.

이것을 연습하지 않는다면 아마 오래도록 괴로울 것이다. 제 승질 제가 못이겨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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